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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당신은 여기 있어요 + 책갈피
라에티티아 부르제 지음, 요안나 콘세이요 그림, 나선희 옮김 / 비룡소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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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출간


이전 책을 아주 행복하게 읽어서 매우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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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연극 을유세계문학전집 130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이 지음, 홍재웅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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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9년에서 1912년까지 살다 간 스트린드베리는 현대 연극의 아버지로 불리는 스웨덴의 작가라고 한다. 여태 이름만 가끔 들어본 정도였는데 이번에 책을 읽어 보니 다방면에 재능을 가진 예술가, 학자였다. 입센과 함께 북유럽을 대표하는 작가이며, 스웨덴의 셰익스피어로 불리기도 할 정도로 천재 극작가라는데 그동안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게 아쉽다.

이 책의 제목은 <꿈의 연극> 이다. 스트린드베리가 가장 마음에 들어한 작품이라고 하는 같은 제목의 희곡이 뒤쪽에 실려 있고, 그 외에 '미스 줄리'라는 3인극도 앞에 담았다.

처음에는 서문에서 작가가 연극에 대해 이러해야 한다, 저러해야 한다, 정의내리는 과정이 길고도 길게 이어져 좀 지루하기도 하고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이분도 어지간히 까다로운 분인가 보네'
그런데 잔소리라고 생각했던 서문이 지나고 '미스 줄리'를 읽으면서 마음을 고쳐먹었다. 번역도 매끄럽고 이야기 자체가 흥미롭고 무엇보다 심리 묘사가 세밀해서 주의를 계속 끄는 매력이 있었다.

여성의 지위가 남성에 비해 현저히 낮고, 귀족과 하인이라는 계급이 엄연히 존재하던 시기에 변호사 약혼자와 결혼의 약속을 깨고 자기 집 하인 장과 썸을 타는 귀족 아가씨 줄리, 그리고 하인 장의
약혼녀이면서 신실한 신자인 요리사 크리스틴이 주 등장인물이다. 그중에서도 장과 줄리의 심리전은 불꽃을 튀며 전개된다. 사랑에서는 많이 사랑한 자가 약자고, 계급에서는 귀족이 하인보다 강자다.
그런데 남녀 간의 문제로 보면 여자보다는 남자가 더 유리하니 이들의 역학 관계는 엎치락 뒤치락 종잡을 수 없이 바뀐다. 그러나 마지막 결론은 너무나 당황스러워서 한동안 믿지 못했다. 워낙 은유적으로 표현을 해서, 내가 느낀 게 맞는지, 혹시 잘못 이해하고 있는 건 아닌지 확신이 없었다.

그런데 '미스 줄리'는 '꿈의 연극'에 비하면 아주 애교스러운 작품이었다. ㅎㅎㅎ 딱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희곡이다. 기승전결, 인과관계가 명확한 희곡은 읽기에도 편하고 즐거운 면도 있지만 무대화한 것을 만났을 때 상당히 높은 확률로 매우 실망한다. 희곡 자체가 다 보여줘버렸기에 나의 그리고 제작하는 사람들의 상상력이 개입할 여지가 상대적으로 줄어든다. 주로 실험적인 작품을 선호하는 나로서는 아주 아주 김 새는 일이 되곤 한다.

그런데 이 '꿈의 연극'은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건지 아리송하다. 그러다가 중간에 문득, 내가 너무 심각하게 미간에 주름을 잡고 문장을 따라가느라 급급하다는 깨달음이 왔다.

'어쩌면 이거 코미디일지도 몰라. 이렇게 엄금진하게만 접근할 일이 아니야.'

