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 열기가 뜨거웠고, 독일은광기에 빠진 상황이었다. 그러던 1922년 6월 라테나우가 암살당했다. 그리고 마르크화는 1달러에 300마르크로 가치가 하락했다. 한 달 후 1년배상금 지급기일이 되자 1달러에 500마르크까지 가치가 떨어졌고, 27배상금 지급기일인 10월 말에는 1달러에 4,500마르크로 무너져내렸다결국 1923년 4월 하이퍼인플레이션의 뇌관이 터져버렸다. 그때 나온 지폐 이야기를 꺼내려니 지금도 오싹하다. 1,000마르크, 1만 마르크, 10민마르크, 100만 마르크 지폐, 그리고 금액을 말로 표기한 십억 마르크
‘천억 마르크 지폐, 1923년 11월 마르크화의 환율은 1달러에 12조 마르크였다. 당시 베를린 주재 영국대사관 직원이 1파운드 당 마르크화의 숫자가 태양까지의 거리와 맞먹는다고 농담할 정도였다. 그해 말 달걀 한개의 가격은 1918년 가격의 5,000억 배였다. 사람들이 수레에 지폐를 신고 다니던 모습은 아직도 유명하다. 물건을 사러 가는 모습이 아니었다.
쓸모없는 현금을 은행으로 가져가 훨씬 더 큰 고액권으로 교환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쓸모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시중에 유통되던 통화량은1921년 1,200억 마르크에서 2년 후 거의 5억조 마르크에 육박했다. 가늠할 수 없는 수치이다. 5억 마르크 지폐 한 장으로 겨우 빵 한 덩어리를살 수 있었다. - P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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