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반테스가 세비야에 머물던 시절은 그가 레판토 해전과 포로 생활이란 고초를 겪으며 오랜 시간을 해외에서 전전하고 귀국한 뒤였다. 그는 상이군인이었고 전쟁포로였으며 한물 간 소설가였다. 자신의 경력을 인정받아 정부 요인으로 신대륙에 가일하고 싶었으나 고작 안달루시아 지방의 세금 징수원으로 고용됐을 따름이었다. 그리고 세금 징수원으로 일하며 세금을 맡겨둔 은행이 파산하는 바람에 횡령죄를 선고받고 감옥까지 가야 했다. 나이는 이미 50대에 접어들었고 한쪽 팔이 성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그는 꿈꿨다. 신대륙에 가는 바람을 이루기는커녕 감옥에 갇혀야 했던 그는, 장애인에다 전과자에 불과한 늙은이인 그는,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을 꿈꿨다. 바로 이곳에서.
『돈키호테」가 잉태된 세비야 성당 어느 뒷골목이야말로, 내가세르반테스와 돈키호테를 찾아 스페인에 온 뒤 가장 전율을 느낀 공간이었다. 나는 한국식으로 크게 허리를 숙여 그의 동상에인사한 뒤 몸을 돌렸다.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으나 어떻게 해야 할지는 알 수 있었다. 그것은 감옥에서도 꿈을 꾼 자의영혼을 위해 건배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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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을 열었다.
"난 그냥 약한 사람이 고통받는 게 싫었어.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엄마 때리는 것도 못 참았고, 돈 좀 있다고, 관에 있다고 가난한 집 괄시하는 놈들도 못마땅했고. 아저씨가 비리비리했어도깡이 있었다구. 그래서 대학 가서도 그런 데 나섰던 거 같아."
"아......."
"출소해 보니 독재정권이 사라지고 새 세상이 온 줄 알았는데,
여전히 힘 있는 놈들이 다 해 먹고 있더구나. 정말 다시 감옥에 가더라도 가증스럽기 짝이 없는 정치꾼, 입맛대로 법을 휘두르는 법관, 지들 배만 채우는 재벌, 그리고 부패한 고위공무원 나부랭이다 무찌르고 싶었다."
"음......" - P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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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으로 인정받으면 안 된다고, 그래서 그걸 깨기 위해 나섰다고지식인은 많이 배운 사람이나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아니고세상을 책임질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김승아 씨는 그제야 아저씨의 행동이 단지 자신을 챙겨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더 큰 뜻이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돈키호테』 번역은 어떡할 거냐고 물었다. - P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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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눈깨비

삶은 누구에게도 특별히 호의적이지 않다, 그 사실을 알면서 걸을 때 내리는 진눈깨비. 이마를, 눈썹을, 뺨을 물큰하게 적시는 진눈깨비. 모든 것은 지나간다. 그 사실을 기억하며 걸을 때, 안간힘을다해 움켜쥐어온 모든 게 기어이 사라지리란 걸 알면서 걸을 때 내리는 진눈깨비. 비도 아니고 눈도 아닌 것. 얼음도 아니고 물도 아닌 것. 눈을 감아도 떠도, 걸음을 멈춰도 더 빨리해도 눈썹을 적시는, 물큰하게 이마를 적시는 진눈깨비. - P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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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번의 결혼, 해군력 상승을 이쓴 헨리 8세 - P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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