한참을 그렇게 헤매고 나니 아, 이것은 풍자구나. 이 대목에선 관객들이 웃음을 터뜨릴 수도 있겠다. 이런 생각도 들고 새로운 발견이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꿈의 연극'은 인도 신화에 나오는 신들의 왕, 인드라 신의 딸이 인간세계에 대한 호기심으로 지상에 내려와 인간으로서의 삶을 경험해 보다 죽음을 통해 다시 신의 세계로 돌아간다는 설정이다. 그런데 맥락을 알 수 없게 끼어드는 새 인물들도 있고, 앎의 깊이가 얕은 나로서는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헛소리, 꿈꾸는 소리 같은 장면도 있다. 말의 미로를 헤매는 기분이다. 그러다가 아주 가끔 작가의 심중을 알아챌 만한 단서가 될 어떤 것을 발견하면 아주 헛된 방황은 아니었구나 배시시 웃고. 이상하게 재미가 있다. 내가 알고 있는 것, 그리고 내가 명료하게 요약할 수 있는 것 이상의상징과 철학이 깔려 있다는 것만 짐작할 뿐이다.

인드라의 딸이 지상의 세계를 여행하며 인간의 고통과 갈등과 슬픔을 차근 차근 알아가는 여정은 중간 중간 그동안 읽었던 이야기들의 형식을 떠올리게 했다. 실제로 그들과의 사이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가깝게는 스크루지 영감을, 멀게는 파우스트의 여행을. 크크크.

한 번 쓰윽 읽는 것으로 이해했다 하지는 못하겠고, 스트린드베리의 다른 작품들도 읽고 나면 훨씬 손에 잡히는 것이 많아지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러나 확실한 건, 다 알지 못하고 봐도 꽤나 재밌다는 것! 왜 이 희곡을 내로라하는 연출가들이 무대에 실현시켜보고 싶어하는지 알겠다. 시공간의 제약 없이 배경이 바뀌는 것도 무대 미술 면에서 도전이 되기도 하겠고. 창작자의 상상과 해석이 들어갈 여지가 많으니 자유롭게 거침없이 풀어보고 싶은 사람들이 달려들겠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협찬을 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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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스의 종말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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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고 짧지만 깊고 끝없는 사유가 가능한 책... 눈이 튀어나올 것 같은 형광핑크 표지만 빼면 완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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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엔 돌아오렴 - 240일간의 세월호 유가족 육성기록
416 세월호 참사 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 엮음 / 창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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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해야 하고 기록해야 할 역사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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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힌 방.악마와 선한 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15
장 폴 사르트르 지음, 지영래 옮김 / 민음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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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책을 만나는 건, 연애와 같다

 

그렇다. 그 작가와의 연애, 작품 속 인물들과의 열애.

기대가 있고, 설렘이 있고, 하나씩 알아가는 희열이 있고, 좀 더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과 고통이 있으며,

어쩔 수 없이 끝이 있고, 씁쓸하거나 달달한 여운이 있으며, 손을 놓는 게 시원섭섭하기도 하고 또한 아쉽기도 하다.

다른 사람들까지 다 좋다고 매달리는 일명 '잘 나가는' 상대면 외려 시큰둥해지고,

서문만 읽고도 마지막 장까지 다 파악할 수 있는 얄팍한 상대일 때, 호기심은 급격히 사라진다.

나와 공통점이 많아서 좋기도 하지만 반대로 나와 다르기 때문에-

그래서 뇌와 심장이 새로운 부위를 자극 받을 때, 이거 뭐지? 짜릿한 탐구심이 샘솟기도 한다.

하루를 만나도 일 년을 만난 듯 호감을 주지만,

십 년을 만나도 처음 만난 듯 새로운 놀라움을 발견할 수 있는 연애라면 금상첨화겠다.

 

<구토>의 작가, 실존주의 철학자, 로만 알고 있던 사르트르가 열 편의 희곡을 썼다는 걸 이번에야 알았다.

얼마 전 <베를린, 천 개의 연극>을 읽을 때, 사르트르가 쓴 '닫힌 문'이 스트린드베리의 <죽음의 춤>을

변주한 형식으로 볼 수 있다는 구절을 읽고 매우 호기심이 생겼는데,

때마침 민음사에서 <닫힌 방, 악마와 선한 신> 이라는 제목으로 두 편의 그의 희곡이 출간되었다.

