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디의 우산 - 황정은 연작소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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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읽은 황정은의 소설은 여전히 매혹적이었고, 한층 더 가까운 현실을 담아내고 있었다. '누군가의 죽음 외에는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는 2014년 이후, 작가는 자신의 단편 소설<디디의 우산>을 파괴해 <d>를 쓰고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를 썼다고 한다(작가의 말 中). 이렇게 쓰인 두 중편을 모아 이번 소설집 《디디의 우산》이 출간되었다. 두 소설의 전신이 되었던 작품에서 동창이자 연인이었던 디디와 도도는 dd와 d가 되었고, <d>에서는 이제 혼자 남은 d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d>

​d는 dd를 잃고 조금 차가워진 자신 때문에 미적지근한 온도를 띠고 있는 사물들에 진저리를 친다. 이런 묘한 증상과 더불어 누군가를 잃은 한 사람이 겪을 법한 모든 일을 겪어내는 d의 모습에 순간순간 함께 울컥하고 울적해지기도 했다. 단호하고 시니컬한 d의 생각과 감정에 휘둘리고 공감하며 읽었다. 내동댕이쳐졌다고 표현한 dd의 죽음처럼 2014년 세월호 사건으로 우리는 그 누구도 도와주지 못한 커다란 죽음을 목격했다. 이 소설에서 이 사건은 주인공이 직접적으로 관련되거나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한 장면의 배경으로 등장한다. d와 박조배가 명동에서 만나 집으로 돌아가려 할 때 1주기 추모와 시위로 인해 시위대와 경찰들에 길이 막혀 서울 일대를 빙빙 돌게 된다. dd의 죽음과 세월호 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 dd의 짐에서 나온 REVOLUTION이라 적힌 책과 시위 행렬 같은  단서들이 보이지 않는 점선으로 이어진 것 같았다.

디디와 살던 방의 세를 받던 김귀자, 디의 부모님인 이승근과 고경자, 디디의 형제 곽정은, 세운상가에서 스피커와 램프를 수리하는 여소녀, 디디에게 책을 빌려주었던 동창 박조배처럼 소설 속의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구체적인 이름을 갖는다.(다만 이름보단 마치 이니셜 같은 d와 dd만이 예외다.) dd의 죽음을 겪고 한 사람의 생명과 죽음이 하찮다고 읊조리는 d지만, 그렇다 해도 개인과 개인이 가진 생명은 그들이 각자 가진 이름과 삶처럼 하나하나가 특별하다는 걸 말해주는 것 같았다. 여소녀와 d의 대화 중 너의 오디오가 이제는좀 특별해졌느냐는 여소녀의 질문이 기억에 남는다. 언제 사라질지 모를 하찮은 생이라도 서로의 시간과 애정을 겹치면서 특별해질 수 있기에.

잘 가.

어두컴컴한 목공소 앞에서 d는 말했다.

dd는 d의 우산을 쓰고 집으로 갔다.    - <d>, 본문 중 10p

잘 가.

배웅하는 dd에게 손을 흔들어 보인 뒤,

d는 dd의 우산을 쓰고 집으로 갔다.     -<d>, 본문 중 16p

책의 절반, 이 한 편의 중편소설을 읽고 나서 나는 잠시 다른 책들을 꺼내 읽었다. 《웃는 남자》(제11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아무도 아닌》,《파씨의 입문》을 꺼내 디디의 흔적을 찾아가는 과정과 작품들을 소소히 비교해 보는 것이 꽤 재미있었다. dd를 잃은 d의 마음에 쭉 빠져있었기 때문인지, 《파씨의 입문》에 수록된 <디디의 우산>에서 아직 무사했던 디디의 시점을 읽을 땐 마음이 편안해졌다고 해야 할지, 조금 행복해졌다. 《아무도 아닌》에 수록된 <웃는 남자>에서 아무도 나를 구하러 오지 않을 것임으로 스스로 나가야 할 것을 생각'만' 하고 있던 도도가 d가 되어 드디어 발을 떼었다고 생각하니 그것도 조금 다행이라 여겨졌다.   ​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

오늘은 어떻게 기억될까. -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 , 본문 중 310P

주인공은 서수경, 김소리, 정진원과 함께 '오늘' 한 집에 모여있다. 주인공의 이름이 나오기 전까지 서로 다른 성을 가진, 관계를 알 수 없는 이들이 각각 어떤 인물들인지 궁금했다. 그들이 모인 그 하루의 이야기로 소설은 시작과 끝을 맺지만, 주인공의 회상으로 '오늘'에 다다르기까지 과거의 개인적이거나 사회적인 사건들을 굵직하게 다루고 있다. 서로에게 분명 좋은 화자이며, 성실한 수신자이자 답신자였을 주인공과 서수경의 많은 대화와 생각을 엿볼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 참 좋았다.

​도입 부분을 읽으면서 앞에 실린 소설과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고 느꼈고, 다양한 문학작품과 문인들을 언급하는 주인공의 성격이 낯설었다. 그런데다가 주인공이 살았던 배경이자 현실에서도 실제 있었던 다양한 사건들을 이야기할 때는 중간중간 직접 삽입된 글(주로 기사의 직접인용)의 존재가 그 내용은 물론 글의 형식까지 더 파격적으로 만들었다. 

소설 속 '오늘'이 가장 큰 사건들이 이어졌던 2014년부터 2017년을 배경으로 가진다는 점에서 <d>와 같은 시간적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주인공이 각 사건을 직접 겪었거나 가까이서 보았고 시위에 직접 참여하는 등 정치, 사회적인 이슈에 더 적극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에 그 언급과 의견이 더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커다란 사건뿐 아니라 개인이 겪었던, 사회가 고질적으로 가지고 있었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았던 불쾌하고 불편한 단면들도 보여주는 터라 읽으면서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지만 한편으론 이 정도까지 이야기해주니 속이 시원하기도 했다.

 

 

 모두가 돌아갈 무렵엔 우산이 필요하다. 

- <디디의 우산>( 《파씨의 입문》, 2012 )

 

 

두 작품 모두 주인공 커플이 참 사랑스러웠고 그들이,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은 참 무거웠다. 황정은의 소설이 늘 내게 그랬듯이 잘 설명하지 못했지만 어떤 대사나 문장에 심장이 덜컥하고 내려앉기도 했고 여러 번 읽으면서 부분 혹은 전체가 주는 여러 가지 해석에 공감하고 골치 아파하기도 하며 이 책을 읽었다. 기대했던 만큼 그저 좋았고, 지난 책들을 들쳐보며 그녀의 문체나 이야기가 점점 더 능숙하게 다듬어졌다는 것도 느꼈다. 작가의 솜씨도, 이야기도, 이야기 속 인물들의 매력도 농도가 진해졌다고 해야 하나, 정말 헤어 나오질 못하겠다. 서평을 쓰면서 부러 여러 번 책을 읽었는데도, 아직도 황정은의 소설이 더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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