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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샤 창비청소년문학 117
표명희 지음 / 창비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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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샤 #표명희 #사전서평단

마땅히 갈 곳이 없어 공항에서 난민 같은 생활을 하는 무슬림 여성 버샤와 로봇에게마저 일자리를 빼앗길까 전전긍긍하는 비정규직 진우의 이야기가 번갈아 전개된다. 처음 1장을 읽었을 때에는 별로 흥미가 가지 않았다. 난민, 그 단어가 내게는 너무 먼 존재처럼 느껴졌다. 내가 과연 이 소설을 끝까지 읽을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은 2장에서 진우가 등장하자마자 곧바로 사라졌다. 공항이라는 장소 외에 어떠한 공통점이 없어보이는 이들의 이야기를 작가가 어떻게 풀어나갈지 궁금해졌다.

이들 사이에 공통점이 없다는 건 크나큰 착각이었다. 오히려 놀랄만큼 닮아있었다. 어디에도 자리잡지 못한 채, 여성이라는 이유로 교육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눈치만 보며 지내야 하는 버샤와 비정규직이라는 타이틀에 갇혀 하대하는 사람들을 견뎌내야만 하는 진우가 말이다. 아이러니하다.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이들에게 닮은 지점이 있다는 것이. 실어증으로 목소리도 내지 못하는 버샤의 이야기를 읽는 동안 알라딘 ost ‘speechless’ 가 떠올랐다.

But I won't cry

And I won't start to crumble

Whenever they try

To shut me or cut me down

I won't be silenced

You can't keep me quiet

Won't tremble when you try it

All I know is I won't go speechless

난민의 이야기가 담긴 소설이지만, 나는 동시에 무슬림 여성을 향한 차별에도 많이 집중하게 됐다. 이 세상에 전혀 관계없는 일이란 없다는 사실을 상기하게 만든다. 난민과 무슬림 여성을 비롯하여 우리가 듣지 못했던 수많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음을 일깨워주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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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시간 - 도시 건축가 김진애의 인생 여행법
김진애 지음 / 창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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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애 #여행의시간

팬데믹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우리의 일상을 제한했던 것들이 하나둘씩 해제되고 마스크를 벗고, 하늘길이 열렸다. 요즘 주변을 둘러보면 두 명 중 한 명은 반드시 여행을 떠났거나, 여행을 계획 중에 있다. 도대체 여행이 무엇이기에 이렇게 많은 이들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우수수 떠나는가. 아직 여행을 많이 다녀보지 못한 나는 한 번씩 그런 의문이 들곤 했다. 친구들과 대화를 하다가도 문득 여행 가고 싶다는 이야기가 나올 때가 있는데, 자연스럽게 맞장구를 치면서도 여행의 매력은 아직 알아차리지 못한 상태였다.

이 책은 그런 내게 꼭 필요한 정보를 주었다. 작가는 홀로 여행의 중요성을 일깨우며 글의 시작을 알린다. 이십 대 후반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혼자 여행을 가보았다는 작가의 경험은 나도 한 번 떠나보고 싶게 만든다. 혼자 떠난다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기에 작가가 이리도 강추하는 것인가? 작가가 배우고 느꼈던 것이 기술되어 있지만, 나와 그는 다른 사람이기에 분명 새로운 것을 안겨줄 것이라는 기대로 가득 차게 만든다.

내가 가고 싶은 여행보다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떠나야만 했던 여행이 더 많았다고 고백한 작가는 자신의 여행 경험을 책 속에 녹여내었다. '도시건축가 김진애의 인생 여행법'이라는 부제에 걸맞게, 여행지를 전문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분석한다. 미술이나 건축 분야에 완전히 문외한인 나이기에, 도시건축가의 입장에서 바라본 예술작품과 건축물을 풀어내는 작가의 표현 하나하나가 새롭게 와닿는다. 그 장소에 내가 간다면, 다른 분야를 공부하고 있는 내게는 어떤 깨달음과 변화가 찾아올까도 한 번 상상해보게 만든다.

