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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묻힌 거인 - 가즈오 이시구로 장편소설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하윤숙 옮김 / 시공사 / 2015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처음부터 괴이한 느낌의 소설이었다. 뭔가 어긋나는 것들의 연속. 읽으면 읽어나갈수록 이상한 것 투성이인, 여기의 시대적 배경이 영국이라고 했는데 토끼굴이라니 이건 뭐지? 도대체 이사람들은 왜 이렇게 살고 있지? 무언가 뚜렷하지 않고 계속 '안개' 속에 쌓인 느낌의 소설. 1장을 지나갈 때까지도 이 소설이 어디를 향해 가는지를 전혀 알 수 없었다. 이럴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꽁꽁 숨겨 놓은 채, 답답함만을 가득 안은 채. 수수께끼들을 풀기 위해서는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는 없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읽히지 않아도 읽어내야만 했다.

 

만약 내가 직접 구입한 책이었다면 안 읽고 중간에 포기했을 가능성이 많았던 책- 그나마 그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누른채 읽어나가다 보니 하나씩 보이기 시작하는 것들. 이 책은 처음부터 어떤 것을 알 수 없는 게 당연했다. 일종의 판타지 소설이니 말이다. 용이 등장하고, 원탁의 기사가 등장하고, 도깨비와 전사가 등장하는 비현실적 소설. 그러니 처음에 시대적 배경을 제대로 유추할 수 없었던 것이다.(실제에서 찾으려 했으니) 소설이 진행되는 방식이 낯설어서 자꾸 덮고 싶었던 것이고 말이다.

 

하지만, 소설은 친절하지는 않아도 보여줘야 할 것들은 보여준다. 의문을 잔뜩 일으킬만한 복선 비슷한 것들을 깔아두고 그것을 나중에 해결하는 식으로 말이다. 의문들이 하나씩 풀려나가지만 그럼에도 의문은 일어난다. 도대체 왜?라는 근본적인 의문. 바로 어제의 기억도 없는 사람들, 섬으로 가기 위해 뱃사공에게 부부의 좋은 기억을 똑같이 말해야만 한다는 이야기에서 공통되는 '기억'이라는 단어 말이다.

 

"사라져서 좋은 것도 많지만 이렇게 소중한 걸 기억하지 못하는 건 잔인한 일이오."(50쪽)

"함께 나눈 과거를 기억하지 못한다면 당신과 당신 남편은 서로를 향한 사랑을 어떻게 증명해 보일 거예요?" (71쪽)

 

기억에 대한 이야기는 이렇게 가끔씩 흘러나왔다. 어제의 기억, 아니 방금 전의 기억도 금방 잊어버리는 사람들과 그것이 당연하다는 듯 과거는 기억하려하지 않는 사람들을 통해서. 그것이 잘못됐다 믿는 주인공 부부와 같은 사람들도 분명 있었으나 여전히 많은 이들은 금방 오늘의 일도 금방 잊어버리곤 했다. 그렇기에 '파묻힌 거인'이라는 단어는 '파묻힌 기억'의 다른 말이지 않을까 생각해 봤다. 과거를 잃어버리는 게 두려운 이들에게 이는 보이지 않는 거인과 싸우는 것과 진배 없는 일일테니 말이다.

 

"하지만 액슬, 우린 그 시절을 기억조차 못 하잖아요. 그 후의 시간도요. 우리 사이에 격력했던 싸움도, 함께 소중히 즐겼던 순간들도 기억하지 못해요. 우리 아들도 기억하지 못하고, 그 애가 어쩌다가 우리와 멀리 떨어져 지내는지도 기억이 안 나요."

"그 모든 기억을 되찾을 수 있을 거요, 공주. 게다가 내가 기억을 하든 잊어버리든 내 마음속에 당신을 향한 감정은 늘 똑같이 그 자리에 있을 거예요. 당신은 늘 같은 감정 아닌가요, 공주?"

"나도 그래요, 액슬. 하지만 지금 다시 드는 생각은요, 오늘 우리가 마음속으로 느끼는 감정이 마치 비를 머금은 잎에서 떨어지는 이 빗방울과 같은 건 아닐까 하는 거예요, 사실 하늘은 오래전에 비가 그쳤는데 말이에요. 우리의 기억이 사라지면 우리의 사랑도 점점 빛이 바래져 완전히 사라져버릴 뿐, 거기에 다른 아무것도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71-72쪽)

 

사람을 잃어버리는 것이 두려운 것은 아니다. 사실, 과거의 기억따위 없어도 앞으로 나아가는데는 별다른 지장이 없을 것이라는 것도 마을 사람들의 행동을 통해서 알 수 있다. 허나, 이것은 사람의 '감정'의 문제다. 과거를 잊는 일은 지나온 모든 것을 잊는 다는 것이고, 그것은 오롯이 나 한 사람을 이루는 모든 것을 송두리째 잃어버리는 것과 같다. 지나온 시간 속의 내가 있기에 현재의 내가 존재하는 것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 '나'를 잃어버리면 과연 그건 '나'라고 자신있게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소설 속의 사람들의 감정은 흐르는 것 같았다. 분노와 증오, 사랑등의 감정은 여전히 생겨나고 흘러간다. 하지만 과거의 기억에서 흘러나오지 않기 때문에 쉽게 분노하고 쉽게 증오했다. 다른 이들에게 우르르 동조하고 자신의 줏대는 없어져 버리는 것.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하기보다 대세를 따라가는 것. 기억을 잃어버리고 산다는 것은 이런 것이었다. 과연 이것이 좋은 일인걸까.

 

"하지만 안개는 좋은 기억뿐만 아니라 나쁜 기억까지 모두 덮고 있어요. 그렇지 않겠어요, 부인?"

"우리에게 나쁜 기억도 되살아나겠지요. 그 기억 때문에 눈물을 흘리거나 분노로 몸을 떨기도 할 거고요. 그래도 그건 우리가 함께했던 삶 때문에 그런 거잖아요?"

"그럼, 나쁜 기억이 두렵지 않은가요, 부인?"

"뭐가 두려워요, 신부님? 아무리 이 안개가 위험을 숨기고 있더라도 기억을 되찾는 길이 우리에게는 어떤 위험도 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이건 해피엔드로 끝나는 이야기예요. 그건 우리에게 소중한 거니까요." (235쪽)

 

어떤 것도 받아들이는 기억이야 말로 '나'를 만드는 가장 큰 본질. 기억은 거인처럼 커다랗다. 그리고 어쩌면 그 거인이 나를 밟아 죽이려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파묻힌 거인을 두려워하기보다는 살아 움직이는 거인을 마주하는 편이 좀 더 현명한 방법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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