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율리 체 지음, 이기숙 옮김 / 그러나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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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 / 소설] 새해. 율리 체. 이기숙 옮김. 그러나 출판사. (2019)

슈피겔 종합 1위, 16개월간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 소설, ‘새해’
휴양지의 호텔 같은 예쁜 일러스트를 표지에 이끌려 읽게 된 ‘새해’는 독일 작가 율리 체의 2019년 신간이다. 율리 체(1974~)는 독일의 본에서 태어나 파사우와 라이프치히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미국의 뉴욕과 폴란드의 크라쿠프에서 장기간 체류하며 데뷔작 ‘독수리와 천사’(2001)가 세계적으로 성공을 거두었으며, 기타 소설들도 35개국 언어로 번역되었다. 2002년 라우리스 문학상부터 여러 차례 문학상을 받은 작가이다. (책날개 참고)

법학을 전공하고 유럽법과 국제법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이 쓴 소설이라니. 연결고리가 독특하다고 생각하며 책장을 넘겼다. 깔끔한 표지와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과 내용 구성 등에서 자신감이 느껴졌는데, 역시나였다.

주인공 헤닝이 자전거를 타는 장면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자전거로 언덕길을 올라가는 한 사람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질 만큼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보통 글에서 생각을 담을 때 ‘작은따옴표’를 사용하고, 대화를 담을 때 “큰따옴표”를 사용하곤 하는데 그런 구분 없이 사실 묘사와 주인공의 생각을 넘나들며 왔다 갔다 한다. 그 부분이 어렵거나 헷갈린다기보다는 좀 어지러웠다. 마치 힘든 자전거로 오르막길을 올라갈 때 숨이 차고 머리가 띵해지는 그런 기분. 아마도 ‘그것’의 정체를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작가의 의도가 아니었나 싶다.

소설의 초반부에 시점의 이동인지, 상상인지 ‘그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파악하느라 이해하는 시간이 필요했다면 중반부 이후부터는 순식간이다. ‘그것’의 실마리를 찾아내고, 결말까지 너무 빠르게 훅 지나와버린 기분이다. 자신의 글에 확신을 가진 작가의 자신감이 느껴졌다. 공포나 호러 소설은 아니지만, 더한 고통스러움이 있다.

주인공 헤닝과 같은 경험을 해본 적이 없지만, 누구든 그런 상황을 직면하게 된다면 누구든 갖게 될 공포. 그래서 더 섬뜩하게 느껴졌다. 어린 시절의 아픈 경험이 한 사람에게 얼마나 강한 트라우마로 남게 되는지, 그것을 극복하기까지 얼마나 큰 노력이 필요한지가 담겨있어 책장을 덮은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그 여운이 남아있다. 이해하기 어렵지 않으면서 괜찮은 소설 한 권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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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독 이모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21
박민정 지음 / 현대문학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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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 / 문학, 한국소설] 서독 이모. 박민정. 현대문학. (2020)

요즘은 수많은 근심 걱정으로 책 읽기가 쉽지 않은데, 서독 이모는 예외였다. 큰 기대 없이 책장을 넘겼다가 앉은자리에서 단숨에 끝까지 읽어버렸다. 흡입력이 좋고 재미있으면서 명쾌(!)하지만, 마냥 가볍기만 한 것도 아니라 곱씹을 거리도 있다. 서독 이모는 1985년생 작가 박민정의 소설이다. 소설에 있어 나이라는 게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기준이 되어버리니 ‘나보다 어린 작가’가 되었다. 어리면서 잘 나가는 대부분 사람들의 소설은 전개가 빠르거나 소재가 자극적이어서 불편한 경험이 많았다. 도도하고 거친 느낌이 싫어서 웬만하면 피하는 편이다. 하지만 박민정의 소설은 그런 나의 선입견을 깨트렸다.

