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군 제대 후 잘 알고 지내던 선배 중에 수시로 사색에 잠기기를 즐겨하던 형이 있었는데 외국으로 유학?을 가기 전에 마지막 만남에서 기형도 시인의 [입 속의 검은 잎]을 선물로 주며 자신이 가장 아끼던 책이라는 말을 전해주었습니다. 기형도 시인의 시를 읽으며 29세에 요절한 작가라는 정보와 시구들이 전해주는 힘, 삶을 지탱해가는 인간의 우울함이 한동안 정신적인 지배력을 행사한 체로 젊은 날을 보냈습니다. 당시의 선배가 건네준 책은 지금 없지만 그 뒤로 문학과 지성사의 시인선을 하나둘씩 사면서 [입 속의 검은 잎]은 소장 용과 선물 용으로 여러 권 구입했고, 지금 책상 옆 책장에 다른 시집들과 나란히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의 시 중에 가장 좋아하는 '질투는 나의 힘'의 한 구절인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라는 구절이 생각납니다. 짧은 생 불꽃같은 책 한 권을 남기고 사라진 시인이지만 마음속에는 누구보다도 생명력이 긴 작가로 남아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