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롤 가비에로의 모험 (반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4 
알바로 무티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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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케스에 이어 나를 매혹시킨 책. 땅이 멀고 언어가 멀지만 무지하게 하루를 깎아먹는 사이에도 명작은 탄생한다. 이런 작품을 이렇게 편하게 읽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축복인가!


 
 
 

 

 

『노인과 바다』와 함께 『노인과 바다』영어판을 선물로 받았다. 책소개 일부를 옮겨 본다.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의 『노인과 바다』는 국민대 영어영문학과 이인규 교수의 번역으로 선보인다. 헤밍웨이는 평소 사전이 필요한 글을 써서는 안 된다고 주장할 만큼 간결하면서 꼭 필요한 단어만을 사용했다. 그러다 보니 그의 영어가 일견 쉬운 듯 보이지만, 자칫 그 의미를 잘못 파악한 경우를 기존 번역본들에서 종종 발견할 수 있다.

 

'세계명작', '고전'의 범주에 속하는 『노인과 바다』의 영어판은, 위에서 밝혔듯 고급어휘나 전문용어를 배제하고 최대한 간결하고 명확한 단어를 사용했다. 간결하고 명확한 말로 썼다곤 하나 우리의 한글로 쓰여진 작품이 아니기에 언어의 참뜻에 다가서기 위해서는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간결하고 명확한' 단어는 오히려 함정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논의가 필요한 부분을 발췌, 소개한다.

 

 

 

 

예약판매 선물인『노인과 바다』영어판 29페이지를 보면 'Dolphin'이 등장한다. 문학동네 『노인과 바다』35쪽에서는 위 문장을

 

"만새기야." 노인은 크게 소리쳤다. "커다란 만새기 떼야."

 

로 옮겼다. 우리는 흔히 dolphin이라 하면 조건반사적으로 '돌고래'라 생각한다. 편집은 익숙한 것들과의 결별이다. 편집에서는 보지 않고 믿는 반석의 믿음보다는, 창에 찔린 예수의 옆구리와 못박힌 손과 발의 구멍에 손가락을 넣어보는 도마의 의심과 확인이 필요하다.

 

 

 

 

창비에서 출간된 『영미명작, 좋은 번역을 찾아서』를 보자. 2005년에 초판을 발행한 이 책을 보면 『노인과 바다』는 총 129개 출판사에서 나왔다. 이름이 밝혀진 역자가 70명, 편집부 등의 이름으로 되어 있는 것이 8종, 역자 자체가 드러나지 않은 것도 8종이다. 영미문학연구회 번역평가사업단에서는 역자가 밝혀진 책 가운데 66본을 입수해서 원서와 꼼꼼히 대조했다. 번역본 중에서는 앞선 번역본을 표절하거나 과도하게 활용한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내린 결론은 이것이다. '새로운 번역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번역은 22명 역자의 번역 22종 뿐'.

 

『영미명작, 좋은 번역을 찾아서』에도 'dolphin'의 오역에 대해서 언급한다.

 

 

 

 

많은 판본이, 심지어 최근에 발행된 판본에서도 'dolphin'을 '돌고래'로 옮겨놓았다. 그런데  'dolphin'이 '돌고래'가 아님은 『노인과 바다』본문에도 밝혀 놓았다.

 

 

 

 

위 책 『영미명작, 좋은 번역을 찾아서』에도 언급했다시피, 문학동네판『노인과 바다』77페이지를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내일은 만새기를 먹을 거야. 노인은 만새기를 도라도*라고 불렀다.' 

 

페이지 하단에는 '도라도*'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도라도는 만새기를 뜻하는 스페인어이다.

 

 

 

 

위 내용은 『노인과 바다』 본문 75쪽, 만새기의 외형을 묘사한 부분이다. 75쪽과 76쪽에 만새기의 외형이 구체적으로 묘사된다. 그리고 뒤이은 77쪽에 '도라도'에 대한 언급이 있다.

 

 

 

 

참고로 문학동네판『노인과 바다』50쪽을 보면 '밤사이에 돌고래 두 마리가 배 가까이로 다가왔다'는 대목이 나온다. 같은 내용을 영어판에선 어떻게 썼는지 보자.

 

 

 

 

『노인과 바다』영어판 41쪽에는 'two porpoises'로 나와있다. 돌고래를 묘사할 때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porpoise라는 단어를 '택했다'. 그리고 만새기를 묘사할 때는 dolphin을 썼다.

 

앞서 말했듯 (한글판)『노인과 바다』에는 dolphin, 즉 만새기의 모습을 상세히 묘사했다. 75쪽에서 76쪽에 걸친 소개를 보면 dolphin의 묘사에 '등은 자줏빛, 자주색 줄무늬나 반점, 황금빛으로 빛나는 몸, 길고 넓적한 몸뚱이, 황금빛 대가리' 등의 단어가 등장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황금빛, 자주색 줄무늬나 반점, 무엇보다 '길고 넓적한 몸뚱이'가 돌고래의 외양과 판이하게 다름을 알 수 있다. 

