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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내성적인
최정화 지음 / 창비 / 2016년 2월
평점 :
햇볕이 따스하고 바람이 살랑이는 평온한 오후, 방해받지 않고 편안히 풍경을 눈에 담다 문득 불안해질 때가 있다. 알베르 카뮈는 『안과 겉』에서 이런 체험은 세계와 마주하는 것이라 했다. 모든 것이 제 자리에 있고, 불안해질 이유가 없는데 세상이 무너질 것만 같은 기분. 누구나 한 번 쯤 이러한 불안장애를 겪은 적이 있을 것이다. 최정화의 소설집 『지극히 내성적인』의 등장인물들은 신경과민이나 강박증에서 비롯된 무력함을 보인다. 이들 심리가 불안정해 일상이 낯설어지는 것일까, 아니면 낯설어진 일상이 불안을 불러내는 것일까.
매끄럽게 읽히는 글들에선 묘한 기시감이 느껴진다. (예를 들어 「지극히 내성적인 살인의 경우」에서는 스티븐 킹의 「미저리」) 정확히 무엇이라 꼬집어낼 순 없는데 이야기와 등장인물들의 심리가 그리 낯설지 않다. 그렇다고 완전히 익숙한 것도 아니다. 뜬구름 잡는 것처럼 느껴질 테지만 그래도 표현해보자면, 분위기는 꽤 잡혀 있는데 뭔가를 보여줄 듯 보여주지 않고 있다. 단편들은 한껏 불안함을 유기한 채로 끝맺어 독자에게 의문을 남김으로써 열린 결말을 맺는다. 이런 구조 때문에 보여줄 듯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묵직한 한 방이 없다. 섬세하다...
일상을 비틀어 불안을 뿌려놓았으면 그 감정이 전이될 만도 한데 그런 정도는 아니고, 상황을 관망하는 듯한 화자의 목소리에 따라가게 된다. 이야기들은 세심하게 배치된 것으로 보이지만 이끌림은 부족하다. 「틀니」에서 남편의 결점과 「홍로」에서의 거짓말, 이를 계기로 인물들 간 관계와 심리가 변화하는 장면 묘사가 좋았다. 각 단편들을 이끌어가는 것은 여성들이다. 다시 말하자면 불안과 강박증을 앓고 있는 캐릭터가 여성이란 이야기인데, 읽는 중에 떠오른 것은 왜 여성일까 하는 것이었다.
물론 남성들도 등장한다. 「팜비치」와 「대머리」에서는 주인공이지만 나머지 소설들에서는 대체로 불안을 일으키는 상대를 관찰하는데 머무른다고 할까? 다소 흐릿한 인상을 준다. 「오가닉 코튼 베이브」, 「팜비치」, 「대머리」, 「파란 책」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피상적인 것에 집착하거나 그들의 행위로 판단하게끔 하는, 대상화 되는 면이 있다. 「대머리」와 「홍로」, 「타투」에 등장하는 남성들의 결함 역시 적나라하게 드러나지만... 아직 내가 부족한 탓인지 일독 했을 때 얻은 인상이 오래 간다.
최정화 작가가 장편 소설을 쓴다면 어떤 분위기일까? 장편을 읽고 싶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