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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골목의 끝에, 첼시 호텔 ㅣ 문학동네 청소년 76
조우리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3월
평점 :
책의 주인공, 고등학생 락영이는
첼시호텔이라는 간판을 단, 다소 오래된 LP바를 운영하는 아버지와, 적은 수입으로 인해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게 된 공무원 어머니와 함께 살아간다.
락영이는 반장이자 우수한 성적을 유지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학생이다. 서울대를 목표로 하며 친구 관계보다는 생기부 관리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어른스러운 마인드를 가진 아이. 그녀는 마치 지금의 현실을 발판 삼아 제2의 인생을 준비하듯, 더 나은 미래만을 바라보며 살아간다.
“내가 삶의 방향을 ‘4대 보험이 적용되는 건전한 직장’으로 정한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아웃사이더 같은 삶은 싫다.” (p.22)
“아빠를 사랑하지만 아빠처럼은 안 살 것이다.” (p.23)
락영이에게 첼시호텔은 어릴 적 놀이터이자 친구 같은 공간이었지만, 동시에 ‘운영’이라고 말하기조차 애매한 방식으로 가게를 꾸려가는 아버지, 그리고 그곳의 단골 손님들은 그녀에게 ‘살아있는 유령’처럼 느껴진다. 그녀는 그들을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사는, 현실과는 동떨어진 삶을 사는 존재들이라고 단정 지으며 평가한다.
그런 락영이에게 ‘지유’라는 친구가 다가온다. 지유는 락영이와는 달리 밝고, 감정을 숨기지 않으며, 상대를 배려할 줄 아는 아이. 락영이는 그런 지유를 ‘입 안의 혀 같은 존재’라고 표현한다. 친구를 깊이 사귀어 본 적 없는 락영이는 이런 관계가 어색하고, 무엇이 자연스러운 것인지 혼란스럽다. 그러던 어느 날, 지유에게 사건이 일어나고, 이를 계기로 도영이라는 같은 반 친구와 함께 ‘고교탐정단’을 결성하게 된다. 사건의 진실을 파헤쳐 가는 과정에서 락영이는 많은 것을 깨닫는다.
좀 더 성숙한 인간관계란 무엇인지, 내가 보고 있는 관점이 세상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 가족이란 생각보다 훨씬 깊은 관계라는 것,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인간은 누구나 방황하고 있다는 것. 그 방황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고 나아가는 방법에 대해서도.
그리고, 그 방황이 락영이에게도 찾아온다. 깊고 어두운 곳에 숨어 있고 싶을 만큼. 그런 그녀에게 등대가 되어준 것은 바로 첼시호텔, 그리고 그곳의 단골들, 친구 지유와 도영이, 그리고 가족이었다.
“중요한 건 그들이 함께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첼시호텔의 정체성이 되었고 전설이 되었다.” (p.200)
“‘믿는다’는 말의 무게를 처음 실감했다. 내가 뻘짓을 해도 아빠는 나를 믿는다고 한다. ‘락영이는 락영이니까’ 하면서.” (p.156)
“나는 나와 잠시 교차하는 이 사람들에게 마음을 다해 다정하기로 결심했다.” (p.192)
첼시호텔을 읽으며, 청소년기를 지나온 어른의 입장에서 락영이의 마음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간을 단단히 건너가는 락영이가 참 대견했다. 아직은 초등학생 자녀를 키우고 있지만, 곧 청소년기를 맞이할 우리 아이들에게도 이 책을 권해주고 싶다. 스스로 단단해지기 위해 어떤 과정을 겪어야 하는지를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스스로 깨달을 수 있는 기회가 되어줄 것 같기 때문이다.
완독 후, 나 자신에게도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나만의 첼시호텔’은 있는가?
되물었다는 건, 곧 바로 떠오르지 않았다는 뜻이니… 이번 기회에 조금 더 나 자신에게 집중해 보는 시간을 일부러라도 가져봐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되었다.
“누군가의 말에 완전히 귀 기울여 줄 수 없다 하더라도 우린 서로를 다정하게 대해야 한다. 결국엔 누구나 혼자인 걸 알기 때문에. 다시 만날 때까지 혼자인 시간을 잘 견디기 위해.” (p.170)
책을 덮고 난 뒤, 나를 스쳐 가는 인연들에게 다정하게 대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 말이 왜 중요한지를 더 또렷이 알게 되었다.
나는 이미 다 큰 성인이지만, 여전히 성장 중인 어른이라는 것을 느끼면서.
(서평단 이벤트로 책을 제공받고 직접 읽은 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