 

dolphin이 왜 돌고래가 아닌지는, 이렇듯 책 스스로가 답을 주고 있다. dolphin, 만새기에 대한 외형 묘사도 구체적으로 되어 있어서 돌고래와 확연히 구분되며, 노인의 말 '도라도'를 통해서도 dolphin이 만새기임을 알 수 있다. 바다의 절대 고독에 던져진 노인 곁에 자주 등장하는 물고기가 바로 '만새기'이다. 잠깐 스쳐지나가는 풍경이 아닌 것이다. 문학동네판 『노인과 바다』를 번역한 국민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이인규 교수는, 번역 소감을 이리 밝혔다.

 

“좋은 번역을 읽는다면 원작을 읽는 것과 같은 감동을 느낄 수 있다. 정확한 번역에 좋은 편집이면 외국 작품을 읽으면서도 같은 감동을 느낄 것이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사후 50년이 지났다. 이미 강을 건너 저 너머로 간 그를 현세에 소환할 방법은 없다. 있다면 단 하나, 그가 남긴 작품을 통해 그를 만나는 것이다. 이인규 교수의 말대로 좋은 번역에 좋은 편집이면, 다른 말을 하고 다른 환경에서 자라 이미 다른 세상으로 간 작가를 같은 언어권, 작가와 동시대에 살았던 이들과 동일한 감동으로 만날 수 있다. 번역과 편집은 익숙한 것들과의 결별이며, 도마의 의심과 확인이 곧 구원이다. 불멸의 고전은 신성을 지닌 불가침의 영역이 아니라 문장과 문장, 단어와 단어 사이의 틈에 손과 펜을 찔러넣어 만지고 확인하고 다시 또 확인하는 게 곧 구원이다. 그런 확인을 거친 작품이 우리에게 시대를 초월한 감동을 선사한다.

 

예약판매 기간 중 선물한 『노인과 바다』영어판은, 수년간 『노인과 바다』텍스트를 두고 강의하며 강의노트를 채우고 연구하고 거듭 들여다본 역자의 자신감이다. 익숙한 단어가 주는 '안도의 함정'을 비껴간, 감동을 고스란히 옮겨온 판본임을 자신하기에 영어판을 선물한 것이다. 책에 있어서 다름은 틀림이다. 다름과 틀림은 같은 말이 아니나 책의 세계, 활자의 세계에서 다름은 곧 틀림이다. 지금까지 나왔던 백수십여 종의 비슷한 것들은 잊어라. 영어판의 자신감과 함께 진짜를, 진짜 감동을 만나보길 바란다. 수십 년 전에 쓰여진 원작의 감동이, 막 잡아올린 청새치마냥 당신의 품안에서 펄떡일 것이다.  

 

 

 

 

 

 

 

 

노인이 만새기를 낚아 올리는 장면이다(75쪽). 잠시, 쉬자.

번역에 대한 이야기, 한 단어가 어떻게 작가의 손에 간택되고 어떻게 옮겨졌으며 어떻게 감동으로 다가오는지, 죽 살펴보았다면, 이제는 아름다운 문장으로 잠시 눈을 쉬게하자. 어두워지기 직전, 바다가 노란 담요 밑에서 무언가와 사랑을 나누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해초 더미, 그리고 마지막 햇살 속에서 완전한 황금빛으로 빛나며 생의 마지막 몸부림을 치는 만새기를 보자.

 

 

 

 

영어판 62쪽, 'Just before it was dark,'로 시작되는 아름다운 원문도 함께 만나도록 하자. 한글과 함께, 아름다운 원문도 입 안에 넣고 굴려보자.

 

 

 

 

 

좋은 글쓰기란, 대체할 수 없는 언어를 자신의 자리에 꽂는 일이다. 『노인과 바다』의 노인은 만새기와 함께 여러 물고기들을 낚았으나 노인이 잡고자 한 것은 생애 최고의 청새치였다. 노인이 작살을 꽂고자 했던 것은 그 누구도 만나지 못한 청새치다. 낚는다는 행위만 중요시하여 청새치 대신 만새기를 잡고 돌아오는 일은, 그저 쓴다는 행위 자체가 중요하여 이런저런 단어를 적당히 쓰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좋은 글은, 도무지 그 단어 이외에는 갖다 쓸 수 없는, 바로 그 문장의 그 자리를 위해 탄생한 듯한 단어를 바로 그 자리에 꽂는 일이다. 청새치를 낚아올리는 손맛을 맛본 자라면 만새기를 낚아 올리는 일로 만족할 수 없다. 텍스트 또한 그러하다. 훌륭한 번역과 편집을 맛본다면, 도무지 그 짜릿한 손맛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번역자는 오늘도 언어의 바다에서 자신이 노린 '단 하나의 단어'를 찾아 배를 띄운다. 나는 앉아서 생애 최고의 월척을 책으로 만난다. 



