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평가하는 개념으로 별점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취향에 가까운가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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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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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은 사람들이 이 소설을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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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크 청춘 3부작
김혜나 지음 / 민음사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소설 정크는 게이이자, 사생아이자, 약쟁이인 성재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김혜나 작가의 전작인 제리를 보지 못해서 뭐라 말할 수는 없겠지만, 이런 극단으로 치닫는 주인공을 두고 ‘루저’ 혹은 ‘루저족’의 이야기라고 부른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주인공 성재의 삶이 유별나다고 느끼지 않았다.

 

 

 물론, 성재의 삶은 줄거리만 보아도 가슴이 콱 막혀왔다. 술집에서 정신이 빠지도록 술을 마시고 집에서 죽은 듯이 자는 노래방 도우미 엄마. 일주일에 두 번, 집으로 돌아와 돈만주고 돌아가는 아버지. 부잣집 여자와 결혼하고 애까지 있는 사랑하는 유부남 애인. 실력은 어느 정도 있지만 취직이 안 돼는 일까지. 또한, 소설 속 에는 비단 성재의 인생만 그렇게 꼬인 것이 아니라 성재의 주변에서 트랜스젠더 유행에 몸을 맡겼다가 결국 바에서 일을 하거나, 약에 취해 죽거나(성재는 그것을 보고 차라리 낫다고 생각했다.) 알바로 근근히 연명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나와 같은 사람뿐이고, 현실은 지지부진 한 성재의 이야기는 바로 내가 알고 있던 모습이었다.

 

 

 

 

 

때로는 자꾸만 화가 났다. 이렇게 노력하는데, 가만히 있는 게 아닌데, 나 자신으로부터, 내가 속한 현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이렇게 노력하고 있는데, 내가 노력한 만큼 나를 봐 주거나 인정해 주며 받아 주는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그럴 때면 곧 이루 말할 수 없는 자괴와 절망이 찾아들었다. 그러나 곧 그와 같은 크기의, 아니 그것을 훨씬 넘어선 크기의 의지와 집념이 불타오르기도 했다. 현실이 고될수록, 잔인하게 등 돌릴수록, 나는 더욱더 커다란 오기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나는 할 수 있었다. 국회의원이 되겠다거나 변호사나 의사처럼 부와 명예, 그리고 권력을 누리는 엄청난 직업을 바라는 게 아니었다. 그저 화장을 하고, 그것으로 취직을 하려는 흔하고 평범한 일이었다. 유명해지려는 것도, 돈을 많이 벌려는 것도 아니었다. 민수 형 같은 사람과의 결혼을 꿈꾸거나, 또 다른 타인에게 기대 살아 보고 싶은 마음도 저버린 지 오래였다. 누구에게도 기대거나 바라지 않고 그저 나 자신으로서의 일에 충실할 수 있도록, 충실해질 수 있도록 내 나름의 직업을 가지고 돈을 벌고 생활을 꾸려 가고 싶은 것뿐이었다.

이게 뭐라고, 뭐 대단한 거라고 문을 열어 주지 않는지, 생각하면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내가, 나로서 살겠다는데, 부조리한 일을 하겠다는 것도 아닌데, 그저 나 하나 건사하고자 하는 일마저도 왜 내 손에는 잡히지 않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분명히 실력이 있었고, 재능도 있었다. 취직만 된다고 하면 메이크업은 물론 판매까지도 얼마든지 잘해 낼 자신이 있었다. 앞으로 꼭 한 달 안에, 나는 분명히 해낼 수 있었다. --- pp.214-215

 

 

 

 

 

 나는 소설을 읽는 내내 성재의 말인지 내 말인지 구분이 안가는 말들을 마주했다. 한 걸음만 더 걸어 나가보아도 이렇게 계속 아르바이트만 하며 살수는 없는 노릇이라는 둥, 이번에 같이 일하는 언니가 스물여섯이라는 말이 계속 들려왔다. 내가 내딛고 있는 현실도 그리 다르지 않았다. 성재가 메이크업 수업을 받는 것처럼 나는 몇 천 만원짜리 졸업장을 만들고 있을 뿐.

 

 우리는 루저라는 말을 유행으로 만들었으며, 우리스스로 남는 인간 = 잉여인간임을 자처한다. 엄친아라는 말이 있었지만, 사실은. 그보다 많은 엄마친구아들이 연락이 끓겨 엄마와 연락이 되지 않는, 혹은 남앞에 내놓기 부끄러운 스펙이라 대화 속에 묻혀버리고 마는 젊음들이 많이 있으리라.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렇게 나에게 현실은, 이 잔혹한 젊음은. 언제부터 한 무리의 루저 집단으로 보였을까.

 

 성재는 결국 소설의 끝에 다다라서 자신이 살아있음을 마주한다. 약도, 잠도, 죽음과 흡사하다고 느꼈던 그 모든 일들이 결국 어렴풋이 죽음을 겪고 나서야 이 죽느니 만도 못한 현실과 크게 다를바 없다는 것을 깨달아서 였을까. 아마 오늘도 내일도 성재(또한 내)가 마음을 다잡는다고 해서 미래가 밝아지진 않을 것이다. 내일의 태양은 다시 뜬다는 말이 무색하도록 변함없이 갑갑하고 무료할 테지만, 그래도 성재는(나는) 여전히 살아있다.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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