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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라딘 신간평가단 11기 소설분야. 6월 추천 신간.


 이번에는 어째 죄다 추리소설이다. 균형을 맞추기 위해 좀 빼고 점잔을 떨어야 하나 고민했다. 다시 보니 최근 출간작 중에 추리소설 비중이 유독 높다. 몇 년 간 꾸준히 일본 추리소설이 밀려들어오더니, 다음 파도는 유럽권 추리소설인 모양이다. 재작년쯤부터 유럽 출신 '대작'들이 눈에 띄는데, 이름있는 것부터 들어오기 때문인지 다들 분위기가 한 묵직한다. 도저히 머리 식힐 겸 읽어보겠다는 말은 못 꺼내겠다. 하지만 흥미진진한 건 보장하는 듯:)




 [디너] (헤르만 코흐 / 은행나무)


 이런 걸 읽고 싶었다! 군침이 돌면서 어서 읽고 싶어 두근거리는 책이다. 이게 다 먹을 거에 약해서 그런다. 목차가 아페리티프-에피타이저-메인-디저트-소화제로 흐르는 걸 보고 이미 읽기로 마음먹었다. 어쩌랴, 식사와 잘 결합된 이야기는 두 배는 맛깔나는 걸. 고양이가 들어간 그림은 두 배로 매력적인 것과 같다.


 저자 이름이 헤르만이길래 독일 소설인 줄 알았는데, 네덜란드 사람이었다. 네덜란드라면 [밀레니엄] 시리즈가 나온 곳이다. 게다가 따끈따끈한(번역서치고는) 09년 작품이다. 차근차근 번역 출간되고 있어서 기쁘다.


 제목은 [디너]지만, 식사가 주된 내용은 아니다. 아들의 범죄에 대한 부모의 입장, 차별과 폭력, 가족과 이기심과 균열, 가치관의 붕괴가 주된 내용이다. 바꿔 말하면 지금 우리가 품을 수 있는 도덕적 딜레마에 대한 이야기가 되겠다. 제발 이 문제가 아주 어렵고 복잡하게 제시되기를 바란다. 그래야 책을 읽는 사람들이 사건을 간단하게 치부해버리지 않고 고민을 할 테니까. 그래야 한 장 한 장 맛있게 먹을 테니까.




 [순서의 문제], [나를 아는 남자] (도진기 / 시공사)


 국내 작가의 추리소설은, 언제나 반쯤 기대하고 반쯤 발을 빼고 읽기 시작한다. 이건 기대하고 읽어도 될 것 같다. [순서의 문제]는 단편집, [나를 아는 남자]는 장편 소설. 딱히 시리즈로 묶인 건 아니지만 같이 나왔다. 맛을 보기 위해서는 역시 단편집인 [순서의 문제]를 먼저 읽어봐야지 싶다.


 소개글을 보니 탐정 역의 주인공 진구는 천재이긴 하지만 도덕관념은 좀 부실한 인물인 모양이다. 현대 한국사회의 배경에서는 쉽게 공감갈 만한 캐릭터다. 다만 이게 적극적으로 치사한 행동을 하는 이기적인 인물인 건지, 아니면 공감능력이 좀 부족해서 독특한 가치관을 보이는 건지는, 읽어봐야 알겠다.


 어쨌든 인물 구성은 잘 되어있는 듯. 추리소설은 주로 범죄를 다루는 만큼 인간에 대한 통찰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점에서 기대되는 작품이다. 국내 작가의 작품이라는 점도 보정치. 저자 직업이 판사인데, 이를 통해 쓴 법률 미스터리라는 점도 신뢰할 점.




 [불타버린 세계] (J. G. 발라드 / 문학수첩)


 어째서 문학수첩에서 나오는 발라드 책은 다 B급 영화 포스터 같은 느낌이 나는 걸까. 심지어 원작 표지도 아니다. 안 그래도 딱 B급 영화라고 오해하기 쉬운 내용인데, 보고있으려니 여러모로 기분이 미묘. 


 발라드의 장점은 인류 멸망을 정말로 잘 그린다는 점이다. 눈에 보이는 화려한 특수효과 없이도, 읽다 보면 장을 거듭하여 확장되는 붕괴의 이미지가 형성된다. 굉장히 장대하다. 그러다 보니 '세계' 시리즈가 많다. [불타버린 세계]는 [물에 잠긴 세계]와 함께 지구종말 삼부작으로 엮이는 작품. 예전에는 그리폰 북스에서 [크리스탈 월드]가 나온 바 있고, 최근에는 [하이라이즈]가 나왔었다.


 이 작품들은 공통적으로, 부자연스러운 세계를 설정하고 그 안의 사람들을 관찰하는 자세를 취한다. 이들이 보이는 이상 행동들은 광기가 아니라 변질이다. 환경이 바뀌면 사람이 바뀐다는 말처럼, 제반 환경의 변화로 인해 인간 자체가 변질되는 모습을 보인다. 그야말로 새로운 세상이다. 그렇기에 극한상황을 다루더라도 호러가 아니라 SF에 속한다. "장르의 시점을 바깥 우주에서 내적 우주로 전환"했다는 말은 이런 뜻이겠지 싶다. 아마 작가 자신이 포로수용소에 갇혔던 경험이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커트 보네거트가 전쟁을 겪은 후 [제5도살장]을 비롯해 죽을 때까지 회의와 무력함과 아이러니에 대해 썼듯이. 발라드 역시 미쳐가는 세계 안에서 생활했던 경험이 있으므로.