이 책을 읽으면서 특히 좋았던 건, 작가가 여행을 통해 스스로의 부족함을 마주했던 대목이었다. 여행을 많이 다녀본 사람은, 혹은 무언가를 많이 해본 사람은 새로운 상황 앞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낼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하지만 여행이란 답이 없는 것이고, 익숙했던 장소를 벗어나 새로운 언어를 쓰고 문화를 가진 곳에 던져진 채로 발걸음을 옮기는 순간은 계속 모르고 싶었던 나의 한 부분을 직면하게 만든다.

여행길에서 드러나는 나의 본색.

그 발견은 우스꽝스럽지만 또 즐겁다.

나의 본색을 기꺼이 인정한다.

작가는 이를 나의 '본색'이라 표현한다. 우스꽝스럽지만 즐거운 존재, 우리가 기꺼이 인정한 채 데리고 살아야만 하는 것. 여행 이야기를 담은 책이지만, 나는 이 안에서 삶을 대하는 태도를 생각해보게 된다.

책을 읽고 있으면 여행에 인색한 나도 한 번 떠나보고 싶게 만든다. 연애와 같다는 여행, 나와 궁합이 맞는 공간은 어디에 있을지, 어떤 모양새를 하고 있을지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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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저녁 - 2023 대한민국 그림책상 수상작
권정민 지음 / 창비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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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출판문화상 수상 작가 권정민의 그림책 <사라진 저녁>이 출간되었다. 어느 날, 살아 있는 돼지가 배달된 아파트에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사실주의 화풍으로 현실을 유머러스하게 풍자하며 편리와 속도에 길들여진 현대인이 눈감고 있는 문제들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손가락만 까딱하면 모든 것이 집 앞으로 배달되는 시대를 사는 모두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동물권과 환경 등 우리 사회의 문제를 상기시키는 작품이다.

책 소개

책을 펼치자마자 보인 건 현관문 밖으로 손만 내밀고 배달음식을 가져가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낯설지 않았다. 아니, 내 모습이기도 했다.

그 아파트 사람들은 집 밖으로 나올 필요가 없었다. 나 또한 그랬다.

당장 이번 주만 해도 두 번이나 배달 어플을 이용해 음식을 주문했다.

아파트 사람들은 서로 얼굴도 마주하지 않은 채 음식을 놓고 가면, 손만 내밀어 안으로 가져가길 반복한다.

재료를 다듬을 틈도 없이 바빠진 식당은 결국 완성되지 않은 음식을 보낸다.

재료를, 살아있는 돼지를.


어느 저녁, 돼지 한 마리가 산 채로 아파트 현관에 배달된다. 돼지 몸에는 밀려드는 주문 때문에 미처 요리를 못 했으니 직접 해 드시라는 식당 주인의 쪽지가 붙어 있다. 돈가스를 주문한 702호, 감자탕을 주문한 805호, 족발을 주문한 904호……. 주민들은 비상 대책 회의를 열어 돼지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의논한다.

줄거리

충격적인 광경이다. 요리할 시간이 없으니 직접 해서 먹으라는 식당의 쪽지와 함께 도착한 돼지.

나는 태연하게 바라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아파트 사람들이 주문한 음식은 모두 평소의 내가 자주 먹는 것이기도 하다.

음식 대신 살아있는 돼지가 도착한다 상상만 했을 뿐인데 머리가 복잡해졌다.

우리처럼 살아있는 돼지의 온몸을 난도질해 부위별로 나누어 갖고 각자 요리해서 먹는 사람들을 생각해보니, 입안에 넣어 행복하게 웃고 있을 나를 상상했다.

매일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힘 들이지 않고 배달 음식을 주문하던 나는 무엇을 먹어왔던 걸까.

짧은 그림책 안에 강렬한 메시지가 담겨있다.