기대 만큼 책은 재미있었다.

앞서 말한 비유에 대입해 보자면, 책을 붙들고 있던 3주는 꽤 즐거운 연애기간이었으며

익숙하면서도 생소한 면이 많은 이 연애는 앞으로 나를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이끌어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닫힌 방, 그리고 악마와 선한 신

 

   내 경험의 면면들과 대조해가며 피식 웃기도 하고 수긍도 해가며 연극으로서의 그림을 어느 정도 그려볼 수 있었던

'닫힌 방'에 비해 '악마와 선한 신'은 상당히 낯선 영역에 속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흥미롭게 극의 흐름을 따라가기는

하면서도 각 인물들의 주장에 가슴 속 깊이 공감하거나 반박할 수 있을 만큼의 체화는 첫 통독으로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선과 악' 이라는 문제, 신과 인간' 이라는 문제는 여전히 내게 먼 주제인 것 같다. 그런데 최근에 자꾸 이와 관련된 자극이

오고 있다. 이제는 그 역시 고민해봐야 할 단계라는 뜻일까...

주인공 괴츠가 절대 악에 탐닉하다가 별안간 손바닥 뒤집듯 절대 선으로 돌아서고,

희극 속 인물들이 하나같이 하느님의 뜻을 부르짖으며 서로 상반된 행동을 할 때는 

감각을 잃어버린 손으로 물건을 집는 것처럼 거리감이 느껴지던 독서가,

그가 절대 선과 절대 악, 모두를 벗어던지고 신은 죽었다를 외칠 때! 그리고 보통 인간의 세계로 내려섰을 때!

조금은 감각이 돌아왔다, 정도...

 

 그래서 여기서는 내가 매우 매우 연극적인 즐거움을 느끼며 두 번을 되풀이 읽었던

<닫힌 방>에 대해 조금 더 얘기해 볼까 한다.

 

 

 

 

푸하하. 이건 내가 상상해 본 무대 스케치다.

무대 중앙에는 초록색 장의자가 놓여 있고, 한쪽에는 진분홍 의자가 있다.

굳게 닫혀 있는 문이 무대 하수에 자리하고,

뒤편에는 용도를 알 수 없는 무거운 청동상과 봉투를 뜯는 데 쓰는 종이칼이 소품으로 자리한다.

이 닫혀 있는 방은 지옥이고, 세 명은 죽은 자들이다.

그들은 자신만이 볼 수 있는 이승의 삶이 있다. 그러니까 자신의 사후에 벌어지는 자기 주변의 일들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각각의 인물들이 자신이 부재하는 자신의 인생(이런 모순이 있나)을 들여다 보며 대사를 할 때,

홀로그램 영상을 이용해서 배우의 머리 위에 띄우고 싶다. 너무 지저분하려나?

그냥 이 연극은 깔끔하게 멀티미디어의 사용은 배제하고 관객의 상상과 배우의 연기에만 맡기는 것이 나을까?

잘 모르겠다. 뭔가 색다른 걸 보여주고 싶어 하는 요즘 연출자들은 저 부분을 가만 놔두진 않을 것 같긴 하다.

이건 더 고민해보고..

 

 

<닫힌 방 Huis Clos>에는 세 명의 주요인물과 한 명의 급사가 등장한다.

만약 나더러 캐스팅을 하라고 한다면 누굴 써야 효과적일까? 일단 대중에게 잘 알려진 영화 배우들을 재미삼아 골라봤다.

 

급사

세 명의 인물들을 순차적으로 이 닫힌 방까지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

극 초반에 인물들을 모이게 하고, 이곳이 어떤 곳인지, 어떤 규칙이 통하는 곳인지 알려주고는 퇴장 후 등장하지 않는다.

