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계속해보겠습니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14년 11월
평점 :
가끔 제목만으로도 끌리는 책이 있다. 계속해보겠습니다-라니 무엇을? 누군가의 선언같이 들리는 이 책의 제목이 나를 끌어당겼다. 책속에선 소라와 나나, 나기라는 세명의 인물이 있다. 그들의 어머니인 애자와 순자도 있지만 앞의 세사람이 이야기를 풀어내는 화자로, 중심인물로 등장해 각자의
이야기를 전달한다. 과연 이 중에 누구일까, 설레하며 책장을 넘겼다.
소라는 나나의 언니. 나기는 두 자매의 이웃. 나나는 나기에게 도깨비같은, 그렇지만 사랑스러운 존재. 단순하게 스토리로 보자면 나나가 가장
중심인물이고 소라, 나나, 나기 순으로 이야기를 진행한다. 세사람은 각자의 이름이라는 고유명사에 대한 설명을 앞세우고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소라는 자신의 가족을 소개하고 나나의 임신에 대해 집중하여 이야기 한다. 소라와 애자, 소라와 나나의 이야기가
전부다. 나나나 나기처럼 강하게 연결된 인물은 없지만 셋중에 가장 평범하게 주변인물을 사랑하고 적당히 미워하며 살아가는 인물이다.
나나 역시 나나와 소라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아기 그리고 아기 아버지인 모세, 그리고 나기에
대한 이야기도. 깊은 애정을 지닌다는 것, 엄마가 된다는 것, 가족이 된다는 것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하고 이야기한다, 비록 그 과정이 순탄지는
않더라도. 소설의 제목인 '계속해보겠습니다'를 이야기 중간중간 선언하듯 이야기하는 인물이 바로 나나다. 하고싶은 것이든 하고싶지
않은 것이든 꿋꿋하게 애써보겠다듯이 "계속해보겠습니다"라고 말할때마다 응원해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게 무엇이든. 책 제목을 보고 받았던
첫인상처럼. 꿋꿋하게 하지만 처량하지 않은 태도가 참 멋지다고 생각했다. 나나를 대표로 소설 속 평범한 듯 조금은 독특한
인물들이 완벽하지 못한 상황에서 행복해지기 위해 열심히 애쓰고 있다. 현재를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의 모습이 이렇지 않을까.
나기는 나기와 그에 대한 이야기가 주가 된다. 나나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지만 결국 그로 인해 떠오르는 그의
이야기로 돌아간다. 나나가 그만큼 사랑해주니까 자신도 나나가 사랑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이 그토록 사랑해마지 않는 그 역시
자신을 사랑스럽다고 생각할 순간을 애타게 기다린다. 나기의 사랑은 순애보인 동시에 신파같다. 고전적이지만 고전적이지 않다. 소라와 나나의
이야기와는 좀 다른 분위기를 띄고 있는데 그 때문인지 오히려 더 집중해서 읽었다.
줄거리를 이렇게밖에 쓰지 못하는 이유는 이 소설이 굵직한 몇가지 사건을 제외하고는 인물들의 사유에 치우친 서술을 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 속 시간은 자연스레 흘러가 몇가지 사건을 맞부딪히지만 그 시간을 보내고 있는 각각의 인물은 현실에서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제 자신에 몰입해 생각에 빠져있다. 상황과 동떨어진 듯하지만 절묘하고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인물들의 머리속 사연과 감정은 읽는 이를
단숨에 빨아들인다. 사건과 상황과 대화와 생각이 자유롭게 얽혀있다.
황정은의 소설은 유독 그렇다. 사건을 주로 다루는 소설적 특징을 무시하지는 안되, 짧은 순간 인물의 감정에 너무 깊게 빠지게 만들어서
힘들게한다. 책을 읽은 때나 읽고나서. 누가 박아놓은 것마냥 그저 단순한 문장이었던 몇 줄의 글이 계속해서 생각난다. 자주 반복되서라기보다는 그
상황을 아주 주의깊게 읽었기 때문일 것이다. 매혹당해서. 그래. 황정은의 소설을 읽고 나면 꼭 무언가에 홀린것 같은 기분이다. 뭔가 당한 느낌.
이번에도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