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은 서수경, 김소리, 정진원과 함께 '오늘' 한 집에 모여있다. 주인공의 이름이 나오기 전까지 서로 다른 성을 가진, 관계를 알 수 없는 이들이 각각 어떤 인물들인지 궁금했다. 그들이 모인 그 하루의 이야기로 소설은 시작과 끝을 맺지만, 주인공의 회상으로 '오늘'에 다다르기까지 과거의 개인적이거나 사회적인 사건들을 굵직하게 다루고 있다. 서로에게 분명 좋은 화자이며, 성실한 수신자이자 답신자였을 주인공과 서수경의 많은 대화와 생각을 엿볼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 참 좋았다.
도입 부분을 읽으면서 앞에 실린 소설과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고 느꼈고, 다양한 문학작품과 문인들을 언급하는 주인공의 성격이 낯설었다. 그런데다가 주인공이 살았던 배경이자 현실에서도 실제 있었던 다양한 사건들을 이야기할 때는 중간중간 직접 삽입된 글(주로 기사의 직접인용)의 존재가 그 내용은 물론 글의 형식까지 더 파격적으로 만들었다.
소설 속 '오늘'이 가장 큰 사건들이 이어졌던 2014년부터 2017년을 배경으로 가진다는 점에서 <d>와 같은 시간적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주인공이 각 사건을 직접 겪었거나 가까이서 보았고 시위에 직접 참여하는 등 정치, 사회적인 이슈에 더 적극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에 그 언급과 의견이 더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커다란 사건뿐 아니라 개인이 겪었던, 사회가 고질적으로 가지고 있었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았던 불쾌하고 불편한 단면들도 보여주는 터라 읽으면서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지만 한편으론 이 정도까지 이야기해주니 속이 시원하기도 했다.
모두가 돌아갈 무렵엔 우산이 필요하다.
- <디디의 우산>( 《파씨의 입문》, 2012 )
두 작품 모두 주인공 커플이 참 사랑스러웠고 그들이,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은 참 무거웠다. 황정은의 소설이 늘 내게 그랬듯이 잘 설명하지 못했지만 어떤 대사나 문장에 심장이 덜컥하고 내려앉기도 했고 여러 번 읽으면서 부분 혹은 전체가 주는 여러 가지 해석에 공감하고 골치 아파하기도 하며 이 책을 읽었다. 기대했던 만큼 그저 좋았고, 지난 책들을 들쳐보며 그녀의 문체나 이야기가 점점 더 능숙하게 다듬어졌다는 것도 느꼈다. 작가의 솜씨도, 이야기도, 이야기 속 인물들의 매력도 농도가 진해졌다고 해야 하나, 정말 헤어 나오질 못하겠다. 서평을 쓰면서 부러 여러 번 책을 읽었는데도, 아직도 황정은의 소설이 더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