소설 속 주인공 정우정은 글을 쓰는 사람이다. 대학원을 졸업하기 위해 구질구질한 대학원 생활을 버티며 논문과 소설을 쓴다. 자신의 경험에 빗대어 소재를 찾다가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인 이모와 이모부 이야기를 선택했고, 썼다 지우기를 반복했다.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허구인지 기억나지 않을 만큼 쓴 글과 석사 논문 통과 과정인 자신의 이야기가 소설이 되었다. 흥미롭다. (이런 과정을 책 뒤편에 드라마투르기라고 표현한다.)

드라마투르기는 작품에 대한 여러 해석 중 하나의 관점을 채택하여 작품에 의미를 구체화하는 비평적 활동이다. 즉, 하나의 스토리에 대한 비평적 시선 및 연출을 위한 이론적 실천이다. (106)

너에게는 이모의 불행이 심심풀이 땅콩이니, 나는 엄마의 말을 떠올렸다. 두 번째 단락을 넘어서고 나서도 꽤 많은 분량을 단숨에 써버렸지만 더는 이 이야기를 이어 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82)

나의 쓰기도 떠올랐다. 고작 나의 경험과 내 주변 이야기를 쓰는 것밖에 할 줄 모르는 미천한 글짓기가 부끄러웠지만, 정우정, 아니 박민정 작가처럼 나도 할 수 있다면 계속 쓰면 작가가 될 수 있으려나?!

소설 속 작가는 본인의 가족사, 서독과 동독의 통일에 엮인 비극, 정체성과 삶, 씀이라는 행위 등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결코 무겁지만 한 건 아니다. 이 소설에 재미가 더해지는 것은 통일 전후 독일과 현재 한국의 상황이 오버랩되는 점이다. 정우정이 박민정은 아닌지, 이 소설 자체가 진실인지 허구인지 궁금증을 갖고 ‘서독 이모’를 읽으며 최근 재미있게 보는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이 떠올랐다. 현실에서 일어날 것 같지 않은 통일 같은 소재를 독일 이모와 그녀의 남편 클라우드의 이야기를 통해 불쑥 차용한다는 점에서 더욱 드라마처럼 느껴졌다. 소설 속 이야기들이 너무나 거짓말 같은데 그래서 더욱 진짜처럼 느껴지기도 해서 이렇게 덜컥 통일이 이루어지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현대문학 핀 시리즈>는 당대 한국 문학의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첨예한 작가들을 선정, 월간 ‘현대문학’ 지면에 선보이고 이것을 다시 단행본 발간으로 이어가는 프로젝트이다. (책날개 참고)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 선은 현재 021권까지 발행되었고, 30권까지 예정되어 있다. 어떤 출판사에서 이렇게 앙큼(!) 발랄한 책을 시리즈로 묶어놓았나 찾아보았더니 좋아하는 미래엔 출판사의 성인 단행본 브랜드 중 하나였다. 미래 엔에는 와이즈베리, 북폴리오, 현대문학이 속해 있다. 소설을 잘 알지 못할 때는 양질의 인문 서적을 출간하는 와이즈베리를 좋아했지만, ‘서독 이모’를 알게 된 이상 현대문학의 핀 시리즈에 관심 갖고 챙겨보려 한다. 다음 책은 017 이승우의 캉탕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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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드 인사이트
욘 리세겐 지음, 안세민 옮김 / 21세기북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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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76 / 경제경영. 마케팅] 아웃사이드 인사이트. 욘 리세겐. 안세민 옮김. 21세기북스. (2019)

빅데이터로 불리는 축적 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하여 나에게 유의미한 정보로 활용해야만 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메세지를 주는 이 책. 내부 데이터도 중요하지만, 외부 데이터를 얼마나,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기업의 흥망성쇠가 변화하는 모습을 블랙베리와 아이폰, 코닥과 인스타그램,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등으로 제시한다. 넘쳐나는 정보망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막연했는데 저자가 제시하는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시대의 변화와 흐름을 예측하는 방법을 알 수 있다.

