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리아의 씨앗 - 열대 의학의 거장 로버트 데소비츠가 들려주는 인간과 기생충 이야기 크로마뇽 시리즈 2
로버트 데소비츠 지음, 정준호 옮김 / 후마니타스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말라리아의 씨앗’이지만, 실제로 말라리아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는 감염병과 싸우는 인류의 노력과 보건학의 문제점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이 이야기는 에볼라가 창궐한 우리에게도 시사점이 있다.


로버트 데소비츠는 런던위생열대의학대학원에서 공부를 하였으며, 나이지리아, 싱가포르, 파푸아뉴기니, 하와이 등 다양한 곳에서 연구와 강의를 한, 기생충학자이다. 여느 기생충학자와 마찬가지로 단지 연구를 위해 대학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아프리카, 아시아와 같은 현장에서의 경험도 많은 전문가이다. 다양한 경험을 한 그가 이 책에서 칼라아자르 라는 별명이 붙은 리슈만편모충을 인류가 어떻게 발견했는지에 대해서와 말라리아에 관한 것이다. 이 책은 독자들에게 생소할 수 있는 기생충에 대해 강의하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어느 누구에게도 들을 수 없었던, 기생충을 알아내고 이로 인한 고통을 줄여나가기 위해 인간들이 노력한 ‘과학’이라는 여정에서 있었던 실수들, 연구를 확장시키기 위한 기만, 사기, 과학자들의 우스꽝스러운 경쟁들을 보여주면서, 현실과 유리된 과학을 나중에 뒤돌아볼 때 어떤 모습인지를 보여준다. 즉, 과학 속의 ‘정치’ 이야기는 듣기에 흥미진진하지만, 뒷맛은 씁쓸하기만 하다. 반어법, 풍자, 비꼼 등의 장치를 통해 리슈만편모충과 말라리아를 밝혀내고 예방하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들의 모습을 재미있게 그려내지만, 그가 실제로 말하고 싶었던 것은, 현실과 유리되지 않는, 실제로 아픈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과학이었을 것이다.


이 책은 크게 두개의 장으로 되어 있는데, 각각 ‘그날 밤 소녀가 죽은’ 리슈만편모충 이야기와 ‘그날 아침, 어머니가 죽은’ 말라리아 이야기로 시작하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서로 다른 질병으로 죽은, 서로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이 두개의 이야기를 관통하는 것은 단지 질병만이 ‘소녀’와 ‘어머니’를 죽게만든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부족한 돈, 없거나 오지 않는 대중교통, 취약한 의료시설, 시골에서 근무’해야만’하는 경험이 부족한 젊은 의료진, 여성이라는 이유로 가정 내에서 자원을 많이 사용할 수 없는 사회적 풍토 등으로 인해 ‘소녀’와 ‘어머니’는 죽게되었다. 지금 우리는 한 치명적인 질병이 모든 인류에게 두려움을 주는 시대에 살고 있다. 에볼라는 2014년에 처음 발생한 질병이 아니다. 확인된 것만 1976년이었고, 그 이전에도 있었을 수 있다. 하지만 지난 30여년간 아프리카 사람들을 괴롭혔던 에볼라에 대해서는 치료법도, 백신도 개발된 것이 없다. 많은 사람들이 왜 이제서야 에볼라가 이렇게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으며, 유행이 커지게 되었는지를 궁금해한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질문이 에볼라 뿐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구매력이 충분한 미국, 유럽, 아시아 국가들의 환자들이 살 수 있는 치료제는 활발히 개발되고 있지만, 아프리카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는 말라리아, 황열, 에볼라, 마버그열 등은 치료제가 없거나, 치료제가 있더라도 현대 과학의 혜택을 충분히 받지 못했다.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다.


2010년 이후 ‘정의란 무엇인가’, ‘피케티 읽기’ 등 정의,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관심도가 우리 사회에서도 늘어났다. ‘없는’ 사람들이 감염병에 더 걸리고, 더 아프다는 것은 보건학에서는 오래 전부터 ‘유명한’ 사실이다. 왜 항상 아프리카가 더 아플 수 밖에 없고, 가난한 사람들이 어떻게 더 아프게 되는지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이 책을 반드시 읽어봐야 하겠다. 데소비츠와 같은 대학에서 공부했던 역자가 문장을 잘 다듬고, 친절히 주석을 달아놓은 것이 분명 기생충 감염에서 불평등은 왜 생기고, 과학은 왜 현실과 밀접해야 하는지를 알게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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