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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혜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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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이 났다.  이 구멍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인간이 자기합리화를 하는 생물이라는 점에서부터일까? 아니면,  늘 스스로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밖에 없기 때문일까. 누구를 위한다는 생각도, 자기 입장에서 이루어지고, 내 감정에 충실할 때는 더더욱, 다른 사람의 마음은 쉽사리 잊혀진다. 그것이 요즘 슬프다. 이 소설을 읽고 나서, 나는 마음이 슬프고 쓰라렸다. 타자를 이해한다는 것, 사랑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하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고, 대답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사랑이란 무엇일까 하는 질문에, 오기라는 등장인물을 내세워 답하게 한다. 자아라는 껍질을 벗지 못하고, 상대를 받아들이려는 노력을 해본 적이 없는 오기는, 늘 자신의 입장에서 상대를 파악한다. 그러므로 상대가 왜 그런 의도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자기합리화를 잘 하는 사람이라고 봐야 할까? 어쩌면 자신의 마음을 객관화하여 바라보지 못한다고 봐야 할까. 아니면 자신이 느낀 것들에 섬세하지 못하다고 봐야 할까. 그가 살면서 누굴 얼마나 사랑했건 간에, 상대가 왜 이 말을 하는지 고민하고, 자신이 왜 이렇게 행동하는지 고민했으면, 그가 처한 상황까지 치닫지 않았을 것 같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인간은 자기중심적일 수밖에 없다. 자신을 위해야 한다. 누구도 대신 자신을 책임질 수 없다. 우선 개인은 철저히 개인이어야 한다. 그 이후에 소통을 하여 조율해나가야 한다.  자기 감정을 잘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남을 배려할 수는 없는 법이다. 다른 사람의 맥락을 이해하려면, 자신의 맥락도 철저하게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아내가 처음 오기와 J와의 관계를 의심했을 때, J를 쳐다보는 오기의 눈빛을 보고 그렇게 생각했듯이, 오기가 스스로를 합리화하려고 하지 않았거나, 자신의 감정이 어떤 흐름을 가지고 있는지 되돌아보고, 아내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면, 아내와의 관계가 이렇게 악화일로로 치닫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우는 아내를 보며 오기는 웃었다. 이게 슬픈가. 겨우 이런 얘기로 우네. 아내가 이렇게 감상적이었나. 이해할 순 없지만 사랑스러웠기 때문에 달래고 싶었다. 우리는 무사할 테고, 어떤 일이 있어도 저 너머로 홀로 가지 않겠다고 얘기했다. 허튼 약속 없이, 섣부른 이해 없이 아내를 슬픔에서 천천히 건너오게 하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은 나중에야 들었다. 오기는 미래의 슬픔을 이미 겪은 듯한 아내를 가만히 안아주었고 울음이 서서히 잦아들다가 그쳐가는걸 지켜봤다.

깊고 어두운 구멍에 누워 있다고 해서 오기가 아내의 슬픔을 알게 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이 아내를 조금도 달래지 못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아내가 눈물을 거둔 것은 그저 그럴 때가 되어서였지, 더 이상 슬프지 않아서는 아니었다.

오기는 비로소 울었다. 아내의 슬픔 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그럴 때가 되어서였다.” 

편혜영, \<\<홀\>\>p208-209


소설의 마지막부분에서, 우는 아내를 보면서 오기가 슬픔에 함께 잠기지 않고, ‘겨우’라고 판단했던 것은 오기가 오기의 입장에서 아내를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함께 슬픔에 잠기는 것만 정답은 아니다. 오기는 오기로서 있되, 아내의 마음에도 공감하는 상태에 균형을 잡고 서 있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오기는 비로소 울었다. 아내의 슬픔 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그럴 때가 되어서였다.’라는 문장을 보면서는, 개인은 영영, 개인일 수밖에 없는 게 아닌가. 우리가 소통이라 말하는 것들도 사실은 각자 각자의 슬픔으로 치환하여 생각한 것일 뿐. 상대의 슬픔 그 자체를 이해한 적은 한 번도 없지 않나. 결국 각자는 따로일 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소통을 잘 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작업인지 또 다시 생각했다.  교육기관에서 이런 것을 교육한다면, 사회생활이 조금 더 수월해질까?

소설은 처음에는 오기의 입장에서 평온하고 선한 이야기가 나오다가, 점차 진실이 밝혀지는 형식으로 쓰여져 있다. 자아가 왜곡한 현상을 보여주고, 그것들이 가리키는 진실의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러므로, 작가가 이런 화법을 써서 소설을 전개한 것은, 오기가 대표하는 인간의 자기합리화 성향을 폭로하려고 했다고 볼 수 있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너무 여러번 말해지고, 앞으로도 당분간 계속 말해질 이야기다. 소재가 신선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읽고 나서 현실 상황이 암담하다고 생각하게 될 정도로 마음이 공허해졌다.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는 것만으로도, 이 소설은 잘 쓰여진 소설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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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08 20: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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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09 20: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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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09 20: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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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0 14: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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