 
 
다락방 2012-01-26 15:42   댓글달기 | URL
와- 잘 읽었어요. 글이 너무 좋아서 추천도 꾹, 눌렀습니다. 그리고 책을 장바구니에 넣었어요.
사실 영문판을 증정으로 준다는 사실에도 혹했지만 말입니다. 하핫 :)

진새삼촌 2012-01-30 09:19   URL
^^ 추천 감사합니다. 영문판이 본 상품(?)과 똑같은 형태라 깜놀했다지요. ㅎㅎ 책에는 수많은 의미와 가치가 담겨있지만, 한편으로 책은 가장 저렴한 인테리어 소품이라 생각하는지라... 본판과 똑같은 영문판이라 깜놀이었답니다. ^^;

blanca 2012-01-26 22:16   댓글달기 | URL
글도 사진도 정말 근사합니다. 잘 읽고 갑니다.

진새삼촌 2012-01-30 09:20   URL
어익후! 부끄럽사옵니다! ^^;;
(하지만 칭찬 받고 춤출 준비하는 중이어요 ㅎㅎㅎ)

oren 2012-01-27 13:19   댓글달기 | URL
정말 멋진 글 잘 읽었습니다. 그리고 '만새기'에 대한 얘기도 너무 재미있네요.

제가 2001년 여름휴가때 제주도의 차귀도 앞바다에서 '바다낚시'를 해 본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우리 식구들이 '다랑어 대여섯 마리'와 함께 '만새기'를 한 놈 잡아 올렸답니다. 정말 난생 처음보는 '제법 커다란 대어'를 낚아올렸던 터라, 그 놈을 잡아올린 제 아들(당시 초등학교1학년, 올해 고3에 진학합니다)이 너무 흥분해서 좋아하던 기억이 생생하네요.(그 당시 잡아올렸던 만새기의 몸 길이를 재보니 바닥에서 제 아들의 겨드랑이에 닿을 정도였답니다. 혹시라도 그 때 찍은 사진을 찾게되면 이 댓글에 덧붙여 보겠습니다)

oren 2012-01-27 22:40   URL
퇴근후 집에 돌아와서 11년전에 찍었던 사진들을 살펴보니 '만새기'는 도대체 찾을 수가 없네요. 아마도 '만새기'는 제가 들고 다니던 캠코더에 담긴 뒤에 비디오테이프로 옮겨진 것 같은데, 디지털 시대로 바뀌다 보니 TV에 연결해 놓은 블루레이 플레어이로는 구경조차 할 수 없네요. 그냥 지나치기도 그렇고 해서 '만새기를 잡은 아이들'의 그당시(2001.7.31) 사진이나마 올려봅니다.







진새삼촌 2012-01-30 09:22   URL
헉! 정말 사진 올려주셨네요! ^^ 만새기가 없다면 또 어떻습니까. 만새기야 뭐 온갖 검색으로 이미지를 찾아볼 수 있는데요. 제 눈에는 아빠와 함께 낚시를 나온 아이들이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인생의 월척' 아닌가 싶습니다. 만새기를 못 본 분들에겐 '검색 이미지'보다 막 낚아올린 만새기 사진이 훨씬 생동감 있겠지만,제 눈에는 가족의 한때가 더 보기 좋네요. ㅎㅎ 저도 올 여름엔 제주도 한번 뜰 예정입니다! ㅎ

소이진 2012-02-02 20:32   댓글달기 | URL
우와, 너무 늦었지만 이글은 추천을 누르지 않고서는 제가 찝찝할 거 같군요.
헤밍웨이의 훌륭한 글과 이인규교수의 멋드러진 한 마디보다도 전율이 이는 글이었습니다.
너무 좋은걸요

진새삼촌 2012-02-06 09:54   URL
^^ 답글이 늦었네요. ^^;;;; 솔까말, 쑥쓰러워서 답글 달기가 망설여졌습니다. 과찬이세요. 그래도 칭찬과 함께 꾸욱~~ 눌러주신 추천, 감사드립니다. ^^

재는재로 2012-02-02 20:53   댓글달기 | URL
좋은 정보감사합니다 이제까지 돌고래로 알고 있었는데 꾸벅~

진새삼촌 2012-02-06 09:55   URL
^^ 네. 저도 문동판 <노인과 바다> 역자의 말 보고서 돌고래가 아니라 만새기인 걸 알았답니다. ^^;;;; 그거 알고나서 뒷조사(?)를 한 거예요. ^^;;;;;;
 
그리고 명탐정이 태어났다 블랙펜 클럽 13 
우타노 쇼고 지음, 현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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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물에 인생을 바쳐온 이들에 대한 헌사


 
 
 
설계자들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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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학생 때였다. '반다이'는 언감생심 꿈도 못 꿀 때였고, 당시 반다이를 벤치마킹하여 국내 입지를 굳혀가던 '아카데미'의 건담 시리즈 프라모델을 사 모으던 때였다. 'Z건담'이 당시 돈으로 3천 원 정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십 몇 년 전에 3천 원이면 국민학교 꼬마에겐 큰 돈이다. 세뱃돈이 오백 원, 천 원 하던 시절이었으니까.

