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밀레니엄 (문학동네) 1
스티그 라르손 지음, 임호경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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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좀 읽은 사람이라면 [밀레니엄] 시리즈를 빼놓을 수 없다."라는 문구를 어느 누군가의 SNS에서 읽었다. 그리고 소히 책 좀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나였는데, 애석하게도 [밀레니엄 시리즈]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호기심이 발동했고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스웨덴의 사회 고발


전문 기자 "스티그 라르손"의 소설인데 안타깝게도 작가가 밀레니엄시리즈 3부까지만 쓰고 작고하였으며, 이어서 범죄전문기자 출신인


라게르크란츠가 공식 작가로 지정되어 시리즈를 이어간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당연히 이 책의 배경은 스웨덴이라는 나라였고,


스웨덴이라는 나라는 어렸을 때부터 많이 들어본 나라였지만, 구체적으로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또 어떤 나라인가에 대한 부분에선


전무했다. 심지어 스웨덴 나라의 소설도 읽은 적이 없었다.


 "스웨덴"하면 잘은 모르지만 나라의 이미지가 긍정적인 편에 속했다.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 그리고 북유럽 쪽에 속해 있다는 정도.


SNS 내에서의 [밀레니엄 시리즈]에 대한 평가는 온통 극찬 일색이었다. "굉장히 방대한 분량이나 한 번 잡으면 헤어나올 수


없다." 그리고 리스베트라는 여자에 대한 찬사, 밤을 꼴딱 새서 이 책을 다 읽었다는 후기들. 꼼꼼히 후기들을 살펴본 뒤


"믿고 볼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기다리던 밀레니엄 시리즈 중 1부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책을 받았을 때


생각보다 너무 두꺼웠기에 아무리 이번 10월에 아주 긴 연휴가 있다 해도 과연 다 독파할 수 있을까, 이 정도 분량이라면


두 달은 잡아야 하지 싶었다. 거의 벽돌책 수준이라고 해야 할까. 역시 춥고 어두운 스칸디나비아의 겨울왕국 스웨덴답게


온종일 집에 틀어박혀 책을 즐겨읽는 독자가 많아서 이와 같이 방대한 분량의 책이 출간되는 건 아닌지 하고 연관지어


생각해 보기도 했다. 그렇게 [밀레니엄 시리즈]에 입문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머릿속에 쉽게


기억되지 않았다. 영미권 쪽 소설은 많이 읽었는데 역시 북유럽 소설은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낯설고 입에 착착 감기지


않았다. 이 [밀레니엄 시리즈]의 첫 인상은 내가 유일하게 읽은 북유럽 소설인 "페터 회"의 장편소설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과 비슷했다. 극도의 세밀한 상황 묘사와 심리묘사, 또 치밀감까지. 장르 또한 추리소설이라는 점에서


비슷했다. 단,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은 번역이 좀 이상한 건지 아주 친절하게 묘사를 세밀히 해주고 있는데도


머릿 속에 구체적인 상황, 이미지들이 적절히 떠오르지 않고 읽는 내내 전개가 답답하고, 다소 지루한 부분도 있다고


느낀 반면,  이 밀레니엄 시리즈는 가독성이 너무 좋아서 읽는 속도 또한 빨랐다. 또 박진감 넘치는 속도감, 흡인력,


예측할 수 없는 전개, 마치 주인공과 동일시 된 것 같은 긴장감이 느껴져 정말 읽는 내내 숨가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장르는 "추리소설" 이라고 하지만, 단순히 장르에 대한 벽을 넘어서 굉장히 다양한 사회적 문제점들을


다루고 있기에 결코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은 아니다. 경제전문분야, 또 리스베트 살란데르를 떠올리면 페미니즘


이 떠오르기도 했고, 각종 폭력 문제라든지, 소위 엘리트 집단들이 벌이는 각종 사회악과 같은 부분, 또 산업 스파이


에 대한 부분도 다루고 있으며, 등장인물들의 얼키고 설킨 관계들 속에서 사랑, 우정, 신뢰와 같은 감정도


다루고 있기에 인간사의 모든 감정과 사건, 사회, 법률 등 전반적인 부분을 총망라 한 집합체 소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가의 경계선이 보이지 않는 지식들에 감탄이 나왔다.


 먼저 이 소설에서 내가 제일 반한 인물인 "리스베트 살란데르"에 대해 꼭 언급하고 싶다. 그녀는 신비로운 존재


이지만 우리가 사회적인 시각에서 보자면 부인할 수 없는 "문제아"의 범주에 속한다. 스웨덴에도 우리나라로


따지면 "성년후견제도"라고 할 수 있는 "후견 체제"가 있다. 말이 후견 제도이지, 그 실상을 들여다보면 여러 가지


법적인 허점과 시스템에 문제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도 이 소설을 읽으면서 스웨덴이라는 나라가 법적


무능력자를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지 새롭게 알게 되었는데, 상당히 인상 깊은 부분이었다.


이 책의 저자인 스티그 라르손이 이 법적 무능력자를 다루는 제도인 "후견인" 제도를 소설을 통해 사회적 문제로


부각시키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상당히 흥미진진 하게 읽은 부분이었다.



