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별 너머에 존재하는 것들 - 우주의 95%, 보이지 않는 어둠에 관한 과학 서사
아메데오 발비 지음, 김현주 옮김, 황호성 감수 / 북인어박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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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감상적인 제목인데 과학책이다.

책 제목에서 말하는 '별 너머에 존재하는 것들'이란

현대 과학의 수수께끼로 남아있는 암흑 물질과 암흑 에너지를 의미한다.


오늘날 과학자들이 밝혀낸 우주의 총 질량은 관측 가능한 물질 5%, 정체를 알 수 없는 미지의 물질인 암흑 물질 25%, 그리고 역시 정체를 알 수 없으면서 암흑 물질과는 전혀 다른 개념인 암흑 에너지 70%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책은 그중에서 암흑 물질에 초점을 두고 있다.


암흑 물질의 미스터리는 1930년대 초 프리츠 츠비키라는 스위스 천문학자가 머리털자리 은하의 총 질량을 계산하는 과정에서 처음으로 드러난다.


츠비키가 계산해낸 은하의 총 질량은 예상보다 터무니없이 적어서 은하라는 거대한 구조물을 뭉쳐 있도록 유지할 만한 충분한 중력을 갖지 못할 수준이었다. 그의 계산대로라면 은하는 산산이 조각나고 그 속의 천체들은 제각각 뿔뿔이 흩어졌어야 하는데, 이 천체들이 어떻게 서로를 붙들고 은하라는 구조물을 이루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당시에는 관측기구의 정밀도가 낮거나 계산 기법의 오류에서 비롯된 잘못된 결과라는 생각이 강했고 츠비키의 보고는 묻혀 버렸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계속 은하들을 분석해 보니 거의 대부분의 은하들이 공통적으로 그 형태를 유지하기엔 질량이 부족했고, 뭔가 보이는 건 없는데 거대한 중력이 작용하고 있다는 관측 데이터가 축적되면서 우주에 널리 분포한 이 정체불명의 중력원을 암흑 물질이라 칭하게 된다.

80년대에는 암흑 물질을 설명하기 위한 수많은 가설과 이론들이 난립하게 되는데, 당시 암흑 물질의 후보로 뉴트리노, 반물질, WIMPs(Weakly Interactive Masive Particles) MACHOs(MAsive Compact Halo Object),등 온갖 이론적 물질들이 올랐으나 현재는 모두 부정되었다.


아예 애초에 정체불명의 중력원 따위는 없고 우리가 가진 계산 기법이나 이론이 잘못돼서 그런 게 아니냐는 수정 중력 이론, 수정 뉴턴 역학 등이 제기되기도 했는데, 이 이론들은 80년대까지는 인기를 끌다가 기존의 물리 법칙에 반하는 사례들이 나와서 현재는 그 힘을 잃은 상태다.


▲2006년 관측된 암흑물질의 실질적인 증거라고 일컬어지는 총알 은하단(Bullet Cluster) 사진. 초속 1000km의 속도로 충돌한 두 은하단에서 그 주위에 흩어진 뜨거운 성간 가스(붉은 부분)와 암흑물질의 분포(푸른 부분)를 보여준다.


게다가 놀랍게도 2006년에는 '암흑 물질로 추정되는 뭔가가 관측'된 사진(상단의 총알 은하단 사진)이 나오면서 그나마 몇 안 되던 수정 중력 이론 지지자들마저 암흑 물질의 존재를 인정하는 쪽으로 돌아섰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암흑 물질의 정체는 베일에 싸여 있다.



그리고 책의 후반부에서는 짧게 암흑 에너지에 대해서도 다룬다.


중력은 서로 끌어당기는 인력인 반면에 암흑 에너지는 우주 전체에 가득한 불가사의한 척력(밀어내는 힘)이다. 이 암흑 에너지는 너무나 커서 관측 가능한 물질과 암흑 물질 모두가 만들어내는 중력을 이겨내고 우주를 계속해서 가속 팽창시키고 있다.

물리학적으로 아무것도 없이 텅 빈 완벽한 진공이란 존재할 수 없으며 아무리 텅 빈 공간에서도 측정하기 힘들 만큼 미세한 양자 요동(에너지)이 존재하는데, 우주 전체 수준의 넓은 공간이라면 그 미세한 에너지의 총량조차 어마어마하게 커질 수 있어서 이 양자 요동이 암흑 에너지의 원천이 아닐까 하는 추측이 있었다.


