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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혜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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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이라는 한 단어, 덩그러니 환하게 불을 밝힌 집 한 채가 그려져 있는 표지는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었다. (상상할 수 있는 것이 극히 드물었다.) 그래서 첫 페이지를 넘기자마자 나락으로 떨어진 -눈을 떠보니 온 몸을 움직일 수 없고 말도 할 수 없는 지경에 빠진 채 '기적적으로' 깨어난- 이야기가 진행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홀>은 '오기'라는 남자 주인공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소설이다. 인은 증발한 채 덜렁 과부터 등장해 당황스럽긴 하지만, 찬찬히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이야기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문장 어떻게 삶은 한 순간에 뒤바뀔까. 완전히 무너지고 사라져서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릴까. 그럴 작정을 하고 있던 인생을 오기는 남몰래 돕고 있었던 걸까. (28쪽) 을 잘 기억해 둬야만 한다.

 

일단, 주인공 오기는 아내와 함께 짧은 여행을 계획했다. 강원도의 어느 여행지로 가는 비 내리는 심야의 고속도로, 앞차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채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추락한 교통사고로 오기는 '스스로 신체 통제권을 가질 수 없는 몸'이 되었다. 40대 후반의 안정적인 '정교수' 라는 직업을 가지고 생활하던 그의 인생인 완전히 뒤바뀌었다. 간병인이 욕창을 방지하기 위해 몸을 돌려줘야 했으며, 유동식을 호스로 몸 안에 밀어 넣으며, '그저 살아있기만 할' 뿐이다. 주인공은 깨어나자마자 자신만 살아남았음을 괴로워했다. 자신이 사랑해 마지 않았던, 그래서 그녀가 하는 일이라곤 모든지 하기를 동의했던 지난 날을 회상하면서, 혼자 살아남았으니 얼른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라는 생각까지 하면서.

 

그래서 나는 이때까지만 해도 주인공 부부 둘 사이의 문제는 전혀 없었던 거라 생각했다. 오기의 기억 속 이야기로만 보자면 둘은 대학원생활을 하던 때 서로 사랑을 했고, 각자 원하는 진로를 따라 길이 갈라졌지만 서로의 앞날을 위해서 조금은 불편해도 참고, 결혼 생활 중에도 많은 결정을 아내가 하도록 양보하는 모습을 회상하는 주인공을 보면서 "이 둘에게 문제가 있었을거야."라고 생각하는 독자는 없을테니 말이다. 하지만 오기가 기억하는 것은 기억의 전부가 아닌 파편이었다. 아내와 함께 지냈던 20년 간의 시간들 중 극히 일부의 좋았던 기억들. 오기는 사고로 인해 뇌에도 손상을 입었고 그렇기에 기억이 완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오기에게는 여러 기억들이 돌아왔다. 특히나 부부가 심혈을 기울여 사들였던 집(타운 하우스)에 돌아와서는 더 많은 기억들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기에 죽은 아내의 어머니, 장모와의 기묘한 동거까지. 이야기는 점점 숨이 꽉 막히는 상자 안으로 떠밀려 들어가는 듯 했다.

 

장모는 결혼생활 내내 오기와는 불편한 관계였다. 하지만 딱히 무어라 정의할 수 없는 불편함이었던지라 살면서도 굳이 기억할 필요가 없었던 터였다. 하지만 이제 움직일 수 없는 오기에게는 동아줄과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장모의 행동이 좀 수상하다. 자신을 돌봐주러 오는 입주 간병인, 물리치료사, 자신의 옛 동료들이 입을 모아 '집 앞 마당에 큰 구덩이가 있다'는 것을 전해주었기 때문이다.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사위, 큰 구덩이를 파고 있는 장모, 사위와 함께 여행가다 죽은 딸. 이런 관계 내에서 상상할 수 있는 것이란 아주 심플하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오기의 입장에서만 묘사되는 행동들은 제약이 많다. 병원과 집. 공간은 이 둘 밖에 등장하지 않고, 회상씬들에 '공간'은 중요하게 차지하지 않는다. 그저 상황들만 오기의 머릿속에서 회상될 뿐이다. 제약이 많은 주인공의 상황은 독자로 하여금 공포를 느끼게끔하고, 실제로 위협을 당하지 않음에도 위협을 당하고 있다고 느끼게끔 이야기가 진행된다. 주인공의 회상장면이 많아질수록 더없이 좋은 사이처럼 보였던 주인공 부부의 모습에도 균열이 가기 시작하고, 결국에는 파국까지. 이야기는 후반부로 갈수록 탄력을 받아 속도감이 붙기 때문에 술술 읽힌다. 술술 읽히는 데 반해 눈에 보이지 않는 공포감은 여전하니, 다음에 어떤 내용이 등장할지 갈수록 불안해지기도 한다.

 

"그래야죠. 죽어버렸으니까요. 다 죽었지요, 전부 다…… 다 죽었어요. 기껏 애지중지 키워놨는데, 그만 어이없게 죽어버렸어요."

잠시 쉬었다가 장모가 말을 이었다.

"살려야지요, 내가. 내가 다 살려야죠."

(중략)

"연못이요? 정원에요?"

"산 걸 풀어놔야죠. 살아서 꼬리도 치고 숨도 쉬고 헤엄도 치고 그러는 걸 둬야지요."

"잉어 같은 거요? 근사하겠네요."

"산 게 근사합니까? 추접하죠. 악착같이 그 좁은 구멍에서 살려고 해댈 텐데…" (149쪽)

 

내가 불안감을 느꼈던 부분은 바로 이 부분부터다. 묘하게 어긋한 것 같은 장모의 행동이 거슬리기 시작했을 찰라, 집에 병문안을 온 동료들과 장모가 나눈 대화에서 그 '연못'이라는 것에 들어갈 '잉어 같은 거'는 잉어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얼핏 스쳤다. '사십대란 모든 죄가 잘 어울리는 나이'(77쪽) 라는 구절이 담긴 시라든가, '인간이 어떻게 속물이 되는지, 그 관찰기라고도 할 수 있어'(182쪽) 라고 이야기하는 회상 장면 속 아내의 말이라든가. 불안한 것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리고 마치 자신의 죄를 속죄하는 양 모든 것을 털어놓는 오기의 모습 속에서, 처음에 언급했던 구절 "어떻게 삶은 한 순간에 뒤바뀔까. 완전히 무너지고 사라져서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릴까." 라는 구절은 이미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따지고 보면 인생은 한 순간에 뒤바뀌지는 않는 것 같다고. 아마 작가가 의도한 제목 <홀>이라는 것은 어쩌면 자신이 그동안 파두었던 공간들이고, 그 공간들이 모여 커다란 홀을 만들었을 때 자신이 만든 그 홀에 빠지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함께 말이다.

 

열린 결말이다. 오기가 어찌되었는지까지는 친절히 알려주지 않는 소설이지만 생각해 볼 점은 많은 것 같다. 사십대라는 나이에 저지를 수 있는 많은 죄들이라는 것, 그리고 <홀>이라는 제목 자체와 집 앞 마당의 '홀'의 상관관계 같은 것들 말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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