프라모델 조립은 형이 다 맡아했다. 나도 만들어 보고 싶었으나 형은 손을 못 대게했다. '나를 믿을 수 없었'거나, '자신이 더 섬세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어느날, 형이 외출하고 없는 틈을 타서 형이 만들던 Z건담을 들고 다락방에 올라갔다. 형이 돌아오기 전까지, 최대한 나도 조립의 희열을 느끼고 싶었다. 세밀하고 작은 부품이 많아 손이 떨렸다. 작은 가위로 부품을 잘라내고, 삐죽하게 잘린 부분은 손톱깎이로 다듬으면서 한낱 플라스틱 쪼가리가 건담의 몸체가 되는 이적의 현장에 함께하는 기쁨으로 몸을 떨었다.

그런데 3mm 정도 되는 부품 하나가 튕겨져 날아갔다.
부품이 워낙 작다보니 가위로 '뚝'하고 자르는 순간 날아간 것. 아무리 찾아봐도 잃어버린 부품을 찾을 수가 없었다. 고작 3mm 짜리였지만, 사람으로 따지면 다리와 골반을 고정시키는 부분이었다. Z건담은 건담 시리즈 중 '변신'을 하는 흔치않은 녀석인데, 변신을 하기 위해선 다리를 단단히 고정할 필요가 있었다. 그말인즉슨, 3mm짜리 부품 하나 때문에 우리집의 Z건담은 변신을 할 수 없다는 소리였고, 3천 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엄마의 잔소리'를 감안해가며 산 Z건담이 반병신이 되었다는 소리였다. 또한 형에게 죽도록 갈굼당할 거라는 소리이기도 했고. 

고작 3mm 부품 하나 때문에. 

고작 3mm 부품 하나 때문에 Z건담은 '특유의 정체성'인 변신도 못하는 반병신이 되었고, 나는 형에게 죽도록 갈굼당했으며, 꼬마로서는 벌벌 떨면서 두손으로 받아들 3천원이 날아가 버렸다. 고작 3mm 부품 하나 때문에.  


너는 3mm 냐?
'미친 존재감'을 지닌 글쟁이 김언수의 소설 <설계자들>은 대놓고 묻는다. "너는 3mm냐?" 대답이 궁색해 우물쭈물하는 사이, <설계자들>은 판결을 선고하듯 대답을 해 버리기까지 한다. "너는 3mm보다 못한 존재다. 부품은 더더욱 아니고, 손톱깎이로 다듬어서 버려야 할 부품 옆의 플라스틱 쪼가리야!"라고 말이다. 

<설계자들>은 제거해야할 대상과, 손에 피를 묻히는 암살자와, 암살의 계획을 짜는 설계자들, 암살을 중개하는 업자들, 암살을 의뢰하는 계약서상의 '갑'들이 등장한다. 뭐냐, 또 킬러냐?라고 코웃음 치지 마시라. 그런 반응은 미야베 미유키, 일명 '미미여사'의 <모방범>더러 "뭐냐, 또 살인사건이냐?"라고 웃어버리는 것과 똑같은 얘기다. 미미여사의 <모방범>은 '추리소설'의 껍데기를 쓴 '인간탐구'의 얘기이며, 미친 존재감 김언수의 <설계자들>은 '킬러가 등장하는' 사회의 권력과 부조리에 대한 얘기이다. 살인도 깔끔한 대형마트에서 주문하듯 맞춤형 필요상품이 되어버린 이 부조리의 세계말이다.

그러니 어쩔 수 없다. 세상을 바꾸고자 한들 3mm도 안 되는 입장에서 바둥거려봤자 내가 부스러질 뿐이다. 국민학생 따위나 3mm에 연연하지, 권력의 '빈 의자'에 앉는 이들은 3mm부품 없어졌다고 쩔쩔매지 않는다. 가게에 가서 '금빛' 신용카드 내밀며 "이거랑 똑같은 걸로 하나 더 주세요."하면 그만이다. 누군가 감쪽같이 죽어 없어졌다고? "똑같은 여자로 하나 더 주세요."라고 말하면 그만이다. 아니, 얼마든지 더 좋은 걸로도 살 수 있다. 권력자들은 '상실'이나 '인권'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그저 '증빙'과 '안위' 확보가 우선이다.