 [부러진 용골] (요네자와 호노부 / 북홀릭)


 마술과 저주가 횡행하는 세계에서 과연 '추리'로 범인을 잡을 수 있을까? 소설의 배경은 북해에 위치하는 천해의 요새인 솔론 제도. 죽은 사람은 영주. 추리하는 사람은 동방에서 온 기사와 그 시종, 그리고 죽은 영주의 딸. 지극히 서양 중세 판타지에 가까운 설정인데, 저자는 일본인이다.


 저자의 다른 작품 [추상오단장]은 굉장히 작고 엷은 소설이었다. 사건 조사도 일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살인이나 트릭 같은 드라마는 남의 일이었다. 주인공은 그 과정에서 정체성 없음을 막연히 고민하는 건조한 청춘이고. 처음부터 좁은 스케일의 이야기를 다루기에 오히려 사건 하나하나가 반전이 되는 방식이었다. 아닌 책도 많이 썼다길래 그렇구나- 하고 있었는데, [부러진 용골]이 바로 그런 책인가 보다. 소개글부터 장르 색깔이 넘쳐서, 작가 이름이 아니었다면 그냥 넘어갈 뻔 했다.


 이 작가가 글을 잘 쓴다는 건 충분히 알았으니, 이렇게 큰 이야기는 어떻게 끌어갈지 기대된다. 그렇지 않더라도 '저주와 마법이 횡행하는 세계'에서 어떻게 추리의 판을 짤지도 흥미진진한 부분이고.




 [고독한 곳에] (도로시 B. 휴즈 / 검은숲)


 고전 헐리우드 영화의 팜므파탈들이 보이는 전형적인 모습이 몇 있다. 장식용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조그만 핸드백에 사실은 권총을 하나 숨기고 있다든가, 가련하고 힘없는 여자인 척 탐정에게 부탁을 하지만 알고 보면 흑막이었거나 매우 교활한 성격이라든가. 자신이 여성이라는 점을 충분히 이용할 줄 안다. 그리고 본성을 드러낸 후에는 대개 끝이 좋지 않다. 이런 '악녀'의 모습은 여성을 오로지 보호해야 할 존재로 보는 관점만큼이나, 사실과 다르다. 전형적인 악녀의 모습은 참 많이도 쓰였고, 나는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한 인물로서의 생명력, 입체감, 진정성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 하드보일드 소설을 읽으면서 불편해지는 지점이다.


 [고독한 곳에]의 모습은 도발적이고 섹시하다. 온통 남자들 뿐인 하드보일드에 뛰어든 여자의 모습은 응당 그럴 것이다. 여성 펄프 픽션을 되살려 문학적/사회학적 여성성을 되짚어보자는 취지에서 재간되었던 책이라는데, 과연 어떨지:) 하드보일드라는 틀 안에서 어디까지, 그리고 어떻게 도발적인 관점을 취했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물론, 재미있는지도.




 [알렉스] (피에르 르메트르 / 다산책방)


 유럽권 추리소설 물결을 이어가는 책. 묵직하고,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어 보인다. 특히 예문에서 보이는 '소설적'이고 유려한 묘사가 너무 좋다. 읽으면서 살살 녹을 지경이다.


 "카미유는 정말로 작다. (...) 이런 발육부진에는 모친의 책임이 크다. 모드 베르호벤, 저명한 화가. 그녀의 그림들은 열 곳이 넘는 국제 미술관의 카탈로그에 올라 있다. 대단한 예술가인 동시에 담배 연기를 영원한 후광처럼 두르고 살다시피 했을 만큼 엄청난 애연가이기도 했다. 이 푸르스름한 뭉게구름과 함께하지 않은 그녀의 모습을 상상한다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담배 연기를 영원한 후광처럼 두르고 살고, 언제나 푸르스름한 뭉게구름과 함께 하는 저명한 여류 화가. 그리고 그런 어머니를 둔, 예술적 소양이 뛰어나고 키가 작은 카리스마 형사. 이 정보만으로도 생각의 가지는 잔뜩 뻗어나간다. 게다가 소개글이 참 충실해서 잘 읽으면 범인을 알아버릴 지경인데, 책을 재미있게 읽는 데에는 크게 상관없는 듯 하다. 범인이 어떻게 왜 범죄를 저지르는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므로. 복잡하고 정교한 서사를 펼치는 책이라고 하니 걱정할 건 없겠다. 나라면 솔직히 인물 묘사 하나만 봐도 푹 빠져서 읽을 터다:) 문장으로 이렇게 매혹하는 책, 흔치 않다. 어서 다른 부분도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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