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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낙원
헤닝 만켈 지음, 김재성 옮김 / 뮤진트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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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사라진 것에 대한 꿈을 꾸었다. _27쪽


한나 렌스트룀, 한나 룬드마르크, 한나 바즈, 아나 블랑카, 아나 네그라. 모두 한 여인의 이름이다. 아직 스무 살이 채 되지 않은.


한나 렌스트룀은 스웨덴 산간 마을 출신의 소녀다. 열여덟번째 생일을 앞두고 어머니는 독립을 요구한다. 도시의 친척을 찾지 못해 포르스만의 집에 머물렀다 그의 주선으로 호주로 가는 배에 오른다. 선상 요리사 자격으로. 그 곳에서 세 살 연상의 항해사를 만나 식을 올리지만 두 달 후, 열병으로 남편을 잃는다. 남편의 그림자에서 벗어나기 위해 야음 속에 하선한 한나. 한 호텔에 투숙하며 하혈한 그녀는 현지 여성에게 보살핌을 받는다. 정신을 차려보니 그 곳은 매음굴이었다.


바즈라는 포르투갈인이 운영하는 호텔은 포르투갈령 아프리카, 로우렌소 마르케스에 위치한다. 호텔 주인은 백인 간호사를 데려오고, 한나는 그녀에게서 포르투갈어를 배운다. 그리고 이 도시를 양분하는 삶 속에 이질성을 감지한다. 스웨덴 국기를 단 배를 찾던 일을 그만둔 것은 바즈의 청혼을 받아들이고, 그가 선물한 석조 가옥으로 이사한 후부터였다. 부족할 것 없으나 무료한 생활이 시작된다. 바즈는 흑인들을 믿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약이라고 주는 것이 독일 수도 있다고, 그는 예견한대로의 죽음을 맞는다.


고향의 끝없는 겨울에서 벗어난 지 2년도 되지 않아, 한나는 열아홉에 두 남편을 떠나보냈다. 이제 그녀는 스웨덴에서도 부유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유산을 상속받았다. 한나는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어젯밤, 사라진 것에 대한 꿈을 꾸었다.” 누구도 읽을 수 없는 모국어로. 이곳에서 그녀가 견딜 수 없는 것은 침묵이다. 백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는 현지인들, 그들의 긴 침묵 그리고 융화될 수 없는 상하관계. 불안을 동반한 외로움은 여전했다.


한나를 붙든 것은 사건이었다. 흑인 남자를 죽이고 처벌받지 않은 백인들에 분노한 폭동, 거리에는 두려움의 냄새가 퍼져 있었다. 이제 한나는 호텔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면서 여인들에 대한 책임을 느낀다. 그리고 우연히 성공한 포르투갈인 피멘타의 집을 방문했다가 그가 현지처 이사벨에게 살해당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피멘타가 그녀를 속이고 배신했지만 중요한 것은 흑인이 백인을 죽였다는 것이다. 이사벨은 재판 없이 사형당할 것이었다.


한나 바즈, 아니 아나 블랑카는 자신을 에워싼 허위의 세계를 깨닫는다. 흑과 백의 거짓말로 이룩한 세계, 현지인들의 맑은 눈빛을 앗아가고 멸시를 준 백인 사회의 위선의 기저에는 두려움이 있었다. 이사벨의 오빠 모세스는 아나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얘기한다. 백인들이 이곳에 와 자신들을 괴롭히는 이유를 알 수 없노라고. 금과 다이아몬드는 언젠가 바닥날 것이라고.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자신의 욕망을 마음껏 채우는 곳에서 아나는 다짐한다. 가진 모든 것을 이용해 이사벨에게 자유를 주겠노라고.


왜 그녀는 다른 백인들과 달랐을까? 왜 주류 사회에 순응하지 않았을까? 포르스만의 집에 머물 때 자신 역시 가난한 노동자였다는 것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도 모르게 피부색으로 부여받은 우월성을 행사한 날엔 괴로워했다. 그녀는 허위의 세계에 굴복하지 않았다. 자신의 호텔을 떠나 베이라에 도착한 한나는 이곳의 흑인들에게서 다른 것을 발견한다. 가난 속에서도 삶을 희구하는 모습을. 자신이 느꼈던 풍요, 백인 사회의 외로움과 무료함과는 다른 생동감을. ‘지금까지의 시각은 왜곡된 것이었다.’


그녀는 과연 찾으려던 것을 찾을 수 있을까. 글쎄,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단 한 번의 연주를 위해, 6년 동안  낡은 피아노를 조율한 조제처럼 이 모든 일을 목격해야 할 사람이 그녀여야만 했던 것이다. 아나 블랑카이자 아나 네그라. 명명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우리는 진실을 적시할 용기를 가지고 가능성을 희망해야 한다. 1905년, 한나가 머물던 호텔 정원에 나타났다 사라진 놀라운 기쁨처럼.



-로우렌소 마르케스: 오늘날 모잠비크의 수도 마푸토

-모잠비크는 1975년, 포르투갈에서 독립하였다.

-조제는 쇼팽의 곡을 연주했지만 작품명이 나오지 않는다. 목가적인 풍경 속 불안함을 암시하는 줄곧 야상곡 작품번호 48, 1번이 떠올랐다. 그 대목부터 시작하는 유투브 영상(클릭).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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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BBP 2016-01-07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막 끝냈는데, 앵무새죽이기도 생각나더라구요. 표지가 좀 섬뜩하고 맘에 안들어서, 내용까지 우울하게 읽었다는.

에이바 2016-01-07 17:27   좋아요 0 | URL
뭔가 냉정하면서도 아름다운 분위기도 있었어요. 카트린 드뇌브 주연 인도차이나 느낌도 살짝 나고 한나가 성장하는 과정 같은 느낌도 있었어요. 익숙한 곳을 떠나는 행위가 타인의 결정(어머니, 포르스만)에서 자신의 결정으로 바뀌는 것도 그렇고요. 근데 한나가 배움이 일천한데 일기 내용은 상당히 지적인 구석이 있어 의아한 점도 있었고요. 쇼팽이 등장해서 더 반갑고 좋았어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