하루에 만 보를 걸으면 100원을 얻을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 캐시 워크를 사용하지 않는 20대~40대가 있을까? 하루에 고작 100원이지만 공짜는 좋으니 핸드폰을 무한 흔들어 걸음 횟수를 올리기도 하고, 한두 걸음을 더 걷기도 한다. 그러한 데이터가 쌓여 어떻게 이용되는지는 알지 못한 채 나의 걸음걸이는 하나의 데이터 사례로 적용되어 사용되겠지. 핸드폰이나 패드, 인터넷이나 전자기기를 활용하는 모든 활동에는 자취가 남고, 그것을 통계자료로 활용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신기함이 한 해가 바뀔 때 나이 한 살 먹기 싫지만 먹을 수밖에 없듯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공포로 다가왔다. 무의미한 SNS 활동을 줄이고, 의미를 만들어가는 활동을 쌓아가야겠다. 이용당할 수밖에 없다면 역이용하는 선택을 해보는 것도 좋을 테니까.

기업 경영은 복잡한 활동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언제나 당신과 함께 일하는 사람에게 있다. 그들이 갖는 자신감, 열정, 신념이 미래의 사업 성과에서 언제나 가장 중요하다.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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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가 고장 났다고? - <푸른 동시놀이터> 앤솔러지 제3집 푸른 동시놀이터 104
<푸른 동시놀이터> 앤솔러지 지음, 강나래 그림 / 푸른책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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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73 / 어린이. 동시] 매미가 고장 났다고? 푸른 동시 놀이터 엔솔러지 제3집. 강나래 그림. 푸른 책들. (2019)

환경, 평등, 교육, 인성 등 의미 있는 어린이 책을 출간하는 푸른 책들 보물창고 출판사에서 동시 농사(?)를 정리하는 푸른 동시 놀이터 엔솔러지 제3집을 출간했다. 2018년 1월부터 2019년 8월까지 ‘푸른 동시 놀이터’ 블로그에 38명의 기성 시인들이 신작 동시로 모였고, 5명의 새로운 시인들이 신인 추천작으로 함께하여 100편에 가까운 동시 모음집이 만들어졌다.

어른의 시선으로 동시를 읽으며 요즘 작가들이 바라보는 아이들의 감성과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환경, 입시(공부) 같은 내가 어릴 적에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던 주제들의 동시도 있어서 과연 우리가 사는 공간이 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시는 어렵지만, 동시는 좋다. 정확하게는 동시조를 좋아한다. 이해하기 쉽고, 맑고, 함축적인 의미까지 담겨있어 가볍지만 깊이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기대하고 넘긴 이 책은 동시 작가들을 위한 결과보고서 같다. 좋은 음식도 한꺼번에 많이 먹으면 탈이 난다. 작가 소개나 그 동시를 쓴 이유 같은 걸 알지 못 한 체 마냥 읽고 있다 보니 동시 작가들이 서로를 격려하기 위해 만든 출판물 같은 느낌도 든다.

어린 시절 내게 동시란 일기 쓰기 숙제를 하기 싫을 때 때우는(?) 용도였다. 일주일에 3~4번씩 써야 하는 일기를 쓰기 싫을 때 짧고 쉽고 감정을 요약하는 글을 쓰는 희열이 있었나 보다. 일기장 속에 등장하는 동시가 제법 많았다. 동시라고 이야기하기 부끄러울 만큼 내용은 유치하고 오글거리지만, 그 시절 나도 동시를 즐겼던 것 같다. 요즘 아이들이 동시를 대하는 방식은 나의 어린 시절과 다른 것 같다. 요즘은 일기 쓰기 숙제 자체가 많지 않다. 더 다양한 할 일과 과제들로 요즘 어린이들은 바쁜 하루를 보낸다. 그리고 나선 핸드폰이나 패드 속 영상에 심취하여 새로운 세상을 탐험한다. 어린 시절 내게 동시 쓰기란 그 시절 내가 즐기던 상상 놀이터였다. 동시를 즐기는 즐거움을 아는 어린이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읽을거리를 찾아 읽고 싶고, 무겁고 두꺼운 건 싫을 때 찾아 한 두 편씩 읽으면 좋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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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적으로 산다 - 왕양명의 《전습록》 읽기 이음 클래식 2
임홍태 지음 / 문헌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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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69 / 인문학. 동양철학] 주체적으로 산다. 임홍태. 문헌재 (2019)-왕양명의 <전습록> 읽기

