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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와 수치심 - 인간다움을 파괴하는 감정들
마사 너스바움 지음, 조계원 옮김 / 민음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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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 너스바움은 <시적 정의>라는 책에서 문학의 존재이유와 문학이 법과 사회와 어떻게 만나야 되는가를 논했다. 법과 사회의 필수조건으로서 문학을 바라보며 사회 속에서 인간의 따뜻한 시선이 법에 담겨져있어야 함을 이야기했다.

 

그래서 따뜻한 법학자와 철학자의 이미지를 가진(나에게는) 그녀가 <혐오와 수치심>이라는 책으로 다시 다가왔을때 강렬한 호기심이 들었다. 그녀는 어떻게 혐오와 수치심을 대할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이 일었다. 더욱이 진은영 시인은 <눈먼 자들의 국가 - 우리의 연민은 정오의 그림자처럼 짧고, 우리의 수치심은 자정의 그림자처럼 길다>에서 수치심을 이야기할 때 수치심의 근원적 존재에 관해 물었던 적이 있어 제목은 더욱 강렬하게 다가왔다.

 

너스바움은 우선 전제로 감정없는 법은 없다고 말한다. 법은 감정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분노,적의, 동정심은 다 법에 담겨져 있다. 그렇다면 얼마나 많은 부분이 혐오와 수치심과 같은 감정으로 무장하여 있는가.

 

너스바움은 이 두 감정이 현재 법에도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고, 이러한 감정은 적어도 법에서는 베재되어야 함을 말한다. 혐오에 담긴 핵심적 사고는 자신이 오염될 것이라고 여기는 생각이며, 혐오의 감정은 자신을 오염시킬 수 있는 것에 대한 거부를 표현한다. 따라서 인간은 혐오라는 감정을 통해 위험하고 공적격인 제노포비아를 생산해 낸다. 즉 정상인을 간주하고 그 정상 범주를 넘어서는 것들에 대해 혐오라는 단어로 매도하여 제거해내는 양상, 여성혐오가 그렇고, 유대인 학살이 그렇고 동성애를 바라보는 시선이 그러했다. 따라서 이러한 혐오라는 감정은 그 자체로 위험하다. 그러므로 혐오가 법적 정치적 목적에 적합한 귀중한 반응이라는 결론을 도출해서는 안되고 인간의 삶 속에 깊이 뿌리내린 많은 반응은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으며, 공적 행위의 지침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수치심 역시 마찬가지다. 너스바움은 수치심은 완전무결한 상태의 지향이 무너져 내렸을 때 즉 자신이 약점이 노출되었을 때 생기는 고통스러운 감정이라고 말한다. 즉 수치심을 통해 자신의 부족함과 연약함이 노출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수치심은 법으로써 다루어지면 문제가 발생한다고 본다. 우리 모두는 좋은 것을 완전히 통제하려는 유아기의 요구가 결국 충족되지 못하고 완전하지 못한다는 것이 우리 내면에 깊숙히 있음을 안다. 따라서 이런 불완전한 집단은 완전성을 노력하기 위해 안정을 찾는데 그 과정에서 정상인과 비정상인을 구별하려고 한다. 이러한 과정이 만약 법으로 들어온다면 동성애와 일탈자들의 부도덕함을 엄격한 잣대로 들이되게 된다. 결국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통제하고 파괴하는데 사용하여 강자들만의 부당한 법과 논리로 확대 재생산된다.

 

결국 너스바움은 이러한 혐오와 수치심의 감정은 법에서 배제되어야 함을 말하고 자유주의 사회의 실현을 위해 노력해야 함을 강조한다. 복잡다단한 사회에서 우리가 혐오와 수치심으로 사회를 편가르기 하고 강자의 위치에 서려고 하지 않는지, 잘못된 판단으로 인간성을 무너뜨리고 있지 않는지에 대해 검토해볼 때다.

 

덧붙임.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물론 솔직한 리뷰이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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