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귀족 5 세미콜론 코믹스
아라카와 히로무 글.그림, 김동욱 옮김 / 세미콜론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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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권을 읽기 전에 1권부터 4권까지 다시 읽었다. 스토리가 긴밀하게 연결되는 구성이 아니라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지만.

 

저자 아라카와 히로무는 일본 홋카이도 출신이다. 내가 좋아하는 만화가 중에 홋카이도 출신이 몇 있다. 닥터 스크루, 채널 고정 등을 그린 사사키 노리코, 패트레이버, 그루밍업 등을 그린 유우키 마사미이다. 이 두사람의 공통점은 우선 굉장히 만화적이면서 동시에 굉장히 현실적이라는 점(현장감이 넘친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리고 자신의 고향인 홋카이도를 배경으로 한 만화를 그렸다는 점이다.

 

이 책 백성귀족은 앞서 말한 공통점 두 가지가 동시에 들어있는 작품이다. 이 책은 작가의 다른 작품과 달리 픽션이 아니다. 작가는 홋카이도의 농가 출신이라는 경험을 살려 일종의 농업에세이 만화를 그려냈다.그래서 작가가 작품에 직접 등장하는데 홀슈타인 품종의 젖소로 형상화되어 있다. 저자 뿐 아니라 저자의 집안 사람들이 모두 홀슈타인이다. 그밖의 형식적인 측면에서도 작가의 다른 어떤 작품보다도 만화적인 성격이 강하다. 그러면서도 허구가 아닌 사실을 그대로 만화화한데다가 그 사실이란 게 작가의 직접 체험이기 때문에 굉장히 현실적이고 사실적이다. 그래서 현장감이 넘치는데, 배경은 물론 홋카이도다.

 

이 작가의 작품 중에 다른 점은 다 같은데 픽션이라는 점에서 이 책과 다른 것이 은수저이다. 이 작품은 홋카이도의 농업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한다. 작가가 농업고등학교 출신이니까 여기에 나오는 에피소드들도 작가의 체험에서 우러나왔으리라 추정해 볼 수 있겠다.

 

두 작품의 소재가 겹치다 보니 한쪽을 그리기 위해 취재한 자료를 다른 쪽에도 사용할 수 있다. 참 효율적이라 좋긴 한데 출판사 입장에서는 얄미울수도 있다. 일본에서 두 작품이 연재되는 출판사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 점이 5권에 유머러스하게 그려진다.

 

이 책에 매 권마다 나오는 말이 있다. "농가의 상식은 사회의 비상식이다."

 

이 말은 그만큼 농가의 생활이 도시 생활에 익숙한 사람들이 보기에 생소하고 해괴하다는 의미이지만, 한편으로는 농가에서는 상식이기 때문에 아무 문제없이 넘어가는 것들이 사회에서는 도덕적인 심지어는 법적인 문제가 될 수도 있는 현실을 담고 있다. 책에서는 대개 장난스럽게 넘어가는데, 특히 동물 보호에 민감한 사람들이 보기에 이 책은 불편한 구석이 꽤 있다.

 

농가, 특히 축산업을 포함한 농업인에게 동물은 그 생명과 존엄성보다는 상품으로서의 가치가 우선시 된다. 혹은 생산성을 위해 제거되어야 하는 유해 요소로 취급되거나. 동물의 생명과 존엄성은 농업의 지향과 모순되거나, 최소한 우선 순위에서 밀린다. 농가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이기도 하고 당연한 상식으로 취급될 만큼 오래 유지된 삶의 방식이지만, 적어도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작품은 성인 여성이 주 독자인 잡지에 연재된다고 한다)에게는 익숙치 않은 세계일 것이다.

 

이 책은 동시대의 어떤 작품보다도 인간 외의 자연물이나 환경이 많이 소재로 등장하지만, 그것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농업이라는 맥락에서 다루어진다는 점에서 어떤 작품 못지 않게 생태주의와는 거리가 먼 작품이다. 농업과 가축이 인간이 처음으로 자연을 지배한 혁명적인 사건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작품은 지극히 인간중심주의적인 가치관을 내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작가가 개그 만화에서 딱히 그런 것까지 의식했을 것 같지는 않지만 말이다.

 

이런 점을 불편하게 보지 않는다면 이 작품은 꽤 재미있다. 유머 감각은 대체로 괜찮으면서도 때로 맘에 안 드는데 이건 취향 탓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일본 특유의 개그 코드가 부담스러워지는 것 같다. 굳이 개그를 치지 않아도 여기 나오는 에피소드들은 흥미롭다. 어떤 면에서 농가의 생활이란 SF나 판타지보다 더 SF 같고 판타지 같은 데가 있다. 그만큼 우리는 농업과 멀리 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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