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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불감증 - 유동적 세계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너무나도 소중한 감수성에 관하여
지그문트 바우만.레오니다스 돈스키스 지음, 최호영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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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그문트 바우만의 이름을 처음 접한 건 "리퀴드 근대"를 통해서였다. 당시 연애라는 주제로 작은 스터디에 참가하고 있었는데, 이 노 철학자의 책이 두번째 선정 도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처음엔 "도무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읽었는데, 읽다보니 어슴푸레하게 '아' 하고 고개를 끄덕일 만한 대목들이 있었다. 그래도 전체적인 내용은 여전히 아리송했다. 그러던 내가 바우만이 하는 말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된 건, '쓰레기가 되는 삶들'을 읽은 이후였다.

 

내가 이해한 대로 바우만이 제기하는 현대의 문제를 정의해보자면,

인간의 상품화인 것 같다. 최근에 일어난 매칭프로그램을 통한 연애나 바우만이 생각하는 현대의 소통방식을 생각하면 그렇다. 한쪽만 원하면 잘라낼 수 있는 관계, 언제든 끝날 수 있는 관계, 자신을 보여주지 않고 상대만을 탐색하는 관계 등등 그가 지적하는 여러가지 부분이 현대 기술과 함께 도래한 소통 방식이라 생각된다. 개인적으로 이에 대한 그의 통찰이 매우 합당하다 생각하고, 실제 현대인의 삶을 적확하게 설명하고 있다 여긴다. (다만, 리퀴드 근대에서는 그의 주장이 지나치게 비관적으로 보였다. 인간성이 기술과 함께 공존할 가능성을 떠올리기보다는, 기술이 인간에게서 '인간성'이라 불리는 속성을 빼았아가버릴 것이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도덕적 불감증'은 바로 이 바우만이 또 다른 철학자 레오니다스 돈스키스와 함께 한 문답을 엮은 책이다. 안타깝게도 나는 후자의 글을 읽어본 적은 없고, 그의 이름도 사실 처음 들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의 의견이 적절히 섞여있는 이 책에서 돈스키스의 말에 많이 공감했고, 그 통찰력에 놀랐다. 특히나 인상 깊었던 건 2장과 3장이었는데, 이 부분에서 '현대 기술에 익숙해진 사람에게 어떤 성격이 나타나는가?' '왜 그런가?'라는 질문이 잘 다루어졌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악과 선의 이야기가 나오던 첫 장은 너무 어려운 이야기가 훅 시작되어서 읽기 좀 힘든 부분도 있었다. '아디아포라' 얘기는 홀로코스트와 광주 사태 등에서 일어났던 인간의 비인간화를 떠올리게 했는데, 그런 한편 이 얘기가 현대의 특성인 '고백사회'와 맞물려 독자로서 초점을 잃어버린 기분을 느꼈다.(말하자면, 책은 논리정연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나 혼자 길을 잃었다 ㅠㅠ)

 

책을 통틀어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내용은

우리가 우리를 비존재로 만들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자기에 대해 얘기하고 폭로함으로써 권력관계를 형성한다는 것. 특히나 이 과정에서 '피해자'가 어떤 권위를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한 서술은 너무 적확해서 놀라울 정도였다. 피해자에게 도덕적 성인의 이미지가 덧붙여진다는 건 일상에서는 하기 힘든 말이나 명백한 사실이기도 하다. 사실 이 부분은 읽으면서 바로 전달의 신간도서였던 페이스북 심리학이 많이 생각났다. 저마다 자기고백, 자기노출을 일삼아 존재감과 정체성을 확보하는 시대, 그 뒤에 숨은 게 공포라는 감정까지. 현대인이 기술과 함께 이야기하지 않고는 설명할 수 없는 새로운 종족처럼 느껴질 정도다.

 

그리고 '쓰레기가 되는 삶들'에서 나왔듯, 신자유주의 시대로 들어서면서 "무능의 불법화"가 일어나고 이에 따라 낙오하지 않기 위한 배척이 생긴다는 지적, 또한 낙오가 언제든 나의 일이 될 수 있다는 불안 얘기 역시 흥미로웠다. 음, 다만 이에 관련해 이 책에 대해서는 상당한 불만 사항이 있다.

 

첫째, 번역이 어색하다. 사실 번역의 문제가 아니라 원문의 문제일 수도 있는데, 일반적인 번역투가 그렇듯 명사 앞에 붙는 수식어구가 너-무 많아서 도저히 이 문장이 뭘 뜻하는지 알 수가 없다. 개인적 독해력의 부족 탓도 있겠지만, 돈스키스의 물음 및 분석- 바우만의 분석 및 대답으로 이루어진 구조인데 도대체 돈스키스가 뭘 물었으며 바우만이 무슨 대답을 한 것인지 명확히 알 수가 없었다. 중간 중간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부분이 있으나, 그 부분만 이해하고 넘어갈 뿐이라 본의아니게 매우 파편적인 독서가 되어버렸다.

 

둘째, 바우만의 기존 저서를 읽지 않은 사람들이 과연 이 책을 이해할 수 있을까, 생각이 든다.

내가 읽은 바우만의 책은 두권 뿐이지만, 이 책의 독서를 많은 부분 그 책들에 대한 기억에 의존했다. 그러지 않고 독해하기가 어려웠고, 의미없는 가정이지만 내가 이 책을 시작으로 바우만을 접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철학자들의 책이 모두 그렇지만, 불친절하다. 매우 불친절하다. 둘 사이의 대담을 엮어 책으로 내겠다면 적어도 일반적인 '대담' 수준에서부터 시작해주었어야 한다는 게 내 의견이다.

 

(물론 이것은 책이 너무 어려워 하는 푸념일 수 있다. 사실 이번에 선정된 다른 도서, <야전과 영원>에 대해서는 이런 류의 평이 불가능한데 그건 누가봐도...전공서..or 인문학 덕후 용이다. 둘 아니면 읽지 않으리라는, 이 책으로 아마도 인문학 강좌가 가능하리라는 예감이 강하게 드는 포스를 풍기는 책이라 이미 각오를 단단히 다지고 있다. 그러나 <도덕적 불감증>의 귀여운 표지와 뒷쪽에 선정된 문구(아, 슬프게도 너무나 자극적인데)는 이 책을 보다 대중적인 책이라 믿게 만드는 힘이 있으므로 위와 같은 평이 가능했다 본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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