부드러운 분위기의 삽화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돼지의 생기없는 눈빛이 책장을 덮은 뒤에도 자꾸만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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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 에세이&
백수린 지음 / 창비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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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린, ‘내’가 전부이지 않은 세상과 풍경들”

소설가 백수린의 산문집이 2년 만에 출간되었다. 이번 책은 작가가 수년 전 높은 언덕 위 낡고 작은 단독주택으로 거처를 옮긴 이후 긴 시간에 걸쳐 틈틈이 써온 산문을 엮은 것으로, 창비 ‘에세이&’ 시리즈의 네 번째 책이기도 하다. 혼자의 공간에서 혼자의 시간을 채운 편린들이 한 편 한 편의 글로 단정히 기록되어 있다.

작가는 옛 성곽이 보이는 풍경에 반하고 단독주택에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앞서 연고도 없는 동네로 이사했다. 높은 언덕과 폭이 좁은 골목, 방 안까지 흘러들어오는 각종 외부 소음, 무례한 이웃 등 얼마간의 불편이 따르지만, 다정한 M이모, 살뜰한 E언니, 인생의 첫 강아지 봉봉, 무심히 챙겨주는 이웃집 아주머니와 같은 따스한 존재 덕분에 행복의 순간으로 하루하루를 채울 수 있었다. 작가는 이해와 사랑의 시선을 담아 집과 동네에 찬찬히 스며들어가는 여정을 촘촘하게 그려 보인다.

책 소개

백수린 작가님의 책은 올 여름 읽은 『여름의 빌라』이후 두 번째다. 섬세하고 따스한 이야기로 가득했던 소설을 써낸 작가님의 안에는 어떤 시간과 생각이 담겨있을까 궁금했다. 창비에서 '행복수집가' 라는 이름의 서평단을 모집한다고 하기에 헐레벌떡 신청했다. 적어도 그 책을 읽는 동안에는 원없이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행복이 곁에서 지켜줄 것 같아서였다.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도 전에 도서와 함께 온 편지와 책갈피에 웃음부터 새어나왔다. 백수린 작가님은 이런 사람이구나. 고독과 연약함을 보듬어주는 이야기가 담겨있는 책이라는 걸 읽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나의 작고 환한 방>이라는 제목의 1부에서는 백수린이라는 사람이 살아가고 있는 공간, 언덕 위의 집에 대해 얘기한다. 현재 살고 있는 동네를 알려준 독일로 유학을 다녀온 엘리트 여성이었으나 대단한 직업을 갖지 않은 채 농사를 지으며 살아갔던 M이모와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집'이라는 공간에 대한 작가님의 생각을 들려준다.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나의 작고 환한 방>이라는 제목의 1부에서는 백수린이라는 사람이 살아가고 있는 공간, 언덕 위의 집에 대해 얘기한다. 현재 살고 있는 동네를 알려준 독일로 유학을 다녀온 엘리트 여성이었으나 대단한 직업을 갖지 않은 채 농사를 지으며 살아갔던 M이모와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집'이라는 공간에 대한 작가님의 생각을 들려준다.

우리의 집은 어디일까? 묻는 문장 앞에서 나는 생각한다. 그러게, 나의 집은 어디지. 나에게 집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지. 하루의 절반 이상은 꼭 집에서 시간을 보내면서도, 종일 집에만 붙어 보내는 날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집이라는 공간에 대해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항상 당연한 공간이었으니까. 이 책은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든다.

<산책하는 기분>이라는 제목의 2부에서는 뽀리에서 붕대로, 붕대에서 봉봉이로, 때로는 재롱이로 불리기도 했던 반려견과의 추억을 들려준다. 노견을 돌보던 시절의 일기와 떠나보낸 이후의 슬픔이 페이지마다 촉촉히 묻어있다.

"봉봉 어디?"

"봉봉이는 코 자고 있어."

그러자 조카가 말한다.

"봉봉 일어나. 봉봉 나와."

"봉봉이는 못 나와, 봉봉이는 코 자야 해."

조카가 또 말한다.

"봉봉 일어나. 강아지 깨워."

그러게, 아가야.

이모도 그럴 수 있으면 정말 좋겠어.

