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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미의 축제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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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치게 얇은 책이다. 짧지만 굵다. 유의미의 무의미, 무의미의 유의미. 단순하게 말하여 삶 안의 어떤 것도 무의미하지 않다는 뜻으로 들린다. 단어나 에피소드가 넘치지도 않는다.  문장 하나에 신경을 쓴 티가 났다. 어렵지는 않은데 허투루 넘어가는 것들이 없었다. 

책은 재미있게 읽었는데 그 이외의 설명을 보탠다는 것은 식상하고, 재미없다. 작가가 이미 지나치게 명료한 어떤 주제에 대해서 가볍게 이야기를 풀었다. 책을 읽는 것이 가장 재미있는 설명이 될 터였다. 


그래도 설명을 덧붙여야 한다면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라몽의 나르키소스에 관한 언급부터 시작해보고 싶다.


“ 다르넬로를 만나면 보잘것없는 인물이 아니라 나르키소스를 상대하게 될 거야. 이 말의 정확한 의미에 주의해야 해. 나르키소스라는 건 거만한 사람이라는 게 아니야. 거만한 사람은 다른 이들을 무시하지. 낮게 평가해. 나르키소스는 과대평가하는데, 왜냐하면 다른 사람 눈에 비친 자기 모습을 관찰하고 더 멋있게 만들고 싶어하거든. 그러니까 그는 자기의 거울들에 친절하게 신경을 쓰는 거지.(25p-26p) ”


다르넬로는 책 안에서 나르키소스로 묘사된다. 이 책 안에서 라몽에게 나르키소스인 다르넬로는 ‘위대한 진리의 엄숙함에 애착을 가진 인물(149p)’이다. 이 말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보았다. 라몽은 다르넬로가 위대한 진리를 좋아하는 것은 그가 나르키소스이기 때문이라 여긴 것은 아닐까?


“ 스탈린 자신이 답한다. ‘나는 말이오, 동지들, 인류를 위해 나를 바친 겁니다.’ 

모두들 마음이 놓인 듯, 고개를 끄덕이며 이 거창한 단어들을 인정한다. 카가노비치는 박수를 치기까지 한다. 

‘하지만 인류가 뭐죠? 전혀 객체적인 것이 아니고 나의 주관적 표상일 뿐, 말하자면 내 주위에서 내 두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었던 것이지. 그런데 내가 내 눈으로 노상 봤던 게 뭘까요, 동지들? 당신들, 당신들이라고!’ (118p-119p)


이 책에서 나오는 스탈린 역시도 ‘인류를 위해 나를 바친다’라는 개념을 비웃고 있다. 스탈린 본인이 인류라는 것을 주관적인 표상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위대한 진리의 위대함을 뒤집는 발언이다.


농담의 중요성에 대해, 농담은 무의미한 것으로부터 온다는 것에 대해 명료하게 주장하는 이야기가 있다. 중간에 삽입된 것 중 스탈린이 한 농담에 관한 것이다. 스탈린은 자신이 자고새 24마리가 나무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12발 남은 총으로 자고새를 다 쏘았다고 했다. 그러고서 13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집에 가서 탄창을 가져와 나머지 12마리가 앉아있는 나무를 향해 쏘아 모두 24마리를 잡았다고 말한다. 현대인은 이것을 농담으로 받아들이고 웃지만, 그의 측근인 호루쇼프는 스탈린의 거짓말이 역겹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이 이야기를 말하는 등장인물 샤를은 스탈린 주위의 사람들이 농담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게 되었기에, 새로운 역사의 위대한 시기가 도래하였다고 말한다. 이 말을 뒤집어보면 위대한 시기라는 단어로 그 당시를 표현함으로써 ‘위대한 진리’를 좋아하는 다르넬로를 조롱했듯 그 ‘위대한 시기’를 조롱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가 무의미가 귀중하다는 것의 증거로 내놓은 다른 예시를 보자. 알랭의 어머니는 알랭에게 말한다.


“저 사람들 전부 좀 봐라! 한번 봐! 네 눈에 보이는 사람들 중 적어도 절반이 못생겼지. 못생겼다는 것, 그것도 역시 인간의 권리에 속하나? 그리고 한평생 짐처럼 추함을 짊어지고 산다는 게 어떤 건지 너는 아니? 한순간도 쉬지 않고? 네 성(性)도 마찬가지로 네가 선택한 게 아니야. 네 눈 색깔도. 네가 태어난 시대도. 네 나라도. 네 어머니도. 중요한 건 뭐든 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권리들이란 그저 아무 쓸데없는 것들에만 관련되어 있어, 그걸 얻겠다고 발버둥치거나 거창한 인권선언문 같은 걸 쓸 이유가 전혀 없는 것들!(133p) ”


이것은 다르넬로의 엄숙함과 나르키소스 적인 면을 한차례 다른 예시로 비웃는 대목이다. 책에서 말하고 다르넬로가 좋아하는 위대한 진리는 ‘인권선언문’같은 것인데, 알랭의 어머니가 중요한 것들은 인간의 힘으로 바꿀 수 없는 것들이라고 한다. 그리고 ‘인권선언문’은 쓸데없는 것에 관련되어 있다고 말한다.


라몽은 다르넬로에게 이렇게 말하는 대목이 있다.


“하찮고 의미없다는 것은 말입니다, 존재의 본질이에요.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와 함께 있어요. 심지어 아무도 그걸 보려 하지 않는 곳에도, 그러니까 공포 속에도, 참혹한 전투 속에도, 최악의 불행 속에도 말이에요. 그렇게 극적인 상황에서 그걸 인정하려면, 그리고 그걸 무의미라는 이름 그대로 부르려면 대체로 용기가 필요하죠. 하지만 단지 그것을 인정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고, 사랑해야 해요,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해요.(147p) ”


이 대목으로 무의미함이 얼마나 중요한지 못을 박는다. 


책은 이제까지 의미있다고 여겼던 모든 것들이 무의미한 것들을 무시하고서 그 위에 선 것이었다고 말한다고 여겼다.

각자는 삶을 사는 데 필사적인 투쟁을 하고 있다. 살면서 삶의 불행을 가지고 농담거리로 삼는 사람은 봤어도, 삶의 불행 자체가 없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아마 있다고 해도 극소수라서 내 주변에는 없었는 지도 모른다. 굳이 특정지어 마음에 담아둘 대목은 아니지만, 자기 자신 이외의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은 투쟁을 한다는 점에서 마음에 들어서 게시한다. 


“나는 우리 거리들에 이름을 장식한 이른바 그 위인이라는 자들은 관심 없어. 그 사람들은 야망, 허영, 거짓말, 잔혹성 덕분에 유명해진 거야. 칼리닌은 모든 인간이 경험한 고통을 기념하여, 자기 자신 외에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 필사적인 투쟁을 기념하여 오래 기억될 유일한 이름이지. (44p)”



도가철학자들이 무위자연을 말한 것이 생각난다. 모든 것에 가치가 있기에 모든 것에 가치가 없다. 어떤 것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인간이고, 무의미한 것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도 인간이다. 더 이상 가치구분의 의미가 없어지는 지점. 그래서 그것을 가치구분하지 않고, 무의미한 존재 그대로 사랑할 수밖에 없는 지점. 그것이 삶의 축제를 가리키는 말이 아닐까. 참 모순적으로 들리지만.. 도가도 비상도에 의하면 진리는 '말'로 풀이되지 않는다. (그렇게 말하는 것 역시도 모순이 되어버리는 것이 함정일지라도, 이렇게 밖에 말할 수 없는 걸!) 이제는 너무 자명한 것으로 자리해서 더는 말이 필요없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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