<설계자들>의 주인공 '래생'은 3mm다. 본인 스스로도 3mm라는 걸 잘 알고 있다. 래생의 태생부터 그렇다. 애미애비도 모르는, 수녀원 앞 쓰레기통에 버려진 존재가 바로 래생이다. 래생은 '개들의 도서관'의 도서관장 '너구리 영감'의 손에 이끌려 '암살중개업소'인 '개들의 도서관'에서 자란다. 그는 책은 많으나 개조차도 얼씬거리지 않는 '개들의 도서관'에서 훈련관 아저씨에 의해 킬러로 길러진다. 래생이 얼마나 어이없는 3mm인가 하면, 어리바리할 뿐만 아니라 싸움실력도 뭔가 못미덥고, 3mm주제에 '농담'을 할 줄도 안다. 권력과 실세 앞에서 웃으며 눙치는 3mm라니. 튼튼한 동아줄을 잡아야 하늘의 해님도 되고 달님도 되는데, 래생은 썩은 동아줄인 걸 뻔히 알면서도 '자기가 선택한 줄'을 잡는다. 수수밭에 고꾸라져 떨어져 그 피로 수수를 물들일지라도 독고다이 마이웨이다. 이렇듯 싹수부터 노란 래생은 창조자님인 '소설가 김언수'의 제재도 듣지 않은 채 '미친 세상'을 향해 질주한다.

나는 <설계자들>의 래생을 읽으며 미친 존재감 김언수를 떠올렸다. <캐비닛>이라는 포복절도할 책으로 혜성처럼 등장했고,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의 문화예술 후원처럼 '소설을 쓰다 사업을 시작한 친구'로부터 매달 1일에 입금되는 방식으로 2년 동안 월 50만 원을 후원받은 소설가 김언수 말이다. 다작을 한 것도 아니고 작가 이미지 자체가 백화점 명품샵이 아니라 시골 5일장스러운 그, 하지만 미친 존재감을 지닌 그 말이다. 그는 래생같고, 래생은 그 같다. 썩은 동아줄을 붙잡을지언정 독고다이 마이웨이를 걷는 한국문단의 래생, 바로 김언수. 래생의 창조자님 김언수는 래생이 더럽게 말을 안 들어서 '소설가와 캐릭터가 서로 싸워서 삐지는'상황에 갔다고 밝힌 적 있는데, 내가 볼 때 김언수 역시 '말을 더럽게 안 듣고' '자기의 글을 통해 세상에 일갈하는' 캐릭터임에 분명하다.
(소설에서 래생은 '지적이고, 듬직하고, 자뻑이긴 하다만 잘생겼고, 귀엽기까지'하다. 게다가 3mm주제에 권력 앞에서 농담도 할 줄 안다. 내가 아는 김언수가 딱 그렇다. '잘생긴건' 수긍하는데 시간이 조금 걸리지만, 적어도 '지적이고, 듬직하고, 미친듯 귀여운데다가 농담을 할 줄 안'다. 그렇다. 그는 '농담을 할 줄 안다') 

잘 키워주니 물어뜯는다고, '개들의 도서관'에서 자라 유학물까지 먹은 '한자'는 도서관장 너구리 영감을 뛰어넘으려한다. 그와중에 훈련관 아저씨와 추, 정안이 칼잡이 이발사에 의해 살해된다. 지령을 내린 이는 한자가 분명하다. 하지만 이빨이 빠진 호랑이, 검은털이 몽땅 빠진 너구리처럼 추락해버린 너구리영감은 실체와 배후를 뻔히 알면서도 꼬리 끝을 약간 잘라내는 것으로 일을 덮는다. 배은망덕한 한자 역시 꼬리 끝만 조금 잘라서 생색내는 것으로 자신의 손을 씻는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넘겨주고서 깨끗한 물에 손을 씻음으로 자신은 상관없다고 자위하던 저 뻔뻔한 빌라도처럼.

권력의 '빈의자'를 노리는 높은 분들 입장에서 한낱 암살자들이야 3mm도 안 되는 대체가능한 부속품에 불과하다만, 이런 세상에서 여전히 '인간'으로 살아가는 래생은 분노한다. '사람백정'이니 래생 자신도 죽어 마땅한 존재이지만, 시니컬과 냉소로 자신을 지켜왔던 래생 속 인간이 꿈틀거린다. 

래생이 풋내기 암살자이던 시절, 래생의 암살 작업에 지저분한 흔적이 남아 도피 중일때 만난 여인이 있다. 알뜰살뜰 손도 맵고 살림꾼인 여인을 만나 '일반인'으로 살 수 있는 인생 유일의 기회 앞에서도 상황이 수습되자 다시 암살의 판으로 돌아왔던 래생. 사랑을 버리고 오면서도 기계적으로 '자신의 흔적을 지우는' 암살자로서의 직업병을 발휘하던 냉혈한이었지만, 래생은 이발사의 칼자국이 선명한 친구의 시체 앞에서 자각하고 각성한다. 래생은 '스스로 설계하고 스스로 움직이는' 판에 뛰어든 것이다. 그리고 돌연히 나타난 미토, 미사 자매. 그리고 자매와 엮인 사팔뜨기 사서. 똑같은 3mm인 암살자 래생, 설계자 미토. 사랑이 설계되었다면 래생과 미토의 만남은 이보다 더 낭만적일 수도 없겠다만, 둘의 만남은 '똥'에 반응하는 변기 속 사제 폭탄이 실마리가 되었으니 유쾌할 수만은 없을 터. 세상을 바꾸겠다는 미토는 래생 입장에서 '미친년'일 뿐이다.