봉봉이 무지개다리를 건넌 이후 슬픔이 일상이 되었다는 작가님이지만, 그 속에 담긴 사랑이 크게 와닿았다. 봉봉이 가르쳐주었다는 사랑은 작가님을 거쳐 다른 존재에게 가 닿는다.

지금 네게 사랑을 주는 게 내가 아니라 봉봉이란 걸 너는 아는지?

봉봉은 언제나 이렇게 내게 돌아온다. 몇번이고 다시. 이 세상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한없는 사랑의 형태로.

이 책은, 이 사람은 이렇게나 따뜻하다.

3부는 <멀리, 조금 더 멀리> 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데, 1·2부보다는 멀리 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언덕 위의 집을 구하는 과정에서 시작해 남성이 보는 세상과 여성이 보는 세상이 다름을 다시금 깨달았던 순간이나, 맡고 있는 소설 수업 진행 방식에서 시작해 어두운 골목에서 백수린의 삶의 일부였던 물건을 가지고 떠난 누군가의 이야기 같은 것들을.

세상의 많은 시시한 서사들은 함부로 찍은 낙인처럼 사람들을 가두지만,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얼마든지 그것에 저항하며 자신만의 새로운 서사를 만들 힘을 가지고 있다. 사주풀이를 들으며 나는 전형적인 서사를 부순 자리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쓸 힘이 어느새 내게 생겼다는 걸 기쁜 마음으로 깨달았다. 나는 그것이 나만의 힘이 아니라, 유구한 세월 동안 자신의 목소리를 찾기 위해 애써온 많은 여성들로부터 온 힘이라는 걸 알았다. 범람하는 강물처럼 둑을 무너뜨리고 누군가에게 또 흘러가야만 하는 힘. 기나긴 밤의 끝에 이르면, 그 힘은 투명 인간인 듯 살아가는 또다른 많은 이들을 새처럼, 바람처럼 자유롭게 살아가게 하리라.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을 읽은 덕분에 아주 오랜만에 깊이 사색할 수 있었다. 안희연 시인은 아주 오랜만에 충만하다는 느낌. 근래 만난 가장 아름다운 책이다. 라는 문장으로 추천사를 마무리했다. 이 책은 우리를 이렇게 만들어준다.

역시나 봉봉에게서 배운 사랑이 잔뜩 깃들어있는 편지로 이 글을 마무리짓는다.

하루하루가 촘촘한 결로 세분되는 행복의 감각으로 가득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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ㅈㅈㅅㅎ (표지 2종 중 랜덤 발송) - 조금 사소하고 쓸 데 많은 제주 산호에 관한 거의 모든 것
녹색연합 외 지음, 박승환 사진, 조인영 감수 / 텍스트CUBE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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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 제주 산호를 입체적으로 다룬 책. ㅈㅈㅅㅎ? 초성 제목부터 무엇인가 파격적이다. 환경운동 시민단체인 <녹색연합>이 이렇게 발랄한 책을 내다니. <ㅈㅈㅅㅎ>는 ‘제주 산호’에 초점을 맞춰 대중에게 쉽고 친근하게 다가간다. 한반도 기후 위기와 제주 해양생태계의 중요성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독자들을 최대한 ‘산호’와의 만남과 사귐으로 즐겁게 이끈다. <ㅈㅈㅅㅎ>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따라갈수록 우리가 몰랐던 제주 산호의 존재감이 즐겁게 다가오다. 산호의 아름다움과 다양한 생태를 통해 제주 바다 구석구석을 누빈다.

이 책에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산호 도감이다. 천연기념물 제442호로 지정된 제주 연안 연산호 군락 및 제주 인근 해역에서 만날 수 있는 산호 30종의 도감을 수록했다. 박승환 사진작가의 산호 사진(천연기념물 제456호 해송, 제457호 긴가지해송 포함)과 산호 서식지, 학명과 계통 등이 정리됐으며 조인영 국립해양생물자원관 선임연구원의 감수를 받아 산호의 특징과 구조, 생식 등을 소개한다. 또한 산호를 지키는 녹색연합 활동가, 생태 예술가, 사진작가, 연구원이 각자의 목소리로 풀어나가는 에세이와 직접 산호를 관찰할 수 있는 서귀포, 송악산, 성산포, 제주 북부 해역의 다이빙 포인트 지도도 수록했다.