비중은 작지만 나는 이 역할이 감초처럼 재미를 줬으면 싶다. 잠깐의 등장에도 강한 인상을 줄 수 있는 배우.

그리고 이 제2제정풍(이게 대체 뭔지)의 거실들로 이루어진, 지옥을 상징하는 건물 밖 세계는 전혀 모르는

꽉 막히고 단순한 존재이면서도 뭔가 sarcastic 한 면을 가졌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얄밉지는 않은!

그래서 고른 배우는,,,, 스티브 부세미!

 

 

조제프 가르생

브라질 리우 출신의 이 남자는 닫힌 방의 첫번째 입실자이다.

잘생겼다고는 할 수 없는 외모. 하지만 순종적인 아내가 보는 앞에서 여성 편력도 만만찮았던 남자다.

반전운동 신문을 주간하다가 탈영 중 사살된 인물로, 상의에 열두 군데의 총상 구멍을 가진 특징이 있다.

자신이 비겁하다고 평가받는 것에 대해 민감하다.

매우 남성적이면서도 섬세하고 나약한 면도 동시에 표현할 수 있는 배우가 필요했다.

그래서 고른,,,, 하비에르 바르뎀!

머리를 좀 벗겨야겠다. ^^

 

 

이네스 세라노

출신은 어디인지 모르겠다. 우체국 직원으로 일했고, 가스 누출 사고로 죽었다.

결혼해서 남편도 있는 여자를 사랑해서 그녀가 남편으로부터 마음이 멀어지도록 조종할 정도로 노련하다.

그때문에 그 남자는 자살했고, 이네스가 사랑한 여자는 결국 함께 잠자리에 들며 스스로 가스 밸브를 열었다.

매우 냉철하고 깐깐한 편이며 이 극에서 가르생의 가장 강력한 견제자이기도 하다.

가르생에게 끌리는 에스텔의 호감을 사기 위해 노력한다.

중성적인 느낌이 나고 나이가 좀 있는 관록있는 여배우가 필요했다. 그래서,,,, 캐시 베이츠!

 

 

마지막으로, 에스텔 리고

파리 출신의 젊은 여성으로, 금발의 백치미가 있는 유한 부인이다.

동생의 병간호를 위해 아버지의 친구인 늙은 남자와 결혼했으나 젊은 애인과 바람이 나고,

그 사이에서 난 갓난아이를 호수에 빠뜨려 죽인다. 폐렴으로 죽어 지옥에 왔다.

닫힌 방의 유일한 남자인 가르생에게 의지하고 싶어 한다. 어디서든 남자가 필요한 여자.

한눈에 봐도 매력적이고 도발적인, 그리고 뭔가 불안정한 아름다움이 필요했다.

그래서 고른 배우는,,, 나탈리 포트만!

너무 똑똑해 보일까? 우수에 젖어 보일까? 그렇담 최근에 본 캐리 멀리건도 나쁘지 않겠다.

 

 

이 세 인물이 닫힌 방, 으로 상징되는 지옥의 구성 요소다.

처음엔 자신들이 왜 지옥에 초대되었는지 모르겠다며 분명 무슨 착오가 있는 게 틀림없다고 주장하던 이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의 존재때문에 점점 부대끼게 되고, 결국은 자신들이 저지른 (지옥에 올 수밖에 없었던)

죄를 고백한다.

이네스는 에스텔을 유혹하려 애쓰나, 에스텔은 가르생의 애정을 갈구하고, 가르생은 이네스를 바라본다.

서로 물고 물리는 삼각관계.

 

왜 하필 세 명이었을까.

삼각형은 안정적이어야 하는데, 인간관계에서의 삼각형은 전혀 그렇지 않다.

만약 저 인물들 중 누구라도 빠진 두 명만 갇히게 되었다면, 그곳은 그다지 지옥 같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은 환경에 어떻게든 적응하게 돼 있다. 죽음도 소멸도 없는 억겁의 시간을 같이 견뎌야 하는 상대가 한 명이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서로에게 맞춰주며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 그게 편하니까.

