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난자들 - 남과 북,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이들에 관하여
주승현 지음 / 생각의힘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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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로 한국에서 살아본 이들의 경험에 대한 목소리를 책을 통해 접할 수 있었던 기회가 없었기에 '조난자들'은 반갑기 그지 없었다. 이 책을 통해 저자의 정착경험에 대한 좌절과 성공, 남한사회에 대한 실망과 비판을 진솔하게 들을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계속 드는 생각이 있었다. 첫째, 한국에 온지 10년이 넘었고 대학 강단에서 통일을 강의하는 저자도 이겨내기 힘든 탈북민들에 대한 차별과 냉대가 한국사회에 깊게 뿌리박고 있다는 것. 둘째, 진정으로 평화롭고 성공적인 통일을 위해서는 '먼저 온 통일'이라 불리는 탈북민들에 대한 포용과 그들과 함께 연합하는 과정이 축적되어야 한다는 것.

북한 사람들은 한국에만 가면 자유롭고 배부르게 살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품고 자유에 대한 억압과 굶주림이 일상이 되어버린 북한을 탈출한다. 설령 더 나은 삶을 향한 당연한 희망을 쫓는 과정에 목숨을 잃는다고 할찌라도 그들의 '한국행'은 멈추지 않는다.

자유를 억압하는 북한을 벗어나 남한에 온 북한사람들은 엄청난 행운을 누리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있던 나는 '북한도 틀리고 남한도 틀리다'라는 저자의 의견에 쉽게 동의할 수 없었다. 하지만, 희망을 품고 온 탈북민들을 좌절하게 만드는 탈북민들에 대한 차별과 무관심이 팽배한 한국사회의 민낯을 마주하고서는 달리 할말이 없었다. 어떤 이들은 한국에 온 탈북민들은 자유를 얻게 되고 굶주림은 피할 수 있으니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적인 삶'은 자유와 먹을 것을 얻는다고 충족되는 게 아니다. 우리 사회는 같은 대한민국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탈북민들을 '북한출신'이라는 이유로 차별할 뿐 아니라 냉대와 무관심으로 대한다. 경쟁만 강조하는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전반적으로 공동체 의식이 약해졌고, 특히 경제적으로 낙후한 북한에서 온 탈북자들에 대한 우월의식이 우리 안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인식은 워낙 우리 사회에 깊게 뿌리내려서 쉽게 변하지 않을 것처럼 느껴진다.

저자는 북한에서 도라산역의 착공와 완공을 지켜볼 수 있었던 초소에서 심리전 방송요원으로 근무하다가 비무장지대를 통해 탈북했다. 대학 강단에서 통일을 가르치고 있는 저자에게도 차별과 냉대의 벽은 여전히 굳건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책에서 탈북민에 대한 한국사회 부정적인 인식과 태도로 인해 탈북민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외로움과 좌절, 더 나아가 이로 인한 탈선과 극단적 선택을 다양한 실제 사례를 들어 알려준다. 충격적이기도 한 이런 이야기들은 한국 사회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반드시 귀담아 들어야 하는 이야기이다. 북한에도, 남한에도 속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표류하는 탈북민들을 저자는 조난자라고 부른다. 조난자들은 북한에서 넘어왔지만 간첩으로 몰려 사형을 당했던 탈북민, 독일 유학 중 윤이상의 권유에 북한으로 넘어갔다가 현실에 환멸을 느끼고 탈북하였지만 여전히 가족을 만나지 못한채 살아가는 오길남 박사, 통일의 비전을 가지고 한국으로 귀순했지만 한국의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제대로 활동도 하지 못한 채 숨을 거둔 황장엽 전 노동당비서 등 한반도 분단의 희생자도 포함한다.

탈북민들에게 더 열린 마음으로 존중을 해달라는 말을 탈북민인 저자가 하기도 어려웠을 것이지만, 이 책을 통해 한국사회가 탈북민들을 좀더 포용할 수 있는 방법과 탈북민정착제도에 대한 제언도 곁들였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든다.

탈북민들은 북한에서의 역경을 딛고 목숨을 걸고 한국에 자유를 찾으러 온 사람들이다. 탈북 과정 중에 수많은 고비들을 넘어 한국에 무사히 온 이들은 '기적'을 경험했다고 말한다. 외부세계와의 접촉을 차단시키기 위해서 북한은 중국으로 넘어가는 주민들을 그 자리에서 총살한다. 행여나 가까스로 중국에 넘어왔다고 해도 탈북민을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고 북한 정권에 동조하는 중국정부는 탈북민들을 찾아내 강제송환 시킨다. 강제송환을 당한 북한사람들은 보위부, 안전부와 같은 조사시설에서 구타와 고문을 당하고, 단련대나 교화소로 옮겨져 비인간적인 환경에서 강도 높은 노동을 강제받는다. 이런 곳에서는 영양실조와 강제노동으로 인한 사망 그리고 자살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인신매매로 중국에 팔려간 북한여성들은 강제송환을 두려워하며 차별적인 대우와 폭력에도 저항하지 못하고 조용히 살아간다. 그 뿐아니다. 영화 <크로싱>에도 나왔듯이 한국에 가기 위해 광활한 고비사막을 건너다가 길을 찾지 못하고 탈진으로 쓰러져 백골이 된 이들도 셀 수 없다. 또다른 탈북루트에서 종착점인 태국으로 가기 위해 메콩강을 건너다가 강에 빠져 악어에게 먹힌 이들의 이야기도 들린다.

탈북민들은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을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더 나은 삶을 꿈꾸며 '남조선'으로 온다. 우리는 생명을 건 여정을 선택한 그들의 용기와 기적을 경험한 그들의 삶을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된다. 그들이 보고, 듣고, 경험한 이야기들에 귀를 기울이고, 분단된 한반도의 현실을 마주하며 좀더 나은 미래를 함께 꿈꿔나가야 한다. 그 첫출발은 "한국에 잘 왔습니다!”라며 맞아주는 것이다. 그리고 열린 마음으로 탈북민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그들의 삶에 대한 존중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한발짝 더 나아가, 가족도 친구도 없이 완전히 새로운 곳에서 살아가야 하는 어려움을 이해하고 정착을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우리에게 통일은 선택이 아니라 언젠가 필연적으로 주어질 것이다. 정치적 통합을 넘어 사회적 통합이 진정한 통일을 이룬다는 것을 기억하고 한국에 들어온 탈북민들에 대한 존중과 포용을 통해 함께 성장해나가는 경험을 축적해야 한다. 탈북민들이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분단된 한반도의 조난자가 아니라 두 체제를 살아본 경험을 바탕으로 한반도 통일의 주역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어야 한다.

"저쪽에서 살았던 시간과 이곳에 와서 살아남고자 버둥거렸던 노력이 다시 합쳐지면 언젠가 저곳에 닿을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하다 보면 저자의 바람처럼 언젠가 통일의 그날에 닿을 것이다.
우리가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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