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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포털에 ‘소액 금융 대출’이라고 검색하니 많은 대부업체들이 약속이라도 하듯, 명함을 내밀었다.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일은 역사를 생각지 않아도 될 만큼 오래 되었으리라. 지금까지도 인류가 이 사업에서 그 명맥을 잇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오늘 다루고자 하는 분야는 보통의 대출은 아니다. 목적과 대상이 상이하다.
“소액 금융의 기본 개념은 몹시 매력적이다. 이 부문 전문가에게 소액 금융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아마 다음과 같은 훈훈한 얘기를 들려줄 것이다. 개발 도상국의 허름한 오두막에 사는 여성이 소액 대출을 받아 생산적인 자산(재봉틀, 염소 등)을 마련한다. 그리고 그 자산을 토대로 열심히 일해서 소규모 자영업을 일군 후 그 사업 덕분에 더 큰 금액을 대출받아 마침내 가난에서 벗어난다고 말이다.”(29쪽)
책 ‘빈곤을 착취하다’는 소액 금융(마이크로크레딧)의 암(暗)을 보여주고 있다. 요즘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분야다. 아이스버킷챌린지를 하듯, 달아오른 소액 대출의 얼굴에 찬물을 끼얹는 이 책 한 권. 내부 고발자를 자청한 그는 휴 싱클레어다.
“내부 고발자들이 겪는 가장 근본적인 어려움은, 정확한 정보를 갖고 있고 그것을 이해관계자, 심지어 피해자에게 보여 준다고 해도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이해관계자나 피해자들은 행동할 만한 ‘동기’가 있어야 움직인다. 펀드들이 우리의 노고에 감사하고, 라포에 영업 개선을 요구하거나 투자를 회수하고,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게끔 프로세스를 정비하리라고 믿었던 것은 우리가 순진했던 탓이다.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266~267쪽)
그는 내부 고발자다. 서민을 위한 대출로만 포장됐던 소액 금융의 실체를 낱낱이 밝히고 있다. 물론, 개발 도상국의 저소득층 경제활동을 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자본을 지원하여 자립하도록 하자는 ‘소액 금융’의 취지를 전부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업체에서 너무 높은 세율로 이자를 걷고 있고, 누구도 그것에 대해 문제 제기하지 않는 현실은 간과할 수 없는 일이다.
2006년 노벨평화상의 주인공은 ‘무함마드 유누스’와 그라민 은행이었다. 당시론 앞서 소개했던 획기적인 소액 금융 대출 방식으로 높은 원금 회수율을 기록했다. 그러면서 베이컨이 말한 ‘극장의 우상’이 덧씌워졌다. 유누스라면(나도 그랬다.), 그라민 은행이라면 서민을 위한 ‘좋은 일’을 하고 있을 거라고 짐작하기 쉽다. 노벨상을 받았으니까.
그러나 유누스와 그라민재단 USA는 휴가 꼬집고 있는 슈바프재단의 각각 이사회 구성원과 주요 투자자였음이 밝혀졌다. 단순히 우연의 일치는 아닐 것이다. 고 이율로 잇속을 챙기고 있는 기업에 대해 눈을 감고 있는 것일까. 그들 스스로가 이미 소액 금융 권력(일종의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참고로, 유누스와 그라민재단이 참여하고 있는 업체의 대출 이자율은 126%에 이른다.
“근본적인 싸움은 가난한 사람들을 빈곤에서 구하기 위한 것입니다. 제 생각에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은 ASN노비브펀드에 맡긴 돈이 좋은 일에 쓰이고 있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라포가 가난한 나이지리아 여성들에게 물리는 실제 비용을 살펴보면 모든 비용을 고려할 때 연간 110퍼센트가 넘습니다. (중략) 이 정도의 이자율로도 정말로 빈곤이 완화될 수 있는 겁니까?”(248쪽)
이자율에 대한 논의는 왜 내버려 둔걸까. 일찍이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에 인도적 차원에서의 도움을 ‘자립 가능한, 지속 가능한 형태’로 제공한다고 했던 약속이 여기서 또 한 번 깨지고 있다. 그들은 그들 스스로 보고 싶은 것을 보려고 했던 건 아닐까. 돕고 싶은 것을 도우려고 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그들이 필요로 하고 현실적으로 갚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보려는 시도가 있었던 걸까.
기본적으로 자립하기 위해서, 지속 가능한 형태로 지원해주려면 이자율에 대한 논의가 선행되어야 했다. 이를 불필요한 세부사항(226쪽)정도로 여긴다면 그 효과는 딱 그 정도에서 머물게 된다. 진정한 의미의 도움이 아니란 것이다.
소액 금융의 전제로 다시 돌아 가보자. 그들은 창업, 경제활동을 하기 위해 필요한 돈을 대출해준다고 했다. 하지만 전체 소액 금융 대출 중 소비성 대출이 오히려 50~90퍼센트를 차지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를 언급하지 않으려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비로소, “소액 금융의 전제는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훌륭한 투자 기회가 있지만 자본이 없기 때문에 그런 기회를 활용하지 못한다는 것이다.(50쪽)”는 말이 무색해진 것이다.
무엇을 위한 소액 금융이었나. 그리고 누구를 위한 소액 금융인가. 자문해볼 때다.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준 휴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