하지만 한 명이 더 개입하면 얘긴 달라진다. 모여 붙는 둘이 있고, 배제되는 하나가 생긴다.

굳이 싫은 사람에게 맞춰줄 필요가 없다. 다른 한 명을 내 편으로만 만들어 버리면 간편하니까!

그래서 지옥은 더욱 지옥다워진다.

 

가르생은 왜 이네스를 필요로 했고, 그녀에게 인정받고 싶어 했을까.

그는 누구든 한 사람만 자신을 진정으로 믿어준다면 자기는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치, 연극 <단테의 신곡>에서 연옥에 있던 자들이 "살아 있는 단 한 사람의 기도" 만 있다면

자신이 구원 받으리라 믿었듯이.

그래서 그는 자신을 믿어 줄 그 '단 한 사람'으로 이네스를 선택했다.

에스텔의 러브콜을 뿌리치면서 굳이... 이네스를! 자신을 냉혹한 시선으로 심판하려 드는 이네스를 설득하고 싶어 했다.

그것만이 진정한 가치를 가진다고 믿은 것 같다.  세 인물간의 팽팽한 긴장감이 참으로 흥미로웠다.

 

사르트르가 묘사한 지옥(닫힌 방)의 풍경은 뜨겁게 끓어오르는 유황불이 있는 곳도 아니고,

각종 고문도구가 즐비한 곳도 아니다.

그곳은 거울도 없고, 책도 없고, 울어도 눈물조차 나오지 않으며, 오로지 타인의 존재만이 있는 공간이다.

타인을 통해서만 나의 존재가 확인되고 거울처럼 타인의 시선을 견뎌야 하며 타인과 대면해야만 하는 곳.

이미 죽었으니 더 이상은 죽어버릴 수도, 잠들 수도 없는 끝없는 낮과, 끝없는 갈등의 시간만이 있는 곳이 지옥이다.

아~ 끔찍해.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너무도 생생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으로 인해 힘들어 본 이라면 그 누구든....

 

그런데 정말 흥미로운 것은 마지막에 극적으로, 굳건히 닫혀 있던 문이 결국 열렸는데...

그 지옥을 도저히 참을 수 없다며 뛰쳐 나가려던 그들 중 어느 한 사람도 선뜻, 그 문턱을 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건 뭘까... 닫힌 방에 갇혀 있음과 동시에 머무는 것... 선택적으로. 자발적으로..

닫힌 방의 바깥은 무엇이 존재하는지 모르는 곳이다. 미로일 수도 있고, 나 혼자일 수도 있다.

결국은 아는 지옥이 더 낫다는 건가? 아님, 혼자인 천국보다는 함께인 지옥이 더 좋다는 건가?

 

나는 이 짧은 희곡이 정말 정말 좋아졌다.

대사들을 읽으며 앗, 이건 뭔가 철학적으로도 곱씹어볼 만한 의미있는 상황이다!! 싶은 대목이 참으로 많았다.

사르트르의 철학에 대해 알고 싶었는데 마침, 역자의 작품 해설에 어느 정도 대략적인 개념정리가 돼 있어서 도움이 되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고 공부해보고픈 욕심이 들었다.

그렇지만 그걸 모른다고 해도, 누구나 한 번쯤 겪어 본 경험으로도 이미 <닫힌 방>의 문을 열 수 있다.

철학적 지식이 없다 해도 충분히 재미를 느끼고 공감할 수 있으리라고 자신한다.

그런데 내 욕심은 정말,,, 이 작품을 탄탄하게 만들어진 연극으로 무대에서 보고 싶다는 것!

국내에서는 '출구 없는 방'이라는 제목으로 상연된 적이 있다는데...

 

아!!!! 정말 제대로 만든 멋진 연극으로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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