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 한 팀이 된 여자들, 피치에 서다
김혼비 지음 / 민음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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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시즌이라 왠지 축구에 대한
책에 더 관심이 갔다. 축구에 대해서는 1도
모르지만, 2002년 월드컵 이후 유일하게
관심이 가는 스포츠라서. 또 여자가 쓴 축구
에세이라니, 호기심이 앞섰다. 축구 하면
남성적인 스포츠, 남자들이 하는 스포츠라는
강한 선입관에 사로잡혀 있었는데, 여자들이
하는 축구의 세계. 게다가 우아하고 호쾌하기
까지 하다니 그 축구의 세계 안을 한번 들여다
보고 싶었다. 사실 걱정반, 설렘반이었다.
축구에 대해 이론적인 용어만 가득하면 어쩌나,
내가 축구에 대해 “1”도 모르는 거 알고 축구용
어에 대해 구구절절 읊어대는 그런 에세이는
아닐지 생각했다. 걱정은 기우였다.
페이지를 몇 페이지 넘기지 않은 시점부터
웃음이 터져나왔다.

여자 축구클럽의 나이대가 주로 40-50대의
아주머니들이라 그런지, 축구를 하면서 오고가는 말들이 정말 기대 이상이다. 아직 30대인
나의 입장에선 내가 해보지도, 또 들어보지도
못한 언어들의 향연. 이 에세이를 읽는 재미가
이런 속시원한 아주매들의 입끝에서 사이다
처럼 뿜어져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대팀 FC페니(팀명)와의 경기 도중, 거친 몸 플레이가 오가게 되고, 이에 감정이 격앙되어
서로 말다툼을 하는 지경에서 오가는 대화이다.

*95page
“유난 좀 작작 피워. 승원이만 다쳤어?
우리 정희도 입 다쳤다고!”

“어이구, 그러셔? 그러면 너희는 입닥쳐!”

“뭐라고요! 이 언니들이 정말!”

40대 언니들이 험악한 표정으로 이런 유치원
어린이들 같은 말을 주고받는 걸 보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잘 모르겠는 와중에, 정작
승원이와 9번 선수는 서로의 다친 부위를
살펴보며 걱정의 말을 주고받고 있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우리 주변에는 야구를 좋아하는 여자들을
쉽사리 찾아볼 수 있다. 야구의 룰을 잘 몰라도
누구나 야구장에 가면 야구를 즐기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응원하는 팀을 거침없이 밝히는
여자들도 있다. “야구보러 가고싶다.”
라고 말하는 여자들도 꽤 많다. 그런데 유독
축구에 대해서만큼은 자신있게 축구를 좋아
한다고 말하는 여자들을 보기가 드물다.
김혼비 에세이스트는 책에서 말하기를, 축구
에 대해서만큼 여자들이 본인이 축구 스포츠의
팬임을 밝힐 때 두 가지 경우에 직면한다고
이야기한다.

45page
귀찮아지거나, 불쾌해지거나.

리베카솔닛의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라는 책에 보면 “맨스플레인”이라는 용어가
나온다. 남자(man)와 설명(explain)의 합성
어로 있는 그대로 직역하면 “남자의 설명”(남자들이 하는 모든 설명을 싸잡아서 하는 말이 아니다.)

김혼비 에세이스트도 축구를 좋아한다고
이야기를 하자 어이없게 남자로부터
축구는 공을 발로 차서 하는 스포츠라는
설명을 들은 적도 있다. 이런 맨스플레인
을 하는 남자들의 인식 저변에는
-여자가 설마 이런 걸 알겠어?
-당신은 모를 것이다. 여자니까!
하는 생각이 깔려있다.

김혼비 저자가 속한 팀에도 선출(선수 출신)
이 몇 명이나 있다. 그런데도 간혹 남자 상대팀
과 경기를 뛴 전반전 이후의 휴식시간에는
슬그으머니 몸을 풀고 있는 여자 축구팀 선수
들에게 다가와 가르치듯이 조언을 하는
남자 선수들이 많다고 한다. 상대는 무려
선수출신이라 스킬과 축구 경력이 만만치
않은데도, 조언을 서슴치 않는다.
웃기지만 슬픈 에피소드. 그러다가 결국
후반전................
남자 상대팀은 아주 혼쭐이 나고 만다.
이 부분에선 내 속이 다 후련했다.

축구는 혼자 하는 경기가 아니다. 김혼비 저자도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해서, 사실 축구팀
에 문의를 하고 난 이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혼자 있기 좋아하고 개인주의적인
성향의 저자가 여럿이 하는 팀스포츠를 덜컥
한다고 해버리고 난 후 느꼈을 심적 갈등.

혼자 공을 갖고 드리블하거나, 골대까지 질주하
는 스포츠가 아닌, 같은 팀원에게 패스를 하고
같이 협력해서 골대에 공을 다다르게 하는 스포츠인 축구.

90page
“선수들은 수백 명의 관계를 엎고 뛰”고 있으며,
축구 경기를 만들어 내는 것은 “경기에 참여하기 전까지 무수히 있었던 수많은 관계들이
빚어낸 ‘갈등’이다. 그러므로 경기의 내용은
그 경기에 관여하는 수많은 관계들을 읽게
해 주는 단서이다.”

89page
“걔 요즘 나한테 패스 잘 안 하거든.
오늘은 어쩐 일로 줬는데 미묘하게 받기
어렵게 주는 것 같고.”

축구팀에 들어와서 발견한 흥미로운 사실은
축구인들끼리는 관계에 이상이 생기면
가장 먼저 패스에 민감해진다는 점이다.

축구에도 결국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겪는
인간 관계의 고충이 묻어남을 알 수 있어서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내 입장에서 지레짐작
하고, 또 생각하고 마음대로 오해해버리고.
그러면서 관계는 이어지기도 하고, 또 어떤
관계는 정말 끊어지기도 한다.

여기 김혼비 에세이스트가 축구에 환장하다가
드디어 직접 축구를 하러 제발로 축구팀에
몸소 저벅저벅 들어가서 겪은 축구에 얽힌,
또 인생에 얽힌 희노애락 이야기가 다 있다.
다섯 번 호쾌하게 웃었다면 세 번 눈물짓게
하는 이야기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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