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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리
나카무라 후미노리 지음, 양윤옥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6월
평점 :
이 책을 처음 손에 들었을 때 ‘참 노골적이다’ 고 생각했다. 제목이 주는 강렬함과 표지의 일러스트가 ‘네가 지금 생각하는 그것’이라고 정확히 가리키고 있는 듯해서 이 소설이 과연 내게 이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기게 될까하고 생각하며 읽기 시작했던 것 같다. 이야기는 소매치기 현장에서 시작된다. 주인공인 소매치기범의 능숙한 행위를 한참을 따라가며 그의 시각에서 본, 행위 중에 느낄 수 있는 오감을 비롯한 모든 감각이 참 상세하고 분방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이 때문에 확실히 흥미롭고 수월하게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솔직히 조금은 두통이 몰려왔다. 그것은 이야기 전반을 흐르는 긴박감이나 암울한 분위기에 나도 모르게 호흡을 맞추게 되었기 때문이라고도 생각해봤지만, 역시 더 큰 원인은 단순히 반복되며 비춰지는 소매치기 행위 자체에 그리고 잠깐씩 끼어들듯 서술되어 있는 주인공의 과거 편린들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내 자신에게 있었다. 단순한 스릴러 장르 문학이 아님을 알면서도, 알기 때문에 더더욱 묘하게도 곧 튀어 나올듯 한 주인공의 과거와 연관된 좀 더 클법한 사건을 기다리고, 또 어느 곳에 접점하나 없는듯 한 주인공에 대해 이해하고 싶어서 문장 사이의 단서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었다. 이야기 속 사건의 긴박감이나 어두운 분위기가 감지되면 어김없이 튀어나오는 골치 아픈 버릇인 것 같다.
기다리던 사건은 성급하지도 그렇다고 지루함을 주지도 않을 속도로 전개된다. 과거의 주인공은 가늠할 수 없는 흑막속의 사람인 ‘기자키’의 지시 아래에 당시 소매치기를 하며 따르던 ‘이시카와’와 거대한 범죄의 말단 부분으로서 강도행위를 하게 된다. 범행 후 함께 달아나기로 했던 ‘이시카와’는 행방불명이 되었고, 현재의 주인공에게 다시 ‘기자키’, 그가 찾아오면서 위험한 냄새가 가득한 일을 맡게 된다.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내가 주목한 점은 단 세 가지 사실이었다. 첫 번째는 소매치기 현장, 범죄의 한가운데 혹은 골목 어귀 어느 곳에서든 불쑥 서술되는 문장들. 안개에 가려져 윤곽만 떠오르는 백일몽 같은 탑. 이와 마찬가지로 첨탑, 높다란 빌딩들, 안테나의 끝, 전신주... 너무나 자주 서술되는 그것들은 전부 높은 곳을 향해 뻗어있는 존재들이었다. 때로는 주인공을 내려 보기도, 그저 절대 가닿을 수 없을 만큼 멀리 있는 존재로 묘사되기도 하지만 중요한 것은 주인공의 마음속에 그 탑은 항상 자신의 눈이 닿는 그 자리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책 말미쯤에 주인공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가 잠깐 나온다. 처음 물건을 훔치면서 보게 된 탑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 탑은 안개에 쌓인 듯 윤곽만이 보일 뿐, 절대 닿을 수 없을 듯하고 자신을 내려다보는 것 같지만 어떤 말도 해주지 않은 채로 항상 아름다운 형상으로 뻗어있다고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그것은 어른이 되면서 보이지 않게 되었다고. 하지만 나는 그 탑이 무의식중에 주인공에게 저마다 다른 모습을 가졌지만 모두 하늘을 향해 뻗어있는 것들로 대체 되었고 그것은 주인공의 심리를 보여줄 수 있는 노골적이면서도 몇 개 안되는 단서라고 생각했다. 끝없이 뻗어있는 탑이 아름다운 형상으로 있기 위해서는 주인공이 그 탑에 닿을 필요도 없고, 닿아서도 안 된다. 훔치는 행위 속에서도 주인공에게 수치심을 준 것은 세상 사람들의 엉터리 같은 규칙에 어긋난다는 시선일 뿐이고 그것이 주인공을 고립시키지만 아래로 추락하는 동안은 그 탑은 아무 말도 없이 아름다운 채로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안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두 번째는 ‘기자키’라는 인물이 들려준 이야기이다. 지상의 모든 쾌락을 즐기고 마지막으로 누릴 수 있는 것은 신이 그러하듯 다른 이의 인생을 기분 껏 조종해 보는 것이란 이야기였다. 실제로 ‘이사카와’와 주인공이 이 자의 손에 조종되고 그 최후가 결정된다. ‘인생이 다 그런 것 아니겠어’라면서. 나와 같이 감정을 느끼고 어찌 보면 한정된 시간 속에서 무기력하게 운명이라던가, 인생이란 것의 조종을 받고 있는 듯한 다른 사람의 인생을 조종해 본다는 것이 항상 그렇지만 말 그대로 무기력하게 생각할 거리를 제공해 주었다.
세 번째는 좀처럼 세상과의 접점이 없는 주인공을 그 접점의 입장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소매치기 일을 하며 따랐던 ‘이시카와’ 그리고 옛 여자인 ‘사에키’, 우연히 관여하게 된 몸을 파는 여자의 아들. 먼저 ‘이시카와’와 ‘사에키’는 추락하는 인물이고 또 그것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 두려워하기도 하는 인물이란 점에서 현재의 주인공과 겹쳐지고, 몸을 파는 여자의 아들은 주인공의 과거의 모습이면서 또한 소매치기라는 행위가 스스로를 고립시킴을 알면서도 어딘가에 접점을 찾고 싶어 하는 주인공의 다분히 인간적인 모습을 드러내준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은 참 전하려는 바가 분명하고, 서술적인 기교와 분위기의 완급조절이 뛰어나다고 생각했다. 이상하게도 이토록 노골적이고 대담한 소설이기에 더더욱 서평이 어려웠다고도 생각한다. 첫머리를 읽던 그 때와는 다르게 그저 이야기가 이끄는 데로 복잡한 생각 없이 푹 빠져서 읽었어도 좋았겠단 생각도 해본다.
마지막으로 소설과는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소매치기란 행위를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은 소매치기 범도, 무기력하게 당하게 되는 사람도, 항상 경계하며 신경을 곤두세우고 살아가는 사람도 모두 다 끝없이 서로를 고립시킨 다는 점에서 참 안타까운 시점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