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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스푼의 시간
구병모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9월
평점 :
품절
왠지 그럴 것 같았다. 이 글을 읽고 나면 소설가 구병모의 팬이 될 것 같은 예감이 왔다. 사실 한국문학을 즐겨 읽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위저드 베이커리』나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 그리고 『빨간구두당』같은 작가의 소설집은 이미 들어 알고 있었다. 이 작품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작가의 신작이기도 하거니와, 동네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던 노인에게 소년 로봇이 배달된다는 소개글 덕분이었다. 로봇, 그리고 로봇이란 단어를 만들어냈다고 여겨지는 카렐 차페크(실제로는 그의 형이라 한다). 요즘 나는 종종 그를 떠올리곤 했기 때문에 왠지 그와 연관하여 지금이, 구병모의 세계를 만날 좋은 시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로봇의 감정 발생 서사는 구병모 작가가 밝힌 것처럼 숱하게 되풀이된 이야기이다. 이야기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무엇보다 이 로봇은 어떤 존재일까. 나는 명정에게 배달되어 은결이라 이름 붙여진 이 소년 로봇을 기존의 이야기에서 등장했던 안드로이드들과 비슷하리라 생각했다. 예를 들어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에 등장하는 캐릭터들, 그리고 인공지능에 관한 스파이크 존즈의 영화 『그녀her』와 같은 소재들이 합쳐진…. 은결은 이렇게 발전할 ‘안드로이드’의 프로토타입이다. 가사노동을 위한 로봇들이 보급되는 근미래에, 인간의 형태를 지니고 인간처럼 사고할 수 있는 로봇들의 프로토타입.
어쩌면 소설은 그런 식으로 전개되었을지도 모른다. 은결이 지닌 인공지능을 최적화로 사용한 결과로 기술과 윤리에 대한 갈등과 고민의 메시지를 던진다든가- 하지만 명정은 홀로 세탁소를 운영하는 노인이다. 아들의 부고를 들은 6개월 후, 바다를 건너 온 소년 로봇에게 둘째가 생긴다면 붙여주었을 이름을 주고 애지중지하는…. 노인의 삶에 무슨 변화가 있겠는가. 명정은 은결의 기능을 대부분 최소화한 뒤 곁에 두고 허드렛일을 시킨다. 기존의 작품들에서 안드로이드들은 인간처럼 사고하고 행동하지만 은결은 늘 로봇임을 주지시키는 설명이 나온다. 피부 아래는 합성 금속, 눈동자는 조리개가 달린 카메라, 고저 없는 목소리.
그렇다고 은결이 노동을 제공하는 기계로서만 기능하는 것은 아니다. 명정은 좁은 세탁소 공간 너머의 세계를 은결이 경험하길 바란다. 은결을 대체할 수 있는 부품이 없기에, 고장이 날까 봐 공원을 걷고 심부름을 보는 정도에 그쳐 있지만 말이다. 은결에 관심을 보이는 열세 살 시호와 준교가 대학에 갈 때까지, 은결은 세탁소의 고요한 삶을 지키고 있다. 아이들과 나눈 대화에서 사실과 소망을 구분하는 방법을 배우고, 인간의 성장을 지켜보며 시간의 흐름을 배운다. 과연 은결은 시호가 내준 과제인 ‘하고 싶다, 하고 싶지만 해야 한다, 하고 싶지만 하지 않는다’를 구분할 수 있을까.
해외 토픽에서 배운 고백을 써 먹고, 오래 곁을 지킨 이웃들을 위로하는 은결의 대응은 경험의 축적에 따른 최적의 결과일까 아니면 인간적인 감정에서 비롯된 것일까. 자신이 떠난 후 남겨질 은결을 염려하는 명정에게 준교가 말한다. 로봇의 감정은 지식의 변형태이며 일종의 전산상 오류가 아니겠느냐고. 다만 은결이 특별하니 은결의 감정도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겠냐고 말이다. 그렇지만 과학적으로 혹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인간의 육감, 그런 예감을 은결이 느낀다는 것도 시스템의 오류라고 할 수 있을까? 명정이 떠난 후, 언젠가 보았던 장면을 홀로 재현하며 충동적으로 무엇을 벌인 결심조차도?
마음을 담아 보낸 씨앗이 화분으로 돌아온 걸 보았을 때, 공기 중을 떠도는 미묘한 분위기를 알아채고 설명할 수는 없지만 어떤 상실감을 느끼는 것…. 잃어버린 기억으로 인해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제대로 알지 못할 은결이 느끼는 통증과 안정감은 진정 인간다운 것이란 무엇일지 생각하게 한다. 그 행동의 여파로 은결은 시간으로부터―인간으로 치면 노화일―선물을 받는다. 그를 향한 변함없는 애정과 함께. 명정의 둘째 아들은 아버지가 생각했던 것 보다 오랜 시간을 꽤 인간답게 살고, 또 염려했던 것 보다 행복한 삶을 살아왔을 것이다. 소설은 아름답다. 담고 있는 시선이 아름답다. 세탁소조차 기계화 공장에 밀리는 시기, 인간과 로봇의 만남에서 피어난 따스함은 오랫동안 생각이 날 듯 하다. 그래, 그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