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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
천명관 지음 / 창비 / 2014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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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는 한 달 전에 읽었는데, 책장을 넘기면 내용이 다시 생생하게 내게 다가온다. 마음 깊숙히 숨겨둔 감정을 끌어올리는 좋은 책이다. 그런데 막상 리뷰를 쓰려니 뭐라고 서두를 써야 할 지 모르겠다. 과장되지 않은 문장으로 탄탄한 서사를 메꾸었다. 라는 말은 이 소설을 표현하기엔 불충분하다. 시적이고 아름다운 문장으로서 기억에 남았던 것도 아니고, 독특한 서사로서 기억에 남는 것도 아니며, 사유로서 기억에 남는 것도 아니라 미묘하다. 


읽으면서 위로가 되었다는 것을 특징으로 꼽아야 하련지도 모르겠다. 소설이 이야기하고 있는 지점은 각박하고 우울한 지금이며, 주인공이 소설 안에서 무언가 해방될 수 있는 지점을 찾은 것도 아니다. 아마도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역시 지금을 사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비슷할 것 같은 내일을 마주할 것 같다. 그래서 카타르시스도 없지만 소설과 삶이 별개로 갈라져버리지도 않는다. 대리만족을 하게 만듦으로서 값싼 위로를 행하는 것도 아닌데 이 소설집을 엮은 이야기꾼이 왜 위로를 한다고 느낀 걸까?


나는 이 책을 통해 세상에 살고 있는 누군가의 고통을 본다. 그들의 고통은 극적으로 해방되지 않을 것이다. 사회가 쉽게 바뀌지도 않을 것이고, 그들은 사회가 변하기를 바란적도 없다. 애초 ‘사회가 변한다’는 개념도 후대에 와서 역사가들이 ‘변화하는 사회’라는 것을 기점으로 정리한 까닭에 사회가 변화하였다고 ‘믿는’것인지도 몰랐다. 게다가 ‘사회’라는 것은 얼마나 불분명한 것인지 눈에 보이지도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지만 누군가는 사회에 대해 논평을 하고 변혁을 꿈꾼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무엇을 통해 변할 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사회’라 지칭되는 추상적인 것들을 신경쓰지 않는다. 각기 개인적인 고민들을 치열하게 하면서 어떻게든 암담한 현실을 하루라도 살아낸다. 그리고 각기 가진 작은 고민들에 대한 그 순간만을 위한 답을 찾아내고 앞으로도 수없이 닥쳐올 것들에 대해 미리 고민하지 않는다. 그들은 소설의 마지막에서 ‘순간’을 겨우 넘겼을 뿐이다.


어쩌면 ‘순간’을 겨우 넘긴 인물들의 삶이 나의 삶을 닮았기에 ‘위로’를 받았는지도 모른다. 이야기꾼이 그들의 고통을 처절하게 다루지 않았기에, 독자로서 그들의 고통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었던 것도 ‘위로’에 한 몫을 했는지도 모른다. 아무리 끔찍하게 보이는 일도 ‘순간’과 ‘순간’을 넘기면 어느새 다른 해방감이 있기라도 할 듯, 소설은 끝이 난다. 무사히 ‘순간’이라도 넘겼기에 작은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순간’을 넘기면 지금의 고민이 해결될 지도 모른다.라는 문장은 당연한 공식처럼 내 일상을 위로해왔다. 정말 그런지는 어떤 일이 지나고 나야 안다. 그렇게 따져보면 고민이 해결되었던 적도 있고 그렇지 않았던 적도 있다. 지금의 믿음이라는 것은 과거의 경험으로 빗대어 살피면  추측하려는 시도가 무안하게도 쉽게 하찮아진다. 하찮아지지 않기를 ‘지금’ 바라고 있을 뿐이다. ‘바란다’는 것은 ‘영원’과 ‘완벽성’과는 관계가 없다. 완벽하지 않다고 판명되더라도 바랄 수밖에 없고, 바람으로서 지금의 삶을 버티고 앞으로라는 ‘추상적인’ 무언가를 향해 다가갈 수 있으니 기대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불완전한 점에서 어쩌면 소설과 나는 서로의 삶이 맞닿아 통했다고 느끼고 위로를 얻었는 지도 모르겠다. 하루 하루 살기도 벅차서 좌절하지만 삶의 흐름에 몸을 맡기게 되는 것처럼. ‘바람’에 몸을 맡기고 살아내는 것이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이기 때문에. ‘순간’을 넘기는 것은 중요했다. 그건 개인적 불행의 총량이 더 많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내가 견뎌야 할 것이기 때문에 무거운 것 뿐이라 쉬쉬하며 지냈던 것이었는데 이 소설을 쓴 이야기꾼은 내가 가진 이야기보다 더 무거운 이야기를 가볍게 전개한다. 마치 농담처럼 느껴졌다.


이미 충분히 ‘삶’이 부담스러워서, 거대한 카타르시스를 ‘회의’하는 삶을 살고 있어서, 이 소설이 어울리는 곳에서 살고 있기에 소설로부터 위로받았을지도 모른다. 이야기꾼이 이야기를 심각하게 다루지 않아서 무거운 이야기를 농담처럼 쉽게 읽었으며, 오래 마음에 남아도 부담스럽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의 농담같은 위로는 던져졌을 뿐이라, 나는 책장을 덮고서 마음에 남은 위로로 다음 ‘순간’을 향해 간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외치며 부러진 팔로 아이의 어깨를 힘껏 끌어안았다. 삼십팔 킬로그램의 여자가 한 생명을 필사적으로 붙들고 있었다. 흠뻑 젖은 소년의 몸은 파충류처럼 차가웠다. 하지만 가슴을 뚫고 튀어나올 것처럼 심장이 거세게 팔딱거리고 있었다. 수억수천만년간 박동을 멈추지 않은 심장이었다.

.

.

이번엔 절대 그냥 죽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거야.

눈을 감은 채 자신의 결심을 주문처럼 되뇌는 동안 그녀는 물속에서 소금이 녹듯 스스르 잠들었다."

-파충류의 밤106-107p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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