[*263page : 1989년 이래 "법적 무능력자의 개념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대신 심신미약자를 보호하는

                  제도적 장치에는 두 단계가 존재했다. "법정 자원봉사자"와 "후견인"이었다.


                   법정 자원봉사자는 다양한 이유로 공과금 납부나 위생관리처럼 일상생활을 꾸리는 데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자원해서 돕는 사람이다. 대개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가 법정 자원봉사자로 지명

                   된다. (....생략)

                    

                    여기서 피봉사자는 자신의 재산을 관리할 수 있고 상호 협의하에 모든 걸 결정할 수 있다.

                    이는 후견체제 보다 한결 완화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후견 체제"는 훨씬 엄격하다. (...생략) 민주주의 사회에 존재하는 가장 형편 없는 조치일 것이다.


 

한편, 리스베트와 같이 완벽한 여자가 그녀의 후견인 닐스에게 유린 당하는 부분은 정말 놀라웠다. 물론 리스베트는

이 위기를 적극 활용하여 복수의 기회로 삼고 닐스에게 당한 것을 몇 배로 시원하게 갚아주지만 리스베트와 닐스

로부터 변태적이고 잔인한 수준의 성폭행을 당한 후 닐스 변호사가 리스베트에게 건넨 말은 이 책을 읽는 나에게

조차 분노를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262page : "우리가 한 놀이를 다른 사람에겐 말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생각해봐. 누가 네 말을 믿겠어?

                   이것 보라고! 전부 네 정신이 온전하지 않다는 걸 증명하는 서류야." 그래도 여전히 대답이

                   없자 그가 말을 이었다. " 네가 한 말과 내가 한 말 중에 사람들은 과연 누구의 말을 믿을까?

                   어떻게 생각해?"​ 



이 부분을 읽으면 닐스 변호사는 역시 후견인 체제의 허점을 제대로 파악하고 이를 적극 활용하는 쓰레기 같은


인물이다. 세상에는 꼭 이런 자들이 있다. 촘촘히 쌓아놓은 벽돌 사이의 틈을 찾아 헤집고 다니는 벌레와


같은 작자들. 리스베트는 아주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 닐스에게 치욕스러운 수치감과 고통을 안겨준다.


닐스는 리스베트에게 아주 크게 혼쭐이 나고 그녀의 곁에 접근도 할 수 없게 된다. 굉장히 통쾌한 복수였다.


상당히 잔인한 복수였으나 눈쌀이 찌푸려지기는 커녕 한마음이 되어 리스베트의 복수극을 응원하는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리스베트의 분위기는 너무 기묘하다. 신비롭고, 좀 야성적이기도 하지만 치명적으로 아름다운 느낌이랄까.


손에 잡고 싶지만 잡히지 않는 것 같은 리스베트. 그런 그녀는 누구에게도 길들여지지 않는 야생동물


같은 존재이지만 딱 한 사람. 오직 미카엘 블롬크비스트 앞에선 예외이다. 사실 이 [밀레니엄 시리즈]


의 주인공 격인 인물인데 나는 전적으로 미카엘 보다는 리스베트에게 마음을 빼앗겼기에 리스베트에 대한


부분을 먼저 언급했다.



 미카엘은 예리하지만 내적으로 순진한 기질이 있는 인물이다. 에리카와 함께 [밀레니엄] 잡지사의 공동


사주이자 편집자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밀레니엄 잡지사의 간판이라고 할 수 있는 기자이다. 그는 특유의


예리함으로 경제 전문 기자로서의 소임을 톡톡히 해낸다. 각종 기업의 비리를 낱낱이 파헤치고 같은


동료 기자들에게도 쓴소리를 마다 않는 미카엘은 기자들 세계에서 "칼레 블롬크비스트"라고 불리우며


약간 공공의 적과 같은 존재이다. 그런 그가 여름 휴가지에서 동창생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스웨덴의 거대 기업 벤네스트룀의 실체에 대해 뭔가 알게 되면서부터 이 밀레니엄 시리즈는 거대한 막을


올리게 된다. 그러나 충분한 증명이 되지 않은 상태였기에 미카엘은 역으로 벤네스트룀으로부터


"명예훼손죄"로 고발을 당하기에 이르고, 소송에서 지게 되면서 밀레니엄도 심각한 국면을 맞게 된다.


그러던 중 방에르 가문의 대리인인 디르크 프로데 변호사가 미카엘에게 연락을 취해 방에르 가문의


헨리크 회장과 만날 것을 요청하고, 이에 앞일이 산더미 같이 산적해 있는 미카엘은 거절의 뜻을


비치지만 결국 헨리크 회장을 만나기 위헤 헤데스타드의 헤데뷔 섬까지 가게 된다. 헨리크는 미카엘에게


두 가지 의뢰를 한다. 한 가지는 표면적으로 방에르 가문의 연대기를 집필해 줄 것을 요청하고,


또 한 가지는 수십년 전에 발생된 하리에트의 실종 사건을 해달라는 의뢰이다. 미카엘은 자신이 처한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그의 두 가지 의뢰를 받아들이고 싶지 않지만, 어느새 헨리크가 이야기 해주는


하리에트 실종 이야기에 압도되고 만다. 그렇게 미카엘은 하리에트 실종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으로서 방에르


가문의 비밀들을 하나 둘 파헤치게 된다. 비록 몰락해 가는 기업이라고 하나 아직 스웨덴의 산업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 중인 방에르 가문은 파면 팔수록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은 기업이다. 방에르 가문의


주위를 자욱한 안개가 둘러싸고 있는 형국이다.


