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요 미메시스 그래픽노블
크레이그 톰슨 지음, 박여영 옮김 / 미메시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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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소위 '대야', '다라이'라고 부르던 갈색의 통에서 뜨거운 물을 받아 목욕할 때가 있었다. 어쩌면 '본격 아파트'의 시대 이전, 골목 이곳저곳을 뛰어놀며 누비던 유년의 기억을 가진 이들은 비슷한 경험들을 갖고 있지 않을까 생각도 해본다. 겨울철, 그 좁은 부엌 가운데서 그렇게 목욕을 하고 수건으로 젖은 몸을 닦아낼 때 스며드는 한기는, 본능적으로 가장 따뜻한 곳으로 나를 달려가게 했다. 어쩌면 물기가 채 닦아내지 않았음에도 견딜 수 없는 지금에서 도망치기 위해 달려야만 했던 곳, 그곳이 바로 크고 두껍고 무거운, 그리고 무엇보다 따뜻하고 부드러웠던 담요 속 이었다.

 

 

주인공 크레이그의 유년은 조금은 가련하게 펼쳐진다. 집에서는 권위적인 부모님에게, 학교에서는 친구들에게 따롤림을 당하기 일쑤다. 기독교를 믿는 집안, 그리고 똑같이 기독교를 믿고 그런 학교였음에도 아랑 곳 않는 친구들의 따돌림과 험상궂은 장난들은 가끔은 회의감을 들게 했다. 그런 그에게 집에서 동생과 보내는 시간은 어쩌면 오아시스와 같았을지도 모른다. 때로는 서로가 짖궃은 장난을 하기도 하지만, 무한한 상상력을 펼치며, 서로가 자신들만의 왕국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작은 방, 그 안에서도 침대 위의 담요 안과 밖은 작은 아이가 생의 전부처럼 느꼈을 매서운 바람들 속에서 따뜻한 안식처가 되기에 충분했다.

 

 

그런 그가 훌쩍 자라 레이나 라는 자신의 뮤즈를 만나고부터 삶은 변화한다. 너무나 과분해서 때로는 그녀와 함께하는게 비현실적이고, 죄악으로 느껴질 정도로, 아름다웠던 그녀의 존재는, 그에게 그때까지와는 다른 괴로운 마음과 고민들을 안겨줄때도 있지만, 그에게 새로운 담요로써 더할 나위 없는 따뜻한 안식처였다.

 

 

레이라 로 모습을 바꾼, 그 새로운 담요 안에서의 안정과, 더 깊이 그것을 끌어당기고자 하는 본능은, 그동안 줄곧 배워왔더 기독교의 배움과 때로는 배치되어, 그에게 많은 혼란을 주지만, 그는 무엇보다, 누군가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이 사랑하는 품 안에서 따뜻할 수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그렇게 사랑했던 그녀가 주었던 가장 소중한 선물 또한 그녀가 손수 한땀한땀 만들었던 담요였으니깐.

 

 

방학동안 그녀와 함께 했던, 그동안 알지 못했던 눈부시고 따뜻했던 행복이었기에 더 짧았던 시간은 결국 지나가고, 너무도 멀리 떨어진 거리속에, 각자가 짊어져야할 각자의 삶의 무게로 인해 그들은 시간이 지나, 서로에게 안녕을 이야기 하게 된다. 더 이상 서로의 따뜻한 품을 담요로 두고 살아갈 수 만은 없었다. 그럼에도, 비극적인 결말의 희미한 온도가 될 수도 있었을 그때의 한 순간, 아주 중요한 것을 가르쳐준 서로의 존재는 시간이 지난 후에 온전하게 흘려보낼 수 있게 된다. 그럼으로써 생의 한순간을 따뜻하게 데워주었던 그 순간은 비로소, 그 소중함이 결코 식지 않은 따뜻한 담요의 품같은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 있었다.

 

 

 

예술만화로 시리즈로 출간된 '담요'는 특히 크레이그가 레이나와 함께한 시간을 묘사하는 부분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실제 작가 자신의 이야기 였기 때문일까, 마치 레이나라는 그녀 삶 언젠가의 뮤즈에 대해서 헌사처럼도 여겨질 정도로 말이다. 자신의 뮤즈를 찾아낸다는 것, 그리고 그 존재가 비록 한때나마 자신의 삶을 따뜻하게 해주었던 사실에 대해 작가는 무척 아름답고, 섬세하게 추억한다. 레이나라는 뮤즈가 그 자신에게 선사했던 모든 아름다움에 대한 더할나위 없이 사랑스러운 묘사는, 그 청춘을 아름답게 칠해주었던 뮤즈라는 존재에 대해, 그리고 그렇게 누군가의 뮤즈가 될 수 있는 사실에 대해 행복한 상상, 혹은 추억할 수 있게 인도해준다.

 

 

누구나 크건 작건, 담요가 됐든 아니든 유년시절 혹은 학창시절, 이제는 아무것도 아닐 공포와 불안 속에서 자신을 감싸주었던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성인이라고 부를만한 나이가 되었을때에 그것은 아주 먼 얘기처럼 치부되어 버린다. 여전히 그런 따뜻한 곳을 그리워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하지만 그런 작은 기억의 따뜻함이, 마치 성냥팔이 소녀가 켜는 작은 성냥 하나의 따뜻함일지도 모르나, 그것을 계속 켜나가며 살아나가는 것이 삶의 모습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다 자란 후에 바라보는, 유년의, 학창시절의 따뜻한 품이 이제는 너무 작게만 보일지라도, 그것들이 삶의 한 순간을 온전히 버티게 해주었 듯, 우리가 그 약하고 불안했던 그 순간을 따뜻하게 돌아보는 것은 성인이 된 이에게 주는 따뜻한 담요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용된 이미지의 저작권은 작가와 출판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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