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일기 - 전3권 겨레고전문학선집
박지원 지음, 리상호 옮김 / 보리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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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를 올리는 자는 대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이야말로 바치는 것은 적고 바라는 것은 사치하다고 볼 수 밖에 없구나. (상권, 일산수필)-303쪽

탈은 눈에서 생겼으니 벼슬하는 자들도 이와 마찬가지일 것이다. 바로 떠받들려 올라갈 때는 한 층대 반 층대가 남보다 뒤떨어질까 하여 더러는 동배를 떠밀고 앞을 다투다가도 급기야 몸이 높은 자리에 처하고 보면 겁이 나고 외롭고 위태로워 나아갈 곳은 한 자죽도 없고 물러설 자리는 천길 낭떠러지가 있을 뿐으로 어데를 더위잡았자 도움될 가망도 없고 보니 내려오려 해도 제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다. 천고를 두고 통하는 이치렷다. (상권, 일산수필)-313쪽

밤에는 관에 머문 여러 역관들이 다들 내 방에 모여들어 간략하게 술자리를 벌였는데 나는 여행 중에 온통 입맛을 잃었다. 여러 사람들이 내 자리 옆에 봉해 싸 둔 보따리 속에 무엇이나 들었나 하고 흘려들 보기에 나는 곧 창대를 시켜 보따리를 풀어 샅샅이 뒤져 보게 했으나, 다른 물건은 아무것도 없고 다만 가지고 갔던 붓과 벼루/(132) 뿐이고, 부품해 보이는 것은 죄다 필담했던 초기와 유람 일기였다. 여러 사람들은 모두 궁금증을 풀고는,

"아닌게 아니라 갈 적엔 아무런 행장이 없더니 돌아올 때 봇짐이 좀 크기에 이상타 했더니....." 했다. 장복이는 역시 서글프레해서는 창대를 보고,

"특별 상금은 어디 있지?"

하며, 몹시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 (중권, 북경으로 돌아오는 도중에서)
-133쪽

청나라가 처음 창건되면서 한인들을 붙잡는 대로 반드시 머리를 깎아버렸는데 정축년(1637)에 우리나라와 강화 맹약을 할 때에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머리를 깎지 않았다. 여기는 까닭이 있다. 세상에 전하는 말로는 청인들이 여러 번 청 태종에게 우리나라 사람들의 머리를 깎는 명령을 내리도록 권고했으나, 태종은 이를 응낙하지 않고 가만히 패륵들에게 말하기를,

"조선은 본디부터 예의를 숭상하여 머리털을 머리보다 소중히 여기는데 이제 만일 억지로 사정없이 서두른다면 우리 군사가 돌아온 뒤에는 반드시 본래대로 되돌아설 것이다. 그럴 바에야 그들의 풍속에 따라 예의로 구속해 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저들이 만일 우리나라 풍속에 따른다면 말 타고 활쏘기가 편리할 터인 즉, 이는 우리의 이익이 아니다."

하여, 이를 중지하였다고 한다. 우리 편으로서 생각한다면 이런 다행이 없을 일이라 하지마는, 저들의 계책으로는 우리들이 문약한 습성을 그대로 두려는 것이었다. (하권, 동란섭필)
-4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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