어느 무명 철학자의 유쾌한 행복론
전시륜 지음 / 명상 / 200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어느 무명 철학자의 유쾌한 행복론  

이영은
 

  예전 한 토크쇼에서 어떤 배우가 ‘난 태어날 때부터 내 이름을 가지고 있었기에 무명인 시절이 없었다’라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 세상에 알려진 정도의 차이로 무명과 유명이 갈리는가에 새삼 딴지를 걸어보며, 어느 ‘무명’ 철학자의 유쾌한 행복론을 펼쳐본다. 

  책을 처음 접했던건 2006년 내가 고3이던 시절이었다. 철학자라 하면 단연 플라톤, 소크라테스 등을 꼽으며 그들의 이론을 기계처럼 달달 암기하던 시절, 이 책은 나에게 뜨거운 여름 한 줄기 소나기처럼 차갑게 혹은 유쾌하게 다가왔던 것이다. 

  때로는 심오하고 때로는 시시껄렁한 이야기들을 통해 작가의 사상이나 사고의 깊이는 물론, 다양한 관심사에 대한 놀라움을 금치 않을 수 없다. 정치, 돈, 예술에서부터 연애에 이르기까지, 세상사 이토록 다방면에 관심을 가지고 사유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비단 아이의 동심만이 세상에 대한 강한 호기심을 갖는 것은 아니었던가 싶다. 작가 전시륜의 글을 읽노라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보다 더 속을 알 수 없는 괴짜의 모습이 연상된다. 

  현처와 전처의 이야기ㅡ물론 사실혼이 아니었을지언정ㅡ를 서슴없이 꺼내며, 신문에 광고를 낸 공개 구혼 에피소드까지…. 거침없는 그의 입담과 경험담을 보노라면 과연 이것이 오랜 미국 생활을 통한 문화 차이의 증명으로 그칠 것인가 궁금해진다. 어떠한 에피소드도 유쾌하고 익살스럽게 끌어내는 그의 재주는 재미있다 못해 얄미울 정도이다. 그의 눈을 통해 미국에서의 생활을 몰래 엿보듯 들여다 볼 수 있음이 참으로 흥미롭다. 그가 한국 방문에 낯설어하며 문화적 이질감에 섭섭해하듯, 그에겐 익숙한 미국에서의 생활을 담담히 풀어내는 글들이 읽는 이의 입장으로선 낯설기 그지없다. 

  타국의 택시 기사에게 5배 가까운 바가지 택시 요금을 물었을 때에도 언성을 높이거나 싸우려하기 전에 그의 가족과 형편을 고려해 눈 감아 줄 수 있는 그런 여유. 주변 이웃에게 성대한 잔치를 베푸는 것보다, 거액을 기부하여 누군가를 돕는 일보다, 조금만 비틀어보자면 생활 속 작은 기쁨을 선물해주는 것이 주는 사람, 받는 사람 모두에게 소소하지만 가슴 벅찬 설레임이 될 수도 있지 않던가. 때로는 고개 숙인 겸손보다 당돌한 허영이 세상을 더욱 유쾌하게 만들 수 있음을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한 치의 꾸밈도 없는 순도 100%의 진실보다, 껍데기일 뿐인 달콤한 거짓이 더 행복할 때가 있다. 어쩌면 이것은 가식과 위선으로 대변되는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현대생활백서’ 혹은 ‘진리보다 더 높은 진리’가 아니던가. 삶을 윤활하게 해주는 달콤한 거짓말을 권장하는 작가를 보며 오히려 가슴이 더 두근거리고 차가운 청량음료를 마신 듯 시원함을 느끼는건 나 하나 뿐이었을까. 온 사회가 ‘착한 병’에 걸려 모든 직업에 ‘서비스 정신’이라는 족쇄를 채워 모든 사람이 친절하기를 강요하고 있다. 4천만 인구가 광대가 되어 기뻐도 울고, 슬퍼도 웃어야함에 목을 조여오는 숨막힘과 깊은 갈증을 느끼던 차에, 작가 전시륜의 글들은 유쾌하다 못해 통쾌하기까지 하다. 

  그가 말하는 행복론은 너무도 쉽고 단순해 어찌보면 허무하기까지 하다.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충분히 잠을 자며, 자연스럽게 사는 것. 이것이 그가 말하는 궁극적인 행복의 방법론이다. 누구나 아는 것을 말한다하여 비틀고 꼬아 더 고차원적 사상인 척 하려하지 않고, 오히려 담백하고 유쾌하게 끌어낸 그의 이야기가 더 마음에 와닿는다. 작가 전시륜은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이야기는 아직도 이토록 많은 이에게 가르침을 주고 있으니, 그 또한 성공한 인생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을 하며 이만 작가와 이별을 고한다. 
 



+ 덧붙이는 말
지난 독서모임에서 썼던 서평인데
알라딘 기자단에 지원하게 되어 온라인에 게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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