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끌어안다 - 죽음과 마주한 과학자 게리 씨의 치유 여행기
게리 홀츠.로비 홀츠 지음, 강도은 옮김 / 행성B(행성비) / 2017년 6월
평점 :
절판


#1. 가만히 끌어안다.


제목이 주는 울림은 포근했다. 내쳐지고 밀리고 공격당하는 게 일상인, 그래서 때론 양육강식이라는둥, 적자생존이라는둥 하는 말이 어울리는 시대. 가만히 기댈 곳이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은 당연한 것일지도 몰랐다. 그저 기댈 수 만 있으면 좋겠다 생각하는데 끌어안는다. 누가 누굴?

제목에서 그런 기대를 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위로. 지쳐있는 내게 '괜찮아'라고 거짓으로라도 귀뜸해 주는 위로 말이다.

한 때는 웰빙이 화두였고, 그러다 힐링이 화두였고, 이제는 위로가 화두가 된 싯점. 시기별 화두를 들여다보면 삶의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지금은 위로와 인정일지도 모른다.

그런 기대로 읽는다. 나는 널부러져 있고 차고 흰 손으로 내 이마를 짚어주고 끌어안아줄 대상을 기다리며..그런 대상은 없다는 걸 이내 깨닫지만.

기분 좋은 제목이다.


#2.


잘나가는 물리학자 게리씨는 갑작스레 '다발성경화증'이라는 병을 앓게 된다. 난치병이 아닌 불치병. '치료법 없음'.이 대답인 병을 말이다.

병에 걸린 이유도, 병이 시작된 싯점도 모호한 채 자신의 의지대로 통제되지 않는 근육들을 이끌고(?) 호주로 떠난다. 그곳의 원주민들과 함께 지내며 자연 속에서 그들의 몸짓과 대화 속에서 조금씩 차도를 보이게 된다.

자신 안에서 문제를 보고 문제를 인정하고 자신의 상태를 확인하고 조금씩 치유되어가는 게리씨. 과학지 게리씨가 과학적으로 증명이 불가능한 이 경험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체험이다. 자신이 증거였으니까.

사실 이런 류의 책들을 그다지 즐겨읽지 않는 편이었다.

결국 자신의 문제로 귀결되는 뻔하고 뻔한 이야기. 하지만 읽어가며 조급해하는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왜?

지난 2월 병원 응급실의 전화를 받았다. 옆지기의 이름을 대며 그곳에 있다고 했다. 아침만 해도 깔깔 웃으며 출근한 사람인데, 사고가 난건가? 물었다.

사고는 아니고 직접 택시를 잡아타고 와서 응급실 앞에서 의식을 잃었다고 했다.

서둘러 찾아간 병원에 옆지기는 수십년을 살면서 보지 못했던 표정으로 누워있었다.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표정으로 낡은 기계의 불안하게 삐그덕 거리는 손잡이처럼 손짓을 하면서 말이다.

심장이 아팠다고 했다. 쥐어짜듯 아파서 이러다 죽는구나 싶어 타고가던 차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응급실로 왔다고 했다.

심장 초음파 검사를 하고 심전도 검사도 하고, 48시간 휴대용 심전도 검사기를 차고 나왔다.

의사 면담을 할 때, 의사는 몇몇 증상을 물으며 갸웃대기도 했다. 어쨌든  처방된 약을 받고 퇴원을 했다. 옆지기는 밤새 불안해했다. 결국 다음 날도 병원이라며 전화가 왔다. 또 증상이 있어서 왔다고 했다. 그리고 휴대용 심전도기를 떼고 의사가 물었다.

처음 병원에 왔을 때와 같은 통증이 있었냐고. 옆지기는 두번 있었다고 했다. 언제쯤이었는지 확인을 하고 그 시간이 맞냐는 되물음에 그렇다고 말했다.

심전도 그래프는 정상이었다. 이틀동안, 옆지기가 죽을 것 같아서 다시 응금실을 찾았던 그 시간에도 정상이었다.

그 후 심리치료를 받으며 공황장애라는 진단을 받았다.

언제 어떻게 발작을 하게 될지 모르는 상태. 그 원인을 알아채기 전엔 불안한 상태.

자기 자신도 왜 그런지 알 수 없다고 했다. 초조한 일도, 스트레스 받는 일도 없는데 왜? 라고 오히려 내게 물었다.

여전히 약을 먹고 있지만 조금 덜 불안한 상태일 뿐 여전히 발작의 위험은 있다.


책을 읽으며 나는 자신의 몸을 마주하는 게리씨와 자신의 상태를 마주해야 하는 옆지기가 오버랩되기 시작했다.

드러나는 불편함이 아닌, 아무도 모르는 그래서 오로지 혼자 견뎌내야 하는 불편함과 불안. 그것과 함께 살아내기란 녹록치 않을텐데 딱히 옆에서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원주민들의 지혜. 우격다짐으로 이것은 되고 저것은 안되는 것이 아닌 자연 속에서 하나씩 깨우쳐 가는 과정은 어쩌면 자연의 한 부분으로 되돌아가는 과정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치유의 요소..기꺼이 하려는 마음, 알아차리기, 받아들이기, 힘 부여하기..

자칫 오해하여 읽다보면 결국 마음의 문제라거나 개인의 의지의 문제로 읽힐 수도 있겠다.

극단적으로 읽어보자면 어떤 간증처럼 읽힐수도 있겠다.



삐딱하게 읽어보자면 선문답처럼 읽힐수도 있겠다.

건성으로 읽어보자면 어디서 많이 읽어본 거네. 라고 할 수도 있겠다.


#3.

자신에게서 근원을 찾는 것은 자칫 위험할 수 도 있다. 보통 자신에게서 근원을 찾는 행위는 절망의 끝에서 선택하게 되는 외통수같은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절반의 포기와 절반의 희망이 뒤섞인 불안정한 상태의 폭발물처럼 작동하기도 한다. 가만히 끌어안는 이 방법은 스스로 '기꺼이' 하려는 마음에서 시작한다. 그 시작점이 다르다. 잘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의 요행이 작용하는 것이 아닌, 기꺼이 하려는 마음에서 시작하는 행위는 받아들이고 풀어가는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성취의 밀도를 더 높인다. 막연하게 나의 병이 낫는 과정이 아니라 병이 오게 되는 그 상황을 뒤짚어 그곳에 있던 자신과 자신의 상황을 마주하는 것.  생각만큼 쉽지 않을것이다. 자신의 숨을 따라가며 자신을 살피는 호흡법처럼 별스럽진 않지만 많이 어려운 과정임에 틀림없다.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 인위적으로 자연 속에 파고 드는 것이 아닌, 처음부터 자연이었던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

참 멋진 일이다.


옆지기의 공황장애는 좀 진정되는 기미가 보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불안한 상태다.

그 발작이 시작되던 시간과 장소, 그리고 옆지기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졌다. 그 상황까지 자신을 밀어붙여야만 했던..

책을 덮고 고양이를 쓰다듬는 옆지기의 등을 가만히 끌어안는다.


서두르지 않아도 돼. 가만히..천천히..기꺼이 하고 싶을 때까지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7-06-26 21: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26 23: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galmaenamu 2017-06-27 09: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따뜻하게 잘 읽었습니다. 남편의 치유를 기원합니다.

나타샤 2017-06-27 15:29   좋아요 0 | URL
힉..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