 미카엘은 아주 작은 조각 하나도 놓치지 않는 섬세함과 집요함으로 사건의 실마리에 조금씩 가까워지던 중


디르크 변호사로부터 자신이 이 하리에트 실종 사건을 담당하기 이전에 뒷조사를 당했다는 사실을


듣고 크게 불쾌해 한다. 하지만 이윽고 자신의 각종 신변이 기록된 보고서를 읽는 순간 대체 어떤 작자가


이렇게 치밀하게 대인조사 업무를 할 수 있는지 놀라움과 분노가 뒤섞인 이상한 감정을 경험하게 되고,


끝내 리스베트와 미카엘의 운명적인 첫 만남이 시작된다. 누구나 그렇듯, 미카엘도 리스베트의 첫 인상이


인상깊어서 리스베트의 몸에 있는 문신이라든지 구석 구석을 다소 신비한 시선으로 바라보지만, 미카엘은


어떠한 편견이 담긴 의혹의 눈빛으로 리스베트를 대하거나 윽박지르지 않는다. 리스베트도 알 수 없는


감정, 편안함으로 미카엘에게 이끌리며 이 둘의 조합은 환상의 케미를 뽐낸다. 이 둘의 밀당을 구경하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읽는 내내 나조차도 미카엘과 리스베트의 관계는 사랑일까, 우절일까. 아니면


엔조이인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감정에 서투른 리스베트이니만큼 그녀조차도 미카엘을


대하는 자신의 태도에 섬뜩 놀라게 된다. 그러나 특히 제일 인상 깊었던 것은 미카엘의 모든 인간관계가


"신뢰"를 기반에 두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직장동료인 크리스테르, 에리카는 물론 그의 파트너 리스베트,


또 종국에 가선 자신의 뒤통수를 "살.짝.!" 쳤다고 할 수 있는 방에르 가문에게까지 신뢰와 의리의


미덕을 잃지 않는다. "사랑", "우정"이라는 감정 위에 "신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리스베트와 미카엘이


역경 속에서도 모든 미션들을 결국 성공으로 이끌 수 있었던 것 역시 서로를 믿는 "신뢰"가 저변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592page : 나는 이렇게 정의했어. 우정의 토대를 이루는 건 두 가지, 존경과 신뢰라고 생각해.

                 이 두 요소는 반드시 함께 있어야 해. 누군가를 존경한다 해도 신뢰가 없다면 우정은

                 갈수록 약해질 뿐이야.


[367page : <미카엘이 자신의 딸 페르닐라가 셸레프테오에 가는 것을 아침에 배웅하며 건네는 대화 중>

                "난 신을 믿지 않아. 하지만 네가 믿는 건 존중하고 있어. 사람은 누구나 무언가를 믿어야 하거든."



더 이상의 스토리는 스포가 될 우려가 있어 생략하고 싶다. 단, 이 소설은 단순 추리소설, 미스터리 소설이라는


장르를 뛰어넘어 여러 소재를 다양하게 다룬 문학의 집대성이라 생각된다.


스웨덴이라는 나라의 작은 섬마을 헤데뷔라는 지역에서 일어난, 또 하리에트 실종 사건의 용의자의 물망에 오른


사람의 수가 많지 않고 방에르 가문의 사람들로 한정되어 있지만 읽는 내내 대체 누가 범인인 건지 종잡을


수 없다.


[*271page : "사실 흥미로운 수수께끼지. 섬을 배경으로 한 밀실 미스터리라고나 할까. 이 사건에서

                   정상적인 논리를 따르는 건 아무것도 없어. 답을 찾은 질문도 하나 없고 단서마다 막다른

                   골목에 부딪히지."


                 "바로 그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사람들의 정신을 강렬하게 사로 잡는 거야."


작가와의 치열한 두뇌게임에서 패할 수밖에 없었고, 미스터리 장르 자체가 처음엔 생소했으며 그 중에서도


"클로즈드 서클"이란 장르는 아무래도 결과의 예측이 쉽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기막힌 소설이다. 어떻게 한정된 장소와 한정된 인원의 제약만으로도 이런 큰 판을 짤 수 있는지


스티그 라르손의 작가적 역량에 경의를 표한다.


다만, 갑작스레 스틱르 라르손이 3부까지 집필하고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 더이상 시리즈를 이어나갈 수 없었


다는 점에선 안타까웠으나 그 뒤를 이은 4부 시리즈 또한 밀레니엄 시리즈의 명성에 걸맞게 아주 재미있다고 하니


더욱 기대가 된다. 아무래도 이 밀레니엄시리즈 1부를 계기로 "밀레니엄 덕후"가 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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