책 소개

나는 바다와 별로 친하지 않다. 어릴 때에는 물이 무서워 오리보트 하나도 타보지 못하고 엉엉 울어제꼈고,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등록했던 수영은 어떤 영법도 익히지 못한 채 그만두었다. 물은, 바다는 가까이 다가가지 말고 멀리서 바라보는 게 가장 좋은 거라고 생각했다. 드넓은 바다 속에 숨겨진 세상은 내게 관심대상이 아니었다.

『ㅈㅈㅅㅎ』는 프롤로그의 제목처럼 산호라는 신세계 속으로 나를 풍덩 데리고 갔다. 바다와 산호에 대한 애정이 여실히 느껴지는 문장과 함께 삽입되어 있는 제주 바다의 사진은 그야말로 아름다웠다. 물이 무서운 나조차도 한 번 뛰어들고 싶을 만큼.

오키나와의 헤노코에서 만난 주민과 활동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에게 바다는 보물 같은 곳이에요. 산호 75,000개체와 산호를 집 삼아 머무르는 담쉘피쉬, 말미잘새우, 민달팽이가 있는 곳이죠. 이곳엔 멸종위기인 해양 포유류 듀공 세 마리가 살아요. 미군기지를 건설하려는 헤노코 바다는 듀공이 해초를 먹은 흔적이 많은 곳입니다. 이곳이 매립되면 망가지는 건 바다만이 아닙니다. 매립용 흙과 돌도 채굴해서 주변 산도 망가집니다. 그곳에 깃들어 사는 많은 생명도요."

나는 그동안 물이 무섭다는 이유로 바다를 멀리하면서, 그곳은 나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동떨어진 세계라고 생각해왔던 건지도 모른다. '나의 문어선생님'과 같은 다큐멘터리가 떠오르고, sns에 #saveourocean 을 태그하여 바다를 지켜야 하는 이유에 대한 게시물이 올라와도 '나는 바다 잘 안 가니까, 나는 가서 쓰레기 버리고 온 적 없으니까' 라고 안일하게 생각하며 외면하기 바빴다. 지구와 바다는 결코 따로 생각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기후 위기에 대해 무겁게 논하고 있지는 않다. 제목에 충실하게 제주 산호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면서 자연스럽게 생각할 지점을 안겨준다. 나는 이렇게까지 산호의 종류가 다양한 줄은 꿈에도 몰랐다. 넘겨도 넘겨도 끝나지 않는 산호 소개를 읽다가, 아직 기록되지 않은 산호들이 많다는 문장을 떠올리며 다시 한 번 놀랐다. 나는 얼마나 좁은 세계에 갇혀 지내왔던 건가. 산호는 대체로 여름에 생식한다는 것도, 산호는 '생물'이지만 산호초는 '지형'이라는 것도 모두 처음 알게되었다.

제주 바다의 산호 탐구가 끝날 무렵, 많은 사람이 이렇게 말했으면 좋겠습니다.

"난 밤수지맨드라미와 꽃총산호에 눈길이 가네. 너희들과 만나고 싶어."

84페이지부터 143페이지까지 소개된 30가지의 산호 프로필을 보면서 생각했다.

함박눈이 내린 것 같은 둥근컵산호와 사슴뿔을 떠올리게 하는 별혹산호에 눈길이 간다. 너희들과 만나고 싶다.

공포의 대상이기만 했던 물과 바다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는 시간이었다. 다음에 제주에 가게 된다면 제주의 바다를 두 눈에 가득 담고 와야지. 오랜 시간 나를 옭아맸던 공포증을 극복할 수 있게 된다면, 그때는 꼭 제주 산호에게 웃으며 인사를 건넬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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