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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내 마음을 충전합니다 - 이근아 그림 충전 에세이
이근아 지음 / 명진서가 / 2019년 9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실 엄청 기대했던 에세이는 아니었다. 그냥, 요즘 차고넘치는 에세이글에 그림을 접목한 글이구나 하는 기대감은 있었지만 이렇게 공감을 많이 하며 구구절절하게 마음에 콕 박히는 시간을 겪게될줄은 몰랐었다.
연령대는 다 다르지만, 그래도 평범한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여성이라면 나처럼 이 책에 몰입할 수밖에없을 것 같다.
그런 현실이 조금은 안타깝기도 하지만말이다.
책의 저자 '이근아'님은 평범하기도 하고 특별하기도 하다.
외국어고등학교를 진학하여 성균관대 미술학과에 입학했을 만큼 명석하기도 하지만,
결국 한 남자의 아내가 되고 엄마가 되어 흔한 경력단절을 겪는 한 여자일 뿐이다.
공부도 잘했고, 그림에도 뜻이 있었고, 사회진출에도 욕심이 있었던 이근아씨가 겪게되는 솔직한 감정적 추이는 나의 현재와 미래를 보는 것 같아서 마음이 굉장히 씁쓸했다.
결혼과 육아에 메였기 때문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단 사회적 상황들
p.89에 나오는 문구들도 굉장히 인상깊었다.
그 당시 내가 가장 부러웠던 사람은 출산휴가를 받는 직장 있는 임산부였다.
큰 배를 안고 출퇴근하다가 잠시 휴가 아닌 휴가를 얻은 자의 고충과
갓난아기를 두고 복직해야 하는 복잡한 마음을 경험하고 싶었다.
애써 다른 표현으로 말하고 있지만
나는 직업 있는 사람이고 싶었다.
이 구절을 보면서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결혼을 아직 하진않았지만, 미래에 당연히 내가 하게 된다고 나의 주변사람들은 믿고 있는 것 같다.
(그렇게 전제한 대화들이 너무 많다.)
아마 내가 결혼을 하게 되면, 그들은 또 당연히 내가 아이를 가질거라고 믿겠지.
내가 그런 상황을 겪는다고 해도 나는 이근아씨가 부러워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저 문장을 보고 굉장히 많은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엄청. 많이.
나는 이 저자가 굉장히 솔직하게 글을 쓴 점이 너무 좋았다.
특히 자식에 대한 부분이 인상깊었다.
아들과 11년, 딸과 8년, 우리가 함께 산 세월이다.
아직도 어렵다.
손님을 맞이하는 양 마음이 부산하다.
언뜻 저 문장만 보면 매정해보이지만, 저자는 솔직하게 가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등교하면 보고싶은 아이. 잠든 모습은 짠하게 보이고, 웃는 시간도 있지만.
엄마를 듣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자신의 얼굴에는 표정이 사라지고, 이쯤이면 좀 떨어져 있자는 신호를 보내고.
엄마이기 전에 한 인간으로서의 지치는 그 과정과 그 감정변화에 미혼이지만 굉장히 공감이 가게 써놓았다.
무조건적으로 특히 엄마에게 강요하는 모성애적인 부분의 이면이 거짓없이 드러나는 날것의 표면들이
엄청나게 피부로 와닿았다.
우리는 단 하나의 위치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근아씨는 '이근아'이기도 하며, 한 남자의 아내이다. 한 아들의 엄마, 한 딸의 엄마.
동시에 누군가의 며느리고, 누군가의 딸이다.
미술을 하면서 부모에게 내놓을만한 자식이 되지 못했고, 부모에게 만족감을 주는 자식.
매일 벽돌을 쌓아 작은 성을 쌓아가던 남편을 보며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남편이 기쁜 소식을 안고 와도 "좋겠네?"라고 말하는 아내.
어쩔수없이 시월드에게 상처받는 며느리.
누구나 갖고있는 관계의 각도에서 진솔하게 풀어낸 감정들이 너무나 현실적이었다.
그런 아픔을 맞이할 때마다, 이근아씨는 그림을 소개해준다.
그 그림을 보며 위안을 받고 마음을 다스린다.
이 책이 솔직했듯, 나도 솔직하게 말하자면 많이 슬펐다.
'여성'이 갖게되는 사회적 한계를 이 책을 통해 고스란히 다시한번 확인받은 느낌이었기 때문이었다.
이근아씨가 이렇게 상처받을 수 있었던 이유도, 자기 자신에 대한 욕심이 많았기 때문이다.
사회적 구성인으로써, 열심히 사회를 이룩하고 자아를 성장시키고픈 욕심이 한 가정을 지킴으로써 '포기'되고 '좌절'되었기 때문에 수반되는 그 감정들이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나는 아직 이근아씨의 삶을 살지 못했다. 그럴 확률이 높지만, 아직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런 기로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책이다.
결국, 피할 수 없는 그런 상황에서 그림을 통해 위안을 받을 수는 있어도 저 그림의 그 상황을 해결해 줄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누군가에게는 이 책이 위로가 될것이다. 나역시 이 책을 통해 위로받는 측면이 부분이 있지만,
회피하고 싶었던 현실을 낱낱이 보여주기때문에 고민을 안겨주기도한다.
마음이 굉장히 복잡하지만, 시중에 이런 책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모두가 함께 이런 고민들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조우하고, 타파해나가서 이근아씨가 갖고있는 문제들이 해결되었으면 좋겠다.
이 책은 '이근아'의 에세이기도 하지만 현대 모든 여성들의 에세이기도 한다.
현재를 살고있는 여성이라면, 이 책을 통해 얻는 것이 굉장히 많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많은 여성들이 꼭 이 책을 봤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그게 위안이든, 마주하고싶지 않은 현실이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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