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술의 전당 서예미술관 3층에서 하고 있는 고 우관중(1919-2010) 작가전에 다녀왔다. 홍콩예술관 소장 17점을 무료로 볼 수 있다.
중국 남쪽 상하이 부근 쟝쑤성 출신으로 저장에서 전기공학을 공부했다가 서양화로 붓을 처음 잡고 나중에 수묵화로 방향을 튼 케이스다. 이른 나이에 꽃을 피는 작가도 있으나 초년에는 좌충우돌하다가 만년에 이르러 대기만성하는 작가의 좋은 표본이다. 중국 현대미술의 거장이라고 칭해지는데, 거장이라는 말이 예술계에 마케팅적으로 너무 남발되어 오염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이번만큼은 인품과 기법과 짜임새와 족적에 있어서 거장이라고 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홍콩예술관에 좋은 작품을 위주로 기증했다는 점, 서양화와 수묵화를 절묘하게 융합해서 후대에 현대 모더니즘이라 이러해야한다고 결과물로서 가르침을 남겼다는 점에 있어서 그렇다.
작품 캡션은 작가노트로만 구성되어있다. 출신이 어떻고 저떻고 타령하면서 작품 외적 설명만 늘어놓는 캡션보다 차라리 견실한 작가의 생각으로만 구성한 캡션이 훨씬 더 작품에 집중하게 해준다. 좋은 작가는 차라리 간결한 에세이를 써서 캡션에 달아놓으면 어떨까? 보는 이가 작가와 대화하면서 몰입하고 명상할 수 있도록
전시는 흰색, 회색, 검은색의 색을 기준으로 구성하되 점선면의 발달단계도 보여주는 동선이다. 색의 분류는 아무렇게나 나온 것이 아니다. 점선면은 동서양 모두 드로잉의 기초이되 구체적 필법이 달라 최종 구현된 결과물이 달라진다.
백색과 검정은 수묵화의 색이다. 전시장을 걸어들어가며마주하는 한 작품 한 작품 백색에 대한 의미를 풍성하게 해석하는데 특히 설산의 백색을 표현해낸 과정을 설명하는 캡션과, 자작나무(birch tree)의 백색을 표현하면서 나무를 짙은 색으로 그리는 서양화와 달리 흰색 나무도 있으며 그 나무에 흑점을 반점으로 포인트를 주었다는 캡션이 인상깊다.
또한 나이프로 유화를 발라가며 마티에르를 돋운 서양화를 그릴 때도 의도적으로 빛을 표현하지 않으려고 했다는 부분이 기억난다. 그러고보니 수묵화는 빛의 표현이 없다. 유화는 명암대비, 원근표현 등에서 빛의 표현이 두드러진다. 수묵과 유화를 융합한 우관중은 서양기법으로 중국충칭과 강서의 풍경을 그리며 빛의 반사를 의도적으로 제거해 태양이 구름에 가려져 햇빛이 일관적으로 산란된 듯한 도시의 모습을 그렸다.


또한 회색을 의미없는 무채색이 아니라 고향 풍경을 상기시키는 은회색으로 재정의해 자신이 추구하는 회색의 방향성이란 이렇다고 표현한 섹션도 좋았다.


그중 특히 연못의 잡초(1996)가 눈을 사로 잡는데 직사각형 화면 전반에 회색조가 감도는 수묵화적 인상인데 연못의 수련을 흰색으로, 가지를 검은색으로 처리했다. 자세히 보면 먼저 흰색으로 강조할 부분을 남기고 회색 먹으로 번지게 한 다음 남긴 흰색 위를 검은 필법으로 그렸다. 부레옥잠이 강조되는 부분은 여러 번 겹쳐서 번지게 했다.
가지는 수묵화의 난을 그리는 듯한 필법이다. 표현이 절묘하다. 보통 평면성이 강조되는 수묵화여아하는데 먹의 농담만으로도 원근감을 표현했다. 정말 최고의 작품이다!
여주 고향이나 먹물의 바다에서 정신을 가다듬다와 같은 흑색이 강조된 부분에 이르러서는 검정색만 일관될 경우 둔해진다면서 "적절한 구조가 없으면 엉성하고 무력해보인다" 일갈했다. 일필휘지의 먹으로만 부드러운 얽힘(gentle entanglement)와 격렬한 투쟁(fierce struggle)을 표현한 죽기 전 최후의 작품 둥지(2010)도 눈에 띈다.

돌아오는 길에 보니 환친차에 법칙금이 부여된다고 한다. 일단 법칙금이 아니라 범칙금이다. 예술의 전당 공식 이름을 걸고 오타라니..
환친차는 환경친환경차의 준말인가? 이런 표현을 본 적 없어서 처음에는 언뜻 확진자처럼 읽혔다. 이런 말이 통용되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