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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문을 두드리며 - 우주와 과학의 미래를 이해하는 출발점 사이언스 클래식 25
리사 랜들 지음, 이강영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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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물리학 연구를 선택한 것은 영원한 영향력을 가진 일을 하고 싶다는 욕망 때문이었다. (중략) 내 친구 안나 크리스티나 뷔크만은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안나가 문학을 전공한 이유는 나를 수학과 물리학으로 이끌었던 이유와 정확히 똑같았다." -리사 랜들, 『천국의 문을 두드리며』, P.25

 

책의 첫 인상은 첫 장에서 시작된다. 그런 의미에서, 책의 서문을 읽지 않은 내 선택은 정확했다. 리사 랜들이 소개한 본인의 욕망과 학문연구의 동기는 내가 국문학을 선택한 이유와도 정확히 일치한다. 시간을 뛰어넘어 살아남는 그 무엇. 인간은 아마 보편적으로 영원에 대한 욕구를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이 보편성, 이 공통점은 참으로 묘한 진실을 드러낸다. 무엇인가 하면, 과학을 하건 문학을 하건 인간은 인간이라는 점이다. 대학을 온 뒤 나는 이 당연한 진리를 간혹 잊고 지냈는데, 중고등학교 때와 달리 한국 대학은 학부를 나누어 수업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나는 이공계 사람을 만날 일이 거의 없고, 따라서 그들은 점점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학문(과학/수학/공학)을 하는 미지의 존재로 느껴지며, 그렇기에 어렵다. 유식한 체 말해보자면, 그들은 점점 내게 불가해한 존재가 된다.(특히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공대 남학생들의 생각 구조는 정말이지 놀랍다! 그게 진실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을지라도.)

 

나는 중학교 때부터 과학을 포기한 전형적인 문과생으로, 사실 물리학에 대해서는 정말이지 아는 바가 전혀 없다. 그렇기에 처음 이 책을 받아들었을 때도 '물리학..왜...' 같은 생각을 하며 벌벌 떨었더랜다. 그런 나에게, 리사 랜들의 이런 첫문장은 얼마나 다정하고 친밀하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나는 책의 앞면을 채운 그녀의 인간적인 욕망에 어깨에 바짝 들어갔던 힘을 풀고 독서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럼 과학 책에 대한 이야기로 좀 들어가보자.

인문학 전공자에게 과학책이란 참 어려운 존재다.(정확히 말해, 인문학 전공자인 "나"에게)

그들에게 당연한 것이 내게 당연하지 않고, 그들에게 상식인 것이 내게 상식이지 않으며, 또 간혹 그들의 견해가 내게는 불편하고 감정적으로 거칠게 느껴질 수 있다. 이를테면...이 책을 추천한 작가인 리처드 도킨스의 글을 읽을 때처럼. 그런 의미에서, 리사 랜들의 글이 전혀 그렇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거짓말이다. 나는 그녀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한 부류에 속하는 사람인데, 신과 과학이 양립할 수 있다고 믿는, 말하자면 논리로 무언가를 이해하지 않기에 논리로 설복시킬 수 없는 류의 인간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때로 리사 랜들의 논리는 나와 부딪힌다.

 

하지만 어떤 책이 그런 불편함을 넘어서서, 지적인 놀라움과 쾌감을 준다면 어떨까?

리사 랜들이 LHC를 설명하면서 지속적으로 거론하는 "스케일"의 문제는 사실 세상에 대한 진리 자체이기도 하다. 어떤 범위에서는 통용되던 진실이, 조금 더 큰 관점에서 보면 통용되지 않는다. 인문학이 하는 건 계속해서 그 범위를 깨나가는 일에 비슷하다. 그리고 그건 세상의 법칙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를 인지하고 살아가기란 쉽지 않다. 우리는 종종 우리의 스케일 안에 갇힌다.

 

이런 비유가 너무 크게 느껴진다면 간단한 사실 같은 건 어떤가? 사람을 매혹시키는 과학적 진실 말이다. 나는 이 책이 얘기한 입자 물리학과 LHC에 관한 이야기, 뒷부분에 소개되는 약간은 자기계발을 닮은 이야기 등등 모두를 즐겁게 읽었지만, 그중 나를 가장 매혹시킨 건 굉장히 단순한 사실에 대한 리사 랜들의 소개였다. 오해의 여지를 최소화하기 위해 그녀의 문장 그대로를 인용하고 싶지만, 찾을 수가 없어 내가 이해한 바로 설명하면 이렇다.

 

물질의 아주 작은 단위로 들어가면 우리가 알고 있는 분자, 원자 보다 작은 단위, 쿼크가 나온다. 이 쿼크를 연구하다보면 아주 작은 물질의 단위의 큰 구성요소가 '빈 공간'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우리의 몸이나 물질은 바로 이토록 작은 단위를 기반으로 만들어진다. 즉, 우리가 지각하고 있는 물체는 이미 비어있다. 다만 그 비어있음이 아주 작아서 우리가 지각하지 못할 뿐이다.

 

나는 이 부분을 읽을 때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는데, 이 부분을 읽자마자 그 카페의 테이블, 커피잔, 그리고 내 손가락을 계속 만져보았다. 내 손에 이렇게 생생하게 느껴지는데 어디 빈공간이 있다는 말인가? 사람의 몸이 꼭 스티로폴처럼 느껴졌다. 지각할 수 없는 무언가 아주 작은 것과 그 존재가 만들어내는 믿을 수 없는 진실이 나를 매혹시킨 셈이다.

 

아주 작은 단위를 연구하기 위해 힘을 가하면 블랙홀이 생길 수 있다는 얘기는 또 어떤가. 우주에서 일어나는 블랙홀이 작은 단위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니.... 기함할 만한 일이고, 또 신기한 일이기도 하다.

 

"우리가 아는 시공간의 개념이 무너진다." 이 말은 <인터스텔라>에서부터 들었는데, 아니, 그 전부터 계속 들었는데 여전히 이게 대체 어떤 감각인지 체감할 수가 없다. 리사 랜들도 이런 말을 자주 하는데, 나는 그때마다 대체 어떻게? 라고 묻고 싶었다. 그러니까 그 사이즈로 가면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걸까? 영화 <빅히어로>나 <인터스텔라>가 보여준 것같은 광경이 나오게 되는 걸까? 그 말을 너무 이해하고 싶어서 애가 탄다.

 

읽으면 읽을 수록 내가 모르는 세계에 대해 넓은 지평이 펼쳐지는 것 같고, 더 넓은 우주로 나아가게 되는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혔다. 신학과 과학 사이의 갈등, 과학에 대한 세간의 오해 등 여러 민감한 문제에서 리사 랜들과 나는 견해가 맞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래간만에 즐거운 독서였다. 어렵지 않아 특히 인문학 전공자로서도 즐겁게 읽을 수 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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