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 평전
박현모 지음 / 민음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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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평전 ; 말안장 위의 군주

부제가 주는 느낌이 묘하다. ‘말안장 위의 군주…’ 란 글을 읽자마자 근육질의 검은말위에 왕의 위엄성과 함께 지혜로운 용안을 한 정조가 희검은 수염자락을 날리며 앉아 지긋하게 나를 내려본다. 말안장위의 군주란 그런 모습으로 그려진다. 물론 그러한 모습으로 그려지는 상상도가 아주 틀린 것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박현모선생이 그린 ‘말안장 위의 군주’는 그리 쉬이 그려지는 모습이 아니였다. 책속으로 들어갈 수록 그 군주는 조선왕조를 거슬러 오르며, 할아버지 영조의 회한과 아버지 사도세자의 원한, 그리고 노론과 소론, 남인 등 무성한 당파성까지 모두를 아울러야 하는 조선 정치세계의 복잡성과 그로 인해 파생된 격정속에 쓸쓸한 왕의 모습으로 서서히 나타난다.

'말안장에서 내려오지 못한 사람'

첫장에서 작가는 ‘말안장에서 내려오지 못한 사람’이라 말하고 있다. 정조의 생애를 일별해서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그는 ‘평생 말안장에서 내려오지 못한 사람’이었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할아버지 영조와 아버지 사도세자의 팽팽한 대립 속에서 보낸 어린 시절때문인지 눈치의 달인이 되어 있었다라고 표현되고 있다. 실제 정조는 조선의 왕중에서 태조 다음으로 말을 잘 타고 승마를 즐긴 군주였다고 한다. 하지만 평생을 노론세력의 강력한 반발과 끊임없는 주변세력의 정쟁, 왕실과 조정 어느 곳에도 믿고 의지할 곳이 없었던 외로움과 많은 일로 고뇌속에서, 늘 긴장감 속에서 살아야 했던, 말에서 내려올 수 없었던 왕, 정조를 나타내는 중의적 표현이기도 한 것이다.

왕이 되기 전 어린 시절 정조의 이미지는 바로 책벌레이다. 첫돌이 되기도 전에 많은 노리갯감 대신 책만 펴 들고 있었다는 믿기 어려운 구절이 있기도 하다. 유난히 책을 좋아해 고전을 통달하고 정조의 스승 박승원은 어린 정조의 글 읽는 소리가 낭랑하여 금석에서 나오는 것 같다고 표현했으며 할아버지 영조도 어린 손자가 책 읽는 소리를 즐겼다고 한다.

저자는 영조의 위대함을 이렇게 서술했다.‘…이렇게 볼 때 영조의 위대함은 바로 사도세자를 끝내 뒤주에서 꺼내지 않았다는 데 있다. 그가 만약 부자간의 정에 이끌려 뒤주를 열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도 두 사람은 훨씬 더 오랫동안 저주하며 살았거나 거꾸로 자식이 아비를 죽이는 일이 실제로 일어났을지도 모른다.(영조는 그 사건 이후로 14년이나 더 살았다.) 그랬다면 사도세자는 광기에 패륜까지 뒤집어쓴 채 쫓겨났을 것이며, 따라서 ‘정조시대’역시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P60

'감성의 군주'

‘정조에게 생부의 죽음을 목격했다는 것은 정신적 외상(trauma)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다른 사람에게 관대하고 자신에게 엄격한 인격자로 자라났다. 그렇게 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할아버지 영조의 칭찬 교육이 있었다. 앞에서 본 것처럼 영조는 아들 사도세자의 교육에 실패한 이후 손자에게 격려하는 말을 자주 했다.’P61

‘풍부한 감성과 긍정적 사고 역시 정조로 하여금 난관을 딛고 일어서게 하는 저력이었다.’P63

‘그는 자신의 약점이 쉽게 화내는 데 있다고 고백했다. 성질이 나면 사리를 살피지 않고 먼저 화를 내는데, 그러고 나면 화가 더욱 치밀어 일을 도리어 그르치곤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비록 수양하는 공부는 없지만 언제나 이런 점을 경계하고 있다. 어쩌다가 화나는 일을 만나면 반드시 화를 가라앉히고 사리를 살필 방도를 생각하여 하룻밤을 지낸 뒤에야 비로소 일을 처리해 보니 마음을 다스리는 데 일조가 되었다.[일득록]’P64

"물결이 아니라 나루가 있는 곳을 보라."

