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 장면을 보다가 불현듯 깜짝 놀란 이유는 아이보리가 연출한 영화의 러브신이 전개된 곳과 같은 곳, 즉 한 면이 온통 덮인 보리밭 언덕임에도 양귀비꽃이 단 한 송이도 피어 있지 않아서였다.
"황금빛 보리밭에 빨간 양귀비가 피어 있어요"라고 어딘가에서 본 풍경을 시어머니께 이야기한 적이 있다. "꿈을 꾸는 듯 아름다웠어요." 그러면 농가 출신의 그녀는 뭔가 이상하다는 듯 아리송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망측해라, 양귀비가 피어 있는 보리밭이 아름답다니."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우리한테는 수치야. 그건 잡초에 지나지 않으니까."
「로렌초의 밤」에 나오는 보리밭을 보면서 나는 이탈리아에 아직 완전히 동화되지 않았던 시절의 나 자신을, 그리고 시어머니와 나누었던 그 대화를 떠올렸다.
농민의 노고가 어린 보람찬 결실의 상징인 보리밭에 빨간 양귀비꽃이 피어 있으면 체면이 서질 않는 법이다. 이 주변 땅에서 자란 타비아니 형제라면 당연히 그걸 충분히 알고도 남았을 터, 그래서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 영화는 양귀비꽃 대신 자신들의 손으로 자유를 지켜내려던 사람들의 빨간 피로 보리밭을 물들인다. - P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