하지만 이것조차도 암흑 에너지의 총량에 비하면 너무나 작은 수준이라서 암흑 에너지의 확실한 정체는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우주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흥미로울 내용이 가득한 책이지만, 이 책은 과학책을 즐겨 읽는 내게도 깜짝 놀랄 만큼 읽기 어려웠다.

책 초반부의 암흑 물질의 역사 부분을 제외하고는 위 사진 같은 내용이 거의 끝까지 계속된다고 보면 되는데 글자는 한국어가 분명한데도 해독이 되질 않는 수준이었다.


특히 저자는 책에 나오는 각종 계산법들, 예를 들면 우주 전체의 총 질량을 구하는 계산법이나 우주의 총 밀도를 계산하는 방법 등을 상당히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한국어가 분명한데도 해독이 되질 않는 수준이었다. 이런 지나치게 상세한 설명들을 배경지식 없는 일반인은 물론이고 천체물리학과 학생이라도 이걸 100% 이해할 수 있을까 싶었다.


이걸 읽으면서 든 생각은 "암흑 물질이란 건 사실 없는 게 아니냐"라고 잘 알지도 못하고 따지는 사람들의 코를 눌러주기 위해서 저자가 반박의 여지가 있을 수 없도록 의도적으로 상세하게 설명해 놓은 것 같았다.


어려운 부분은 '어쨌든 이 계산법의 정확도가 굉장히 신뢰할 만한 수준이라는 거구나'하고 넘어가면서 읽어야만 했다.




책에서 접한 흥미로운 사실 중에서 암흑 물질은 원자로 구성된 물질이 아니라고 예견된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개인적으론 상당히 신기했다. 나는 막연하게 모든 물질은 중성자와 양성자가 결합한 핵과 그 주위를 도는 전자가 결합한 원자의 형태를 갖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원자의 구조로 이루어진 게 아니라면 암흑 물질은 도대체 어떤 형태로 존재하고 있을까? 다른 차원의 물질인 건 아닐까?

상상조차 되질 않는다.


우주엔 우리가 모르는 것이 아직 너무나 많다.

과연 인류가 우주의 신비를 어디까지 밝혀낼 수 있을지 호기심과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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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조금 수상한 비타민C의 역사 - 아주 작은 영양소가 촉발한 미스터리하고 아슬아슬한 500년
스티븐 M. 사가 지음, 김주희 옮김 / 한빛비즈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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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유행하는 비타민C 오버도즈가 무의미한 이유를 간결하게 설명해주는 책. 결론은 어머니의 말씀대로 야채와 과일을 많이 먹는게 가장 좋다는 것. 그 외에 책 전반부 비타민C부족으로 인한 괴혈병에 시달리던 대항해시대 선원들의 이야기를 다룬 부분은 매우 흥미진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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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뇌 - 뇌의 새로운 이해 그리고 인류와 기계 지능의 미래
제프 호킨스 지음, 이충호 옮김 / 이데아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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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요즘 과학 책 코너에 썩어 넘치는 흔한 뇌과학 교양서와는 좀 달랐다. 처음 집어 들 땐 뇌과학과 AI에 관한 얘기만 하는 책인 줄 알았는데 읽다 보니 AI와 인류의 미래에 대한 뇌과학자의 대담한 통찰을 담고 있어 놀랐다.


기존에 내가 읽었던 뇌과학 책 중 하나인 『커넥톰, 뇌의 지도』(승현준. 2012)에서는 뉴런과 시냅스의 전기신호를 통한 상호작용을 주로 다루며 뇌의 작동원리를 하드웨어적인 측면에서 설명했다면, 이 책 『천 개의 뇌』에서는 뇌 부피의 70%를 차지하는 신피질에서 어떻게 의식과 지능이 창발하는지에 대해 주로 소프트웨어적인 측면에서 접근한다.


ㅡ 천 개의 뇌 이론의 기본 개념


인간의 뇌는 오래된 뇌와 새로운 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오래된 뇌란 인간이 지능을 갖기 전인 먼 과거부터 인간의 생존을 위해 기본적인 욕구에 반응하던 원시적인 뇌다. 반면 인간은 진화를 거듭하면서 지능의 원천인 신피질을 크게 늘려왔는데, 이 신피질로만 이루어진 부분을 새로운 뇌라고 부른다. 신피질은 인간이 말하고 보고 듣고 생각하고 기억하는 의식적인 행동 전반을 담당하며, 지능도 이곳에서 생긴다. 인간은 신피질이 특히 커서 뇌 부피의 70%를 차지한다.