정조평전은 왕이 되기전 정조의 모습부터, 정조의 죽음과 독살설에 대한 이야기, 사도세자 문제의 딜레마 속에서 정조의 현명한 판단과 국가경영방식, 그리고 끊임없는 이권싸움과 권련에의 의지로 부터 지켜야 했을 종묘사직과 탕평책, 지식경영을 위해 설치한 규장각 그리고 개혁군주로서의 정조와 신해통공 조치 업적 마지막부에서는 중국과의 관계와 서양제국에 대한 쇄국정책까지 두루 기술되어 있다. 책의 이곳 저곳에서 수많은 설과 야사까지 다루고 있어 책읽는 재미가 솔솔하다.

하지만 저자는 정조를 무조건적으로 위대한 군주로만 골라서 기술한 것은 아니다. ‘개혁군주’와 ‘지식경영’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고 신분타파를 통해 소외된 남인에서도 인재를 기용하는 능력도 있었지만, 누굴 상대하든 듣고 수긍하는 군주의 모습보다는 누구나 가르치고 지시하려고 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신하들이 수동적인 자세에 머물고,보다 활발한 토론이나 창의적인 문제 제기가 나오지 않은 것이 당시 중대한 국내외적 변화 추이에 비추어 볼 때 몹시 아쉬운 점이 아닐 수 없다고 지적한다.-P149

소위 음란하고 평탄치 못하여 소설을 금기한 것도, 문화다양성 측면에서는 포용적태도는 아닌 듯싶다. 또한 언론이 당쟁의 빌미를 제공한다고 판단해 언로를 차단했고 하급관료인 아전 관리에는 안일한 태도를 보이기도했고 이는 향후 정조 사후에 조선이 쇠락의 길을 걷게 된 이유로 지적되기도 한다.

정조가 수원화성을 세울 때 신하들이 물었다 한다. “성이 튼튼하면 됐지 왜 아름답게 쌓으려는 겁니까.” 그러자 정조는 “웅장해야 위엄이 생기는 법이다. 불필요한 장식은 제거하고 필요한 것만 설치하도록 해라.” 견고하면서도 단순하게 만드는 것을 우선시한 견고박소(견고박소)라고 저자는 정조의 미적 감각을 규정한다. [가장 심플한 것이 가장 정교한 것이다.]라고 애플의 창업주 스티브잡스가 떠오르는 글귀이다. 단순하기 때문에 친근하고, 친근하기 때문에 시간의 도전을 이겨내며 오래도록 사랑받을 수 있다는 점, 그래서 꼭 필요한 것만 잘 만들어야 한다는 지극히 평범한 진리를 수원화성은 잘 보여 준다.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정자의 다음의 말을 인용했다.

“물결이 아니라 나루가 있는 곳을 보라.”물거품처럼 물결만 뒤쫓다 보면 나루터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게 될 터이니 시야를 높게 해서 다 함께 잘살 수 있는 방법을 찾고 거기에 힘을 모아야 한다고 정조는 수없이 강조한 대목을 소개한다. 정치가들이나 언론들의 졸렬한 행태는 역사를 잘못 배운 데서 나오는 것이며 그들은 대체로 역사를 참여와 겸험의 영역으로 보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때문에(Because of)]의 사고방식을 지적하고 긍정적 사고방식인 [위하여(in order to)]동기를 갖기를 희망한다. ‘위하여’동기를 가진 사람들은 주인의 눈으로 역사를 바라보고, 역사 창고에서 꺼내 쓸 지혜의 연장 찾기에 바쁘다고 한다. 연장을 탓하기보다 비록 낡은 도낏자루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새 도낏자루를 만들 때까지 어쩔 수 없이 그 낡은 도낏자루를 사용해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그것이 우리 역사와 내 삶을 대하는 후회없는’성실’의 태도일 것이다.

2018년12월의 마지막에, 마지막 서평을 ‘정도평전 ; 말안장위의 군주’와 함께해서 행복했다. 완전한 군주는 아니었어도 폭풍속에서 당당하고 위엄있게 그리고 지혜롭게 그 자리를 지켜낸 왕 ‘정조’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다시 한번 정독해야 할 책이다. -라온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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