내게 고등학교 2학년, 윤리 시간은 참 어렵고 힘들었던 순간이다. 암기 과목 외우듯 뜻도 모르고 단어만 달달달 외워 시험만 잘 보면 그만인 시간이었다. 교과목 자체가 의미 없게 느껴지기도 했다. 고등학생 시간 중 단 1년, 일주일에 한두 시간 동안 시공간을 초월한 여러 학자의 사상을 훑어보려면 영어단어 외우듯 달달달 외우는 수밖에 없었던 당시 윤리 선생님의 교육방식이 조금은 이해되지만, 정말 재미가 없었고 가장 싫어하는 과목이었다. 하지만 최근 2~3년 전부터 동서양 학자들의 사상을 쉽게 설명한 책들을 가끔 읽는데, 위인들로부터 통하는 큰 줄기의 방향 같은 게 있다는 걸 느낀다. 지행합일, 격물치지, 심즉리의 양명학, 주자학을 반대하여 나타난 왕양명의 양명학 책을 읽게 되었다. 20년 전 그저 외웠던 그 실체를 알고 싶다는 호기심에 ‘주체적으로 산다’를 선택했다.

동양사상과 철학을 연구하는 저자 임홍태는 왕양명의 <전습록>을 재해석하는 방식으로 책을 집필하였는데, 동양철학에 대한 깊이가 얕은 독자로서 비슷한 단어들이 불규칙적으로 반복되는 글을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 ‘문학적 상상력’으로 이해하려 노력하며 읽어냈지만, 전체를 이해한 것 같진 않다. 하지만 중요한 건 외부나 타인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이라는 것. 양명학의 핵심은 마음이라는 건 느낄 수 있었다.

정말 싫어하던 윤리 과목, 사상가들의 사상을 이제는 스스로 찾아본다. 2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학자들과 사상, 그 속뜻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살면서 앞이 보이지 않을 때, 길을 잃고 헤맬 때 선인들의 책에 기대어 숨 고르기를 하게 된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지칠 때마다 버팀목 같은 책을 만난다. 4년 전 최진석의 생각하는 힘, 노자 인문학(위즈덤하우스, 2015), 3년 전 이진우의 니체(휴머니스트, 2015)가 그랬다. 그 책들을 읽으며 어렴풋이 터닝포인트를 맞이했다. 좀 많이 지치고 무기력한 요즘의 내게 ‘외부의 자극에 흔들리지 말고 나 자신의 마음’에 집중하라는 이 책 덕분에 생각 가지치기를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책장이 술술 넘어가진 않지만, 꾸역꾸역 해내고 싶다. 학창 시절 선생님이 시켜서 꾸역꾸역 외워야만 했던 양명학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지키고 싶은 내 인생이기 때문이다. -조금 어려웠지만,- 그런 의미에서 좋은 때에 좋은 책을 만났다.

나무를 심는 사람은 반드시 나무의 뿌리를 북돋아야 하며, 덕을 심는 사람은 반드시 그 마음을 길러야 한다. (38)

어떤 일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내 마음이 생각하는 바를 믿고 자기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분명히 알아서 이를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시시각각 ‘... 하려고 하는’ 생각을 유지한다면 나의 생각이 ‘나는... 하려 한다’는 데서부터 점차 ‘나는... 해야 한다’ 또는 ‘나는 반드시... 해야 한다’는 쪽으로 바뀌어감을 알 수 있습니다. 마음이 생각하고 원하는 바를 분명히 알아서 대담하게 견지해나갈 때 비로소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는 잠재 능력을 제대로 발현할 수 있습니다. (33)

자기를 위하는 마음이 있어야 자기를 이길 수 있다. (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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