신피질을 이루는 기본 단위는 '피질 기둥'이다. 사람의 신피질에는 약 15만 개의 피질 기둥이 병렬적으로 촘촘하게 늘어서 있다. 각각의 피질 기둥들은 끊임없는 학습을 통해 세상 만물에 대한 모형을 만들어 저장하고, 뇌는 깨어있는 내내 그 모형을 바탕으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끊임없이 예측을 하는 예측 기계처럼 작동한다. 피질 기둥 하나하나는 사실상 작은 뇌라고 할 수 있으며, 뇌는 15만 코어 멀티프로세서인 셈이다.(물론 뇌와 컴퓨터 cpu의 성능을 1:1로 비교할 수는 없다.)


뇌의 기본 단위가 이렇게 작기 때문에 뇌에서 지식은 분산되어 저장된다. 우리가 아는 지식 중에서 한 세포나 한 피질 기둥처럼 한 장소에 저장된 것은 하나도 없다. 때문에 어떤 사람이 사고로 인해 신피질의 일부를 손실하더라도 그 사람의 기억은 대부분 유지된다.


15만 개에 달하는 피질 기둥들은 고유의 기준틀을 가지고 외부 세계를 제각기 조금씩 다르게 인식한다. 피질 기둥들은 무수히 쏟아져 입력되는 정보들에 대해 투표를 하고 합의를 이루어낸다. 즉 우리가 실제로 보고 듣고 느끼는 것들은 뇌 안에서 피질 기둥들 간의 ‘투표’를 통해 이룬 합의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여기까지가 저자가 고안해낸 천 개의 뇌 이론의 기본 개념이다. 저자는 천 개의 뇌 이론을 적용해 현대 뇌과학이 직면한 난제들을 이론적으로 설명하려 시도하며, 천 개의 뇌 이론을 적용한 AI의 발전 방향, AI와 인류의 먼 미래까지 그 논의를 확장한다. 고도로 발달한 AI가 과연 인류를 멸망시킬 것인지, 인류가 뇌를 사이버 공간에 업로드하여 영생할 수 있을지 같은 대중적인 관심 주제에 대해서도 최신 뇌과학 분야의 성과 및 저자 본인의 사견을 곁들여 이야기한다.


책 후반부에서는 인류가 지구를 벗어나 성간 문명이 될 가능성과 그 과정에서의 AI의 역할에 대해서도 고찰하는데, 저자가 풀어내는 이야기들이 너무 흥미로워서 넋 놓고 읽다 보니 이게 뇌과학 책이라는 사실마저 깜빡할 정도였다. 멸망의 위기에 직면한 인류가 지식의 보존을 위해 스스로 복제하는 지능 기계를 만들고 이들이 우리의 정신적 후손으로서 우주로 나아간다는 이야기는 어찌 보면 낭만적이기까지 하다. AI 연구자들은 이렇게 멀리까지 생각하고 있었구나 싶었다.


번역도 잘돼있고 저자도 글을 워낙 명료하게 잘 써서인지 매우 잘 읽힌다. 또 저자는 책에서 설명이 필요할 때마다 한 페이지 정도 분량의 짧고 굵은 예시를 들어 설명하는데, 대부분의 예시들이 짧은데도 불구하고 복잡한 사항들을 쉽게 이해시켜주고 그 논거가 탄탄해서 감탄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부분이 있는데, 저자는 의식이라는 개념이 사실 복잡할 것이 없다면서 어떤 사례를 들며 간단히 설명한다. 읽고 나니 '내가 방금 뭘 읽은 거지?' 싶어 다시 한번 읽어봤다.

의식의 기원과 작동원리는 인류에게 늘 수수께끼였으며 일부 학자들은 인류가 의식의 원리를 결코 알아낼 수 없을 거라고 주장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저자가 '기억'과 연관 지어 간략히 설명한 의식의 정체는 너무 명확하면서 논거가 타당해서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의식을 논리적으로 이렇게 간단히 설명할 수 있다는 사실에 마치 강철 쟁반으로 머릴 내려치는 듯한 강렬한 충격을 받았다.


