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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 데이즈
혼다 다카요시 지음, 이기웅 옮김 / 예담 / 2010년 6월
평점 :
품절


 

_ 어딘가에는 있을 법한, 허나 현실에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 세계. 아무도 나갈 수 없고 아무도 들어올 수 없는 세계. 그렇기에 파괴될 일도 없고 흔들릴 일도 없는 꿈의 세계._



 

 anecdOte.4 혼다 다카요시_ 파인 데이즈 





 

달달달,
돌아가는 선풍기,
페이지를 넘긴다,
그리고 생각한다,

8월은
덥구나,
작년에도 그랬었나,
부재중 전화 같은 질문들,

현탁액스러운 공기가 나의 살갗에 은밀히 얹어진다,
콧등에 눌러붙은 안경을 밀어올린다,
작년에도 콧구멍 주변이 제일 더웠나,
수신거부 전화 같은 의문들,

진정으로
나는 지금 배를 타고 산으로 가고있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은 장마,
거기,폭염특보란 말도 꺼내지마,

창 밖 길가에는 오갈 곳 없어진 빗물이 고이고
나의 살갗이 늘어져서 생긴 주름에는 땀이 고인다,

저녁 8시는 황금시간이다, 허나
나의 방에서 방영되는 일일 연속극이 이런 전개라면,


막장이군,


이게 현실이지,
내가 있는 곳에 적응할 수 없다면 적응할 수 있는 곳으로 내가 가기로 한다,
막장의 매력은 빠른 스토리의 전개, 마음을 먹었다면 두말 없이,

책을 옆구리에 낀다, 뒤이어 주머니에 약간의 지폐를 구겨 넣고,
하우젠과 휘센을 찾아 나선다, 또는 위니아 정도도 황송하다고 생각한다,


그래, 책이란 건 말이지
시간이 날 때 읽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내서 읽는 것이다,
라며, 안경 밑으로 샘솟는 콧등의 땀을 엄지손가락으로 퍼낸다,


아,
내년 여름 전에는 라식을 하리라, 라며 터져나온 호흡이 꽤나 불쾌하다, 역시나 콧구멍 주변이 제일 덥다,



그리하여,
씽씽 불어라, 손가락을 저어대는 바람의 여신을 찾아
나의 방의 습한 공기를 넘어 국지성 소나기를 건너 폭염을 뛰어
어느 한 카페의 유리문을 연다,


스륵, 그리고 아,

한순간에 나를 집어삼키는 판타스틱 에너지,

환상적인 입체 서라운드의 공간에 다다른 나는,
바깥과 이곳의 공기는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체감한다,

유리벽에 뜨거운 빗방울이 끈적하게 달라붙는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는 투명한 유리벽 한 장 차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3D처럼 펄럭이는 책장을 지그시 한 장 넘겨본다,


어쩌면,
현실과 환상의 경계는 불투명한 페이지 한 장 차이 일지도 모른다,
뭐, 그 곳이 어디든 폭염만 아니면 된다,

이로서,
나는 혼다 다카요시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된 것 같다,고 느낀다,




녀가 바라는 미래가 있었고 내가 살아가는 세계가 있었다. 그 두 세계는 결코 양립할 수 없다. 그걸 알고 있다는 데 미묘한 죄의식을 느꼈다.




가끔은 생각해본다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를 만난다면 어떨까,
나는 그 아이에게 격려를 할까, 숨어버릴까,

또는,

현재의 내가 미래의 나를 만난다면 뭐라고 말할까,
아, 안녕하세요, 반갑게 손을 내밀까,
일순간, 실망이 담긴 얼굴을 손으로 가릴까,


현재가 과거에 개입하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생각을 해본다,

그 둘은 양립할 수 없지만, 그래도 '이해'할 수는 있다,고
그러니까 그것을 이해함으로 인해 미묘한 죄의식을 느끼낄 수 밖에 없는 거라고, 나는 그를 이해한다,


이해와 오해와 또 다시 이해와 오해와 그래서 그 이해와 오해의 과정들,
이것은 종언이 아닌 영원의 순환,

누군가의 판타지는 누군가의 이해이며 오해이고
누군가의 현실은 누군가의 이해이며 오해인 것이라고 생각을 하니,

폭염이 누군가에게는 판타지가 될 수도 있겠구나, 그러니까 어차피 유리벽 한 장 차이.
라고 폭염을 이해해보는 순간,



때 제 일부는 분명 죽었을 거예요.



아,

어쩌면 이해한다는 건 나의 일부를 죽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주변이 고요해진다, 나는 조금씩 조금씩 죽어가는 항해를 하고 있어,

시간의 범주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나는 왠지 슬퍼진다,


아니다, 날씨탓이다
환상적인 이 공간에서도 현실을 체감하는 것은 다 날씨 탓이다,
라고 가라앉는 나에게 손을 뻗는다, 뻗긴 했는데 뻗은 손에 힘이 없다,


밖은 아직 더울까,
근데 아까 그렇게 덥긴 했었나,


페이지를 덮는다,
그리고 생각한다,  

 

 

 

 

 

 

달달달, 
선풍기가 속삭인다
 

_  저기
_  뭐라고?
_ 그러니까, 쿨하지 못해 미안해

 


*




얼마 전 인셉션을 보았다,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스토리, 현실과 꿈의 경계가 애매해진 미궁안에서
참으로 부질없이, 또는 참으로 소름돋는
기억의 인셉션과 영원한 결말의 종언을 찾아내고 있었다,


생각할수록 꼬여가는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를 부여잡고 있다가
공감하게 된 문장 하나,




림의 좋고 나쁨에 대해선 난 몰라. 하지만 난 영화든 소설이든 음악이든 뭐든지 간에, 접했을 때 그것이 나한테 좋은지 나쁜지 구분하는 기준 같은 게 있어.

그건 그걸 만든 이와 만나고 싶은가야. 그 작자와 친구가 되고 싶은가. 그런 기분으로 말하자면.

난 이 그림을 그린 사람과 친구가 되고 싶어. 

 

만약, 인셉션 재밌냐고 물어본다면
몰라 됐고 그냥, 

죽기 전에 만나고 싶다_   크리스토퍼 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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