하지만 잘 만났다. 미친놈 미친년끼리 한바탕 어울려 세상을 한번 뒤집어 보자.
아름다운 밤하늘의 폭죽처럼, 권력을 상징하듯 수직 이동만 가능한 엘리베이터들에서 폭탄이 빵빵 터진다.

각성한 래생은 거칠 것 없이 미친 춤사위를 선보인다. 브레이크는 필요없다. 가속페달 하나로 끝까지 가는거다. 쿵쾅거리는 심장은 당장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다. 그리고, '농담을 할 줄 아는' 래생은 웃는다. 치명적일 정도로 매력적인 웃음이다.  

문학이 인생을 바꿀 수 있을까? 누군가가 거대 담론을 던진다면 글쟁이 김언수는 저 래생의 마지막 장면마냥 슬쩍 웃고 말 것이다. 그리고 그는 '농담을 할' 것이다. 누가 앉든 상관없는 권력의 꼭대기 자리, 그 자리는 그저 빈 의자로 존재하며 억겁의 시간동안 윤회가 되풀이되듯 권력자는 얼굴이 다른 누군가로 바뀔 뿐이며, 영원불변한 것은 그 자리, 빈 의자 뿐이다. 권력자를 설계하고 암살한다 한들 '빈 의자'를 치울 수는 없다.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건 래생 말마따나 '미친년' 소리 듣기에 딱 좋다. 하지만 그래도 썩은동아줄 독고다이 마이웨이를 걷는 또라이들이 세상에 있기 마련이고, 세상의 질서 개편까지는 아니어도 살아서 꿈틀거리는 이들은 지렁이처럼 계속 땅을 뚫고 나온다. 비가 멎고 해가 떠오르면 아스팔트 위의 지렁이들은 온몸이 말라 마른 낙엽처럼 죽어가고 개미의 배를 채울 뿐이다. 하지만 지렁이는 끊임없이 땅을 뚫고 나온다. 오직, 꿈틀거리기 위해서. 

나는 김언수가 비 내리는 날 땅을 뚫고나와 태양이 떠오르기 전 아스팔트를 건넜다고 생각한다. 몸이 잘라져도 꿈틀거리고, 암수 한몸으로 외로워도 좋다. 지렁이가 몸에 흰 띠를 두른 듯, 김언수는 태어날 때부터 하얀 종이를 들고 태어났다. 죽음을 담보로한 아스팔트 위의 행보처럼, 미친 존재감 김언수는 몸으로 부딪히고 꿈틀거린 흔적을 날때부터 들고온 종이에 새긴다. 그리고 나는 대가없이 그것을 읽는다. 정말 미안하지만, 뻔뻔스럽게도 책값 얼마를 지불하고선 죽음을 담보로한 흔적을 읽는다. 

 

나는 3mm다. 사실 내가 아는 모든 이들은 3mm다. 튀어 없어질 수도 있고, 알고보면 얼마든지 대체가 가능하기도 하다.

하지만 3mm가 부재함으로 인해 반병신이 되는 세계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리고 김언수는 한국문학의 3mm로서, 그 어떤 골드카드를 들고가도 구해올 수 없는 '물건'이 분명하다. 그의 꿈틀거림, 이무기나 용이 되는 건 관심조차 없고, 그저 지렁이로 세상을 향해 '농담'을 던지듯 '화두'를 던지는 그가 좋다. 그렇다. 그는 '농담을 할 줄 아는' 몇 안 되는 희귀한 소설가이다.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 -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 
한창훈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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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깃집에서 쌈을 싸먹지 않는다. 쌈을 싸먹는 경우는 하나다. 바다건너 온 고기들, 수입산이라는 걸 온몸으로 증명하듯 네모 반듯하게 잘린데다 겨울철 주공아파트 베란다 유리창에 성에 끼듯 살얼음이 살짝 낀, 동물성 단백질이라는 것 정도로 만족해야하는 고기를 먹을 때 뿐이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고기맛이 없다면 풀맛으로. 고기가 맛있는 집에선 그저 고기만 주워먹는다. 내 이와 혀와 눈이 고기를 온전히 즐기기 위해서다. 기름장도 사양이다. 쇠고기는 약간의 소금만 있어도 충분하다. 진짜 참기름도 아닌 것에다 소금 풀어봤자 뭐하나. 진짜 참기름은 그것 자체로 맛나고, 쇠고기는 쇠고기의 기름 자체로도 만족스럽다.