물론 현대 과학이 의식의 비밀을 100% 완벽히 파악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저자는 의식이라는 것이 영혼이나 천국과 같은 비과학적인 영역이 아닌 물리학의 영역 내에 있는 개념이며, 곧 인간은 뇌와 의식을 정복할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또한 천 개의 뇌 이론에 기반해 만들어질 미래의 지능 기계는 의식을 가질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전에 『벌레의 마음』(김천아 외 4인. 2017)이라는 책에서 읽었던 한 연구가 생각난다. 예쁜꼬마선충이라는 작은 벌레의 뉴런과 근육 및 감각 신경의 모든 연결망, 즉 커넥톰을 소프트웨어로 구현하고 다리(바퀴로 대체)와 눈(시각 센서로 대체)이 달린 로봇과 연결했다. 이 로봇은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라고 프로그래밍 해 둔 것이 아닌데도 스스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인다. 로봇이지만 속은 사실상 온전한 한 마리의 예쁜꼬마선충인 것이다. 



만약 예쁜꼬마선충에게도 자아와 의식이 있다면 위 영상의 로봇도 자아와 의식이 있을 것이다. 최근 과학 기사에서는 초파리의 모든 커넥톰을 구현했다는 내용을 읽은 적이 있다. 이런 일이 가능하다는 것으로 미루어볼 때, 기계가 의식을 가질 것이라는 저자의 확신이 터무니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늘날 인공신경망을 기반으로 하는 알파고나 챗 GPT 같은 AI가 등장했지만 저자는 이들에겐 진정한 의미의 지능은 없으며 당연히 의식도 없을 거라 말한다. 이들은 그저 인간보다 바둑을 잘 두거나 특정 질문에 대답해 주는 수준에 그친다. 특히 챗 GPT는 인간이 프롬프트를 입력해 주지 않으면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진정한 지능을 가진 AI는 특정 행위만 잘 하는 게 아니라 인간이 수행 가능한 거의 모든 일에 투입이 가능한 수준이어야 한다. 이러한 인공지능을 범용 인공지능, 즉 AGI(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라고 부른다. 이들은 인간처럼 보고 들으며 세상을 끊임없이 학습하고, 경험의 축적을 통해 돌발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가 가능하며 인간처럼 자아와 의식을 지니고 스스로 행동할 것이다. 저자는 AGI가 2~30년쯤 후에 등장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의식을 가진 진짜 인공지능이 만들어진다면 인간은 좀 더 겸손해지지 않을까? 사회적으로는 윤리적 논의와 찬반이 들끓으며 일시적인 혼란을 겪겠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인류의 진보에 큰 도약을 이뤄낼 것이다. AGI는 아마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 탄생할 것 같은데 최대한 건강하게 오래 살아서 인간이 아닌 새로운 지성체의 탄생을 지켜보고 그들의 탄생을 축하해 주고 싶다.


눈이 확 뜨이는 흥미로운 내용들이 가득 담겨있어 아주 재미있게 읽은 책이다. 뇌과학과 AI, 그리고 인류와 기계 지능의 미래에 흥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필독서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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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쿼런틴 워프 시리즈 4
그렉 이건 지음, 김상훈 옮김 / 허블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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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어가 놀라워서 감탄을 금치 못한 소설이다.

양자역학의 기본 속성인 "관측에 의한 파동함수의 붕괴"를 소설의 주요 소재로 삼았는데 이야기의 핵심이 밝혀지는 중반부는 정말 기가 막혀서 매 페이지마다 눈을 떼지 못하고 읽었다. 어떻게 사람이 이런 생각을 다 했지? 그렉 이건 그는 신인가?

책의 주 소재인 '관측에 의한 파동함수의 붕괴'를 설명하자면 그 유명한 슈뢰딩거의 고양이 얘기를 하면 된다. 슈뢰딩거의 고양이에 대해 잘 안다면 아래 설명은 패스해도 된다.



특정 시간에 50% 확률로 독가스가 퍼지는 불투명하고 밀폐된 상자 안에 고양이를 넣는다. 그럼 특정 시간 이후에 상자 안의 고양이는 죽었거나 살아있을 것이다. 하지만 양자역학에선 관측되기 전엔 가능한 모든 경우의 수가 중첩된 상태로 존재한다고 한다. 즉 이 고양이는 관측되기 전까지는 죽어있으면서 동시에 살아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이후 고양이가 들어있는 상자 내부를 들여다보면 관측에 의해 고양이는 삶과 죽음이 중첩된 상태에서 벗어나(= 파동함수가 붕괴하여) 죽었거나 살아있는 상태로 확정된다는 것이 바로 슈뢰딩거의 고양이 역설이다. 즉 관측을 해야만 비로소 실체가 존재하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이야기는 인간의 직관을 아득히 벗어난 이야기여서 믿기가 어렵다. 오죽하면 천재 아인슈타인조차도 터무니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고, 양자역학의 확률 놀음에 반대하며 "신은 주사위 놀음을 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남겼다. 양자역학의 최고 권위자 중 한 명이었던 리처드 파인만도 양자역학의 난해함에 대해서 "이 세상에 양자역학을 이해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하지만 오늘날 양자역학은 수많은 과학자들에 의해 철저히 검증되었고 아인슈타인의 두 상대성 이론과 더불어 가장 성공적인 과학 이론 중 하나로 남았다.


