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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음은 그 자신을 향한 것이고, 인색함은 그의 가난한 이웃에 대한 것이리라. 그런데 예수는 그를, 그의 가난한 이웃이 아니라 하나님께 인색하다고 말한다. 가난한 이웃에게 보인 그의 인색한 어리석음은 결국 하나님을 향한 것으로 귀결된다. 그렇게 인색하게 쌓아 올린 곳간은 ‘오늘 밤’이라 불릴 수 있는 어느 때에든 자신을 찾아오시는 하나님 앞에서, 더 이상 자신의 즐거움을 보장할 수 없는 물거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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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은 아마도 새로운, 예기치 않은 수많은 ‘끼리’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 아닐까? 그렇게 섞일 수 없는 사람들이 ‘끼리’의 관계를 넓혀 가면서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이 구원이 아닐까? 그래서 예수는 성전이 아니라 집에서 구원을 선포한 것이 아닐까? 성전에는 늘 변하지 않는 ‘끼리’들만 있으니 말이다.
구원은 끼리의 변주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끼리의 변주는 결국 경계를 허무는 일이다. "너는 안 돼!"라고 했던 야멸찬 절벽을 넘어서는 것이다. "여기를 넘어설 수 없어!"라는 냉정한 금지를 물거품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것은 절대로 함께할 일 없었던 이들이 함께 둘러앉은 상이 얼마나 복된 구원의 징표인지를 알려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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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예수에게 듣고 싶은 한마디, 예수가 할 것 같은 한 마디는 "밥은 먹었니?"다. 그것은 처진 내 어깨를 도닥거리는 따스한 힘이자 잘잘못으로 평가받는 지친 일상을 뛰어넘는 위로가 될 것 같다. 결국 구원이란 이런 위로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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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시 예수의 식탁을 들여다보니, 거기에 한 문장이 있었다. "밥은 먹었니?" 혹은 "밥이나 먹을까?" 혹은 "밥 잘 먹고 다녀야 한다!" 예수는 아마도 모든 사람에게 반갑게도 그렇게 인사했을 것이다. 누구든 가리지 않고 말이다.
예수의 밥 인사는 간단한 듯하지만,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만약 당시의 사두개인이나 바리새인이었다면 아마도 "제사는 드렸는가?", "정결법을 어기지는 않았는가?", "죄인들과 어울리지는 않았는가?"라고 물었을 테니 말이다. 밥 인사는 일상적이지만 종교적이지 않기에,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는 예수의 입에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런 인사말이 나온다면 진정으로 놀랄 일이다. 밥 인사를 받는 이들에게는 기대하지 않은 위로였기 때문이고, 종교 지도자들에게는 일종의 도전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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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최고일 필요는 없다. 내겐 최고의 친구들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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