나는 조용히 까탈스러운 편이지만, 우리 아버지는 대놓고 까탈스러운 미식가시다. 자가용 없이 지금도 대중교통을 이용하시고, 좋은 집으로 이사 한번 가보자는 어머니 말씀에도 그저 "됐어." 한마디로 끝내시는 분이지만, 입에 들어가는 음식 하나만큼은 '인정'과 '관용'이 허락되지 않는다. 아버지는 맛없는 식당에서는 화를 내시고 밥 대신 쏘주만 자신다.

언젠가 여자친구를 인사시켜 드린다고 시골에 내려간 적이 있다. 아버지는 보수적인 시골 양반이라 그 앞에선 둘이 손도 잡지 못하고, 그저 긴장한 채 아버지 낯빛을 살폈다. 당시 내 여자친구는 아버지 마음에 탐탁치 않은 사람이었다. 아버지께서는 좋다 싫다 왜왔냐 괜히 왔다, 이런 말 한마디 없이 어딘가로 전화를 거셨다. 그러고는 식당 이름을 알려주시며 택시타고 얼른 가란다. 뭘 먹겠느냐, 뭐 그런 물음도 없었다. 아버지께서는 등돌려 나가는 나를 불러 십만 원짜리 수표를 한장 쥐어주셨다. 도착한 곳은 복어집. 나나 여친이나 복어는 처음이었던지라 비교 대상이 없으니 그집이 맛있었는지 없는지 평가할 깜냥도 되지 못했다. 다만 밑반찬의 하나로 북어국이 나왔는데, 평생 먹어본 북어국 중 그집의 맛이 최고였다는 것만큼은 똑똑하게 기억한다.

아버지는 그런 분이시다. 밉든 좋든 일단 찾아온 손님은 맛있는 걸 먹여 보내야한다. 먹는 게 자신에게 있어 큰 즐거움이므로, 상대에게도 최고의 즐거움을 대접하는 것이다.

바닷가에서 나고 자란 나는 회를 좋아한다. 한점 먹어보고서 이게 무슨 생선이다, 생선 대가리만 봐도 이놈은 고놈이다, 라고 말할 수준은 물론 아니다만, 회는 사양치 않는다. 그도 그럴것이 나고자란 곳이 전북 군산이다. 군산하면 부산과 함께 회 하나로 유명한 곳 아니던가. 봄철의 군산 주꾸미도 최고이고. 그런데 군산에서는 여름에 횟집들이 일시에 문을 닫는다. '내부수리' 명목이지만 군산에선 여름에 회를 먹는 이도 적고, 횟집도 굳이 팔 생각을 않는다. 여름은 어종, 어획량 모두 적고 제철 생선이라 할만한 게 그닥 없기 때문인데다 먹고 탈이 나는 것도 우려해서다. 여름에도 문을 연 집이 있다면 수도권에서 역풍으로 내려온 '광어 한 마리 9,900원', 뭐 그런 횟집들이다.

회가 그리운데 여름이라 그저 참고 살았는데, 어젯밤 몹쓸 책을 한 권 읽고 말았다. 진실로 땅을 치며 후회했다. 첩첩산중 달도 안 뜬 어둔 밤 오솔길에서 삼 일 굶은 호랑이를 만난 선비가 흘린 땀을 종지로 받아본다 한들, 내가 어젯밤 이 책을 읽으며 흘린 침보다 양이 적을 것이다. 아, 이놈의 몹쓸 책, 모 일간지에서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라고 연재되었던 것을 엮은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이다.

이런 망할 책 같으니라고. 감칠맛 나는 글만으로도 간장게장마냥 맨밥 한 끼 뚝딱이지 싶은데, 사진까지도 침을 돋게 만든다. 사진속 횟감으로 쓸만한 갈치 정도까진 아니었지만 무림고수의 번쩍이는 검처럼 은빛찬란 물 좋은 갈치를 엊그제 마트에서 봤다. 아, 물좋다! 하며 다가갔더니 한 마리 5만 원. 쓸쓸한 발길 돌리는 것을 보니 나도 아버지를 닮았다.

그러고보니 갈치회와 고등어회도 복어회 여친과 처음으로 먹었구나.

