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날맨날 이런 공부만 하고 싶어요! - 초록샘과 함께하는 신나는 교실 이야기 살아있는 교육 41
김정순 지음 / 보리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맨날 맨날 이런 공부만 하고 싶어요

 

가을에는 열매 맺기를

온 땅에 가득한 풀 나무들이 철 따라 열매 맺는 걸 보면 참 놀랍다. 난 스스로 부끄러워진다. 나는 언제쯤 열매 맺을까.

 

봄 여름 가을 겨울, 철 따라 아이들과 살아온 이야기를 묶은 책 <맨날 맨날 이런 공부만 하고 싶어요>를 읽었다.

 

교사를 찍어내는 공장인 교대에서 공산품으로 만들어진 나는, 선생을 십 수년 하면서도 교육이 뭔지, 선생이 어떠해야하는지 스스로 정의 내리지 못했다. 온갖 복잡한 법과 조항과 규칙과 시수의 그물 속에서 나는 규칙을 하나 하나 준수하느라 내 삶을, 내 교육을 낭비해버렸다. 봄은 또 오고 꽃은 피고 지는데, 나는 철들지 못했고, 선생으로 열매 맺지 못했다.

 

배우는 까닭은 살려고라는 뜻매김은 넓고 깊고 또렷하다. 이 뜻 위에서 정순샘의 교육이야기가 펼쳐진다. ‘살려고 배운다교육은 살게 하는 것이겠고 학교살리는 곳’, 선생은 살리는 사람’. 학생은 그 안에 살 힘을 가진 이이렇게 생각을 펼쳐 볼 수도 있을까?

 

살게 하려는 정순 샘이 가장 먼저 하는 것은 생각이다. 교과서와 학교 행사만 따라가기에도 시간이 부족한 세상에서 초록샘은 남이 시키지 않은 일을 찾아낸다. 아이들을 살게 할 수 있는 좋을 것들을 궁리한다. ‘개똥이들과 첫만남을 위해 교실에서도 여러가지 일을 합니다.(16)’ ‘아이들마음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방법을 궁리했어요.(21)’ ‘개똥이들이 자기 꿈을 생각하고 이 세상의 빛이 되는 일을 궁리하면서 살아갔으면 합니다.(25)’ ‘미세먼지 탓에 바깥 놀이는 엄두도 못내요. 다행히 오늘은 날씨가 좋아요. 이런 날에는 열 일 제쳐 놓고 바깥 나들이를 하자고 합니다.(35)’ ‘마침 중간 놀이 시간이라 우리는 책상을 뒤로 밀고 모두 교실에 누웠습니다.(39)’ ‘날씨가 추워지면서 교실에 있는 시간이 많아집니다. 교실에서 무엇을 해 볼까?’

 

살게 하려는 초록샘에게 자연은 중요한 교육의 바탕이 된다. 큰 누리 없이 어느 생명이 살 수 있으며 대자연 없이 어느 어린이가 살 수 있을까? 아이들에게 봄 여름 가을 겨울 철에 따라 보고 듣고 먹고 느끼게 하려 한다. 봄에 피는 풀꽃을 보고, 진달래 꽃전을 먹고, 쑥털털이를 해먹는다. 여름에 호숫가로 소풍을 가고, 가을에는 밤을 줍고, 김장을 해먹고, 눈썰매를 탄다. 나비를 키워 날리고, 병아리를 키운다. 아이들은 나비 한 마리가 죽는 것을 보고 눈물 흘리고, 병아리가 태어나는 것을 보고 생명의 신비를 느낀다. 싫어했던 쑥이며 배추김치가 이제는 귀한 음식이 된다. 생명이 소중하다고 도덕으로 설교하지 않고, 다만 생명과 아이들이 이어지게 한다. 이어진 것들은 더이상 남이 아닌듯 하다.

 

초록샘은 완벽한 샘이 아니다. 이런 저런 실수를 한다. 일부러 하기도 하지만, 뜻하지 않게 실수한다. 완벽하게 준비되지 않았다. 선생님들 가운덴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준비되지 않으면 안하려는 분들이 많다. 나도 겨우 교대를 졸업하고선 아이들 앞에서 세상 만사를 통달한 사람인 척 한 사람이다. 그러나 정순샘은 아이들 앞에 서서 가르칠 때도 있지만, 완벽하지 않을 때는 마주 서지 않고, 아이들 쪽으로 간다. 가서 아이들과 한 편이 된다. 문제를 함께 해결해 나간다. 학생들이 선생님과 하나 됨을 느낄 때는 완벽한 가르침을 줄 때이기 보다, 이렇게 한 편이 되어 문제를 풀어나갈 때가 아닐까. 나는 이것을 참 못한다. 정순샘이 그저 부러울 뿐이다.

 

사마천의 사기에 가장 높은 정치는 백성을 따르는 것이고, 다음은 이익으로 백성을 이끄는 것이고, 세번째는 도덕으로 설교하는 것, 다음은 형벌로 겁주는 것, 가장 낮은 것은 백성과 다투는 것이라 했다. 정순샘은 아이들을 따른다. 그러면서 어른으로서 해야할 일들을 찾아낸다. 도움을 줄 만한 분들께 도와달라고 말한다. 안전을 확보한다. 따라가지 못하는 아이들을 챙긴다.

 

초록샘은 둘레와 함께한다. 아이들을 교육하는데 필요하다면, 학부모와, 교장 선생님과, 동학년 선생님들과, 급식실 선생님과, 학교 배움터 지킴이 할아버지까지 함께한다. 이 반은 외따로 떨어져 혼자 있지 않다. 둘레와 어울리며 살아간다. 그렇기에 더 든든하고 넓은 아름다움이 있다.

 

나도 철 좀 들어, 이렇게 초록샘처럼 물로 흘러가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