▶리처드 파인만 - "이 세상에 양자역학을 이해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양자역학 권위자인 본인도 이해 못하시겠다는 뜻)


책은 이 파동함수의 붕괴라는 현실의 소재를 교묘하게 비틀어 이야기를 진행시키는데, 가히 소설 전체가 파동함수의 붕괴에 대한 사고실험을 위한 무대라고 부를 만하다.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저자가 파동함수의 붕괴에 대해 이러저러 생각하다가 떠오른 여러 사고실험을 한 데 묶고 이야기와 설정을 좀 덧붙여 아예 한 편의 소설로 낸 것 같다. 하지만 이야기의 진행을 위해 약간의 허구적 설정이 들어갔기에 양자역학을 잘 모르는 독자라면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소설적 허구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다. 이 책을 읽으면 양자역학 마스터할 수 있느냐는 질문 글을 봤는데 도움 안되니 기대하지 말라.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책은 인간 직관에 반하는 이런 현상들이 과학적인 사실이자 진리라면 특정 상황에서는 인간의 자유의지라는 게 과연 실재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질문하며 이 사고실험을 철학적인 측면으로도 확장하고자 시도한다. 책에선 자유의지라는 게 진짜 있다면 특정 상황 하에선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말문이 막히는 상황이 두어 번 나오는데 읽으면서 독자로 하여금 자유의지란 허상이 아닌가 고민하게 만든다.


이 책의 아이디어도 대단하지만 근미래 기술에 대한 사이버펑크적 배경 묘사도 즐거웠다. 생명공학을 정복한 인류가 살아있는 모기를 유전적으로 변이 시켜 소형 드론으로 써먹기도 하고 인간의 머릿속에 여러 사이버네틱 임플란트들을 이식해 사용자의 감정을 통제하거나 신체능력을 조절하는 데 사용한다. 저자의 이공계열 지식이 해박하고 설정과 묘사가 구체적이어서 본격 하드 SF 소설의 모범으로 손색이 없는 작품이다. 고독한 전직 형사로 나오는 주인공 덕분에 얼핏 하드보일드 풍의 느낌도 난다.


다만 제목과 표지, 그리고 태양계 전체가 격리되었다는 설정만 봤을 땐 뭔가 우주급 스케일의 거대한 이야기를 기대했는데 막상 읽어보니 소설 속 배경과 그 스케일이 너무 작아 실망했다. 놀라움을 불러일으킨 중반부 이후부턴 뒷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될지 빤히 보여서 약간 맥빠지기도 했다. 쿼런틴 읽은 사람들 말로는 결말이 아쉽다는 평이 대다수였는데 나 역시도 그렇게 느꼈다.



여담으로 이전에 읽은 과학책인 '바이오센트리즘'(로버트 란자 저)에서도 쿼런틴과 비슷한 내용을 주장한 바 있다. 파동함수의 붕괴를 초래하는 게 관측이라는 행위라면 이 관측을 행할 수 있는 존재는 의식을 지닌 생명체일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파동함수의 붕괴를 초래하는 "관측할 수 있는 의식"은 우주의 기본 요소이고 우주는 이 의식을 가진 생명체가 반드시 존재하게끔 만들어져 있다는 것이다.(=생물중심주의)

물론 생물중심주의는 일부 괴짜 과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이지 과학계 주류 이론이 아니니 이런 생각들도 있구나 하고 참고만 하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현실이 오죽 기괴하면 이런 주장까지 나오게 되는걸까 싶다.


양자역학을 통해 바라본 세상은 왜 이렇게까지 기이하게 만들어져 있는 것인지 신기하다. 과연 인류가 양자역학을 완전히 이해하게 될 날이 올까?

오래오래 살아서 인류의 과학이 세상의 진리를 어디까지 밝혀낼 수 있을지 지켜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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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영매탐정 조즈카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5
아이자와 사코 지음, 김수지 옮김 / 비채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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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노벨을 일반 도서인 것처럼 팔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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