소설가 한창훈 작가님의 글은 이전에도 맛깔나게 보아온 터였다. 소설집 <나는 여기가 좋다>의 경우, 책장을 넘길 때 바닷바람과 파도소리가 들려오는 듯했고, 뭍보다도 바다가 더 좋은 갯놈의 처연함이 온몸을 휘감기도 했다. 그러던 차에 새로 나온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는 음식만화인 <식객>으로 유명한 만화가 허영만 선생이 먼저 읽고 빠져들었다 하고, 섬에서 나고 자란 배우 고두심 님 역시 좋다 말하니 구미가 당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아, 그저 구미가 당기고 말았어야 했다. 딱 그선에서 끝내야 했다. 선을 넘듯 책장 넘긴 게 잘못이다. 차라리 야쿠자 오야붕의 애인을 집적거리다 선을 넘는 바람에 일본도를 피해 도망다니는 게 낫지, 늦은밤 책 읽다 새벽녘에 미친 듯 회가 먹고싶어지는데 어쩌란 말인가! 스탠드 하나 켜놓고 책 읽다가 앉질 못하고 거실을 서성였다. 아, 생선! 아, 바닷것! 뭐 없을까, 뭐 없을까? 비린 것 뭐 없을까? 정말 우리집에 아무것도 없단 말인가! 일없이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닫았다, 쏘주는 한 병 있는데 물고기는 어디에서! 어디에서!

시간 보니 횟집 문 다 닫았을 시간이다. 이런 망할, 이런 젠장할! 왜 이런 책을 쓰고 만들어서 이 쌩난리냐고!

아, 저기... 작가님 맞으시죠? 글 쓰는 분 맞으시죠? 그러나 사진 속 한창훈 작가님은 영락없는 뱃사람, 어부의 모습이다. 아마도 작가님 만나뵈러 내려갔다가도 회 써는 모습 보면 그저 동네 뱃꾼이려니 해서 "거 아저씨, 담배 한 가치만 꿉시다!"라고 말하고 넘어갈지도......

물론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는 결코 요리책이 아니다.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라는 신문 연재 당시의 제목에서 잘 보이듯, 1814년 손암 정약전 선생이 쓰신 <자산어보>를 200년 후의 '생계형 낚시꾼' 한창훈 작가님이 현세와 연결시켜 밥상으로 끌어올렸다 보면 맞겠다. 월척이다. 흑산도 바다 동식물에 관한 사전쯤 되는 <자산어보>, 가치는 높다만 "그래서 뭐?"하게 되는 옛날 책을 이렇게 맛깔스럽게 밥상으로 끌어올리다니 월척 낚은 게 아니면 뭐란 말인가?

이 몹쓸 책에는 친절하게도 이런 장면까지 풀컬러 사진으로 지원해 주신다. 이 책, 공포영화의 공식과 똑같다.

1. 절대 밤에 읽지 말것! (공포영화에선 밤에 꼭 당한다.)

2. 절대 혼자 읽지 말것! (바보같이 혼자 나가는 금발 글래머 여자부터 먼저 죽는다.)

그러니까 낮에 여럿이 읽다가 마음 동해 횟집가서 쏘주 한 잔 하면 완벽하단 소리다.

책은 자산어보에서 손암 정약전 선생이 언급한 바다 동식물의 옛이름과 설명을 소개하고, 그에 따르는 21c 생계형 낚시꾼 한창훈 작가님의 추억과, 손맛과, 인생과, 바다내음을 열거한다. 글 자체로도 충분히 맛깔스럽고 눈물겹고, 사람들 부대끼는 땀내와 바닷내가 어우러져 있다. 요즘 인기를 얻는 만화 중에서 비슷한 느낌의 작품이 있는데 바로 <심야식당> 되시겠다. <심야식당>도 무척 훌륭한 작품이다만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는 흑백의 밤식당에 비해 으리번쩍 눈이황홀 컬러 사진으로 바다를 생생하게 옮겨왔으니 훨씬 더 씹는맛, 읽는맛이 좋다 하겠다.

읽으면서 이렇게 포만감이 느껴지고 만족스러웠던 적이 별로 없었다. 바다도 좋고, 바다에서 나는 '사는 것'과 '먹는 것'도 좋고, 그안에 얽힌 사람 이야기, 사람의 생 이야기도 참 좋더라. 몰랐던 것은 새로 알게되니 좋고, 알았으나 정확히 몰랐던 것은 더 깊이 알게되니 더욱 좋다. 글만으로도 맛있으나 사진과 정보와 뒷이야기 또한 메인메뉴 못잖은 깜찍하고 맛깔난 요리로 충분하다.

그러니 요즘 환절기라고 입맛 없는 양반들, 맛깔난 책 있으니 한번 맛볼 것을 추천한다. 책 모양새부터가 다르지 않은가? 앞표지에 물좋은 생선의 프로필 사진이 자리하고 있는 자태 하나로도, 충분히 황홀하다 하겠다. 그러니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 허기진 속과 인생을 달래는데는 바다가 최고다.



갈치, 삼치, 모자반, 숭어, 문어, 고등어, 군소, 볼락, 홍합, 노래미, 병어, 날치, 김, 농어, 붕장어, 고둥, 거북손, 미역, 참돔, 소라, 돌돔, 학꽁치, 감성돔, 성게, 우럭, 검복, 톳, 가자미, 해삼. 그리고 마지막 하나의 바다 생물은..... 비밀이다. 다만 놀랄 준비만 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