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카이도에서 살아남기
-2018.09.02~2018.09.03. 비에이에서 아바시리-

비에이 자작나무길을 달려 아오이이케 산보 후 은근히 온천물에 들어가고 싶어하는 남편을 환호케 한 것은 6살 아이가 노상방뇨 중 바지에 오줌을 흠뻑 적신 사건 때문이었다. 세상에 처음 보는 블루를 보던 감탄보다 더 큰 환호를 하며 근처에 있는 온천장에 가니 목욕을 하면 식사 할인. 덤을 마다할 리 누구던가? 부른 배로 온천탕에 들어가니 탕속의 물들이 다량으로 방출된다. 온천탕 대쓰나미? 홀딱벗고 의자에 앉아 졸을 수 있으니 한낮에 손님이 없는 온천탕의 재미다.

캠핑 여행자의 사치를 누리고 네비에 아바시리를 목적지로 설정한다. 대략 네 시간! 홋카이도 중앙에서 오호츠크해에 나있는 북동쪽의 반도로 가야하니 당연할 수 밖에. 친구가 시간 반을, 친구 남편분이 운전대를 건네받아 달리고 달린다. 맑은 하늘이 시간을 달래주고 아이들의 지루함은 낮잠이 달래준다. 하지만 요의는 달랠 수 없는 지라 아사히카와시 즈음에서 멈추어야했다. 이것이 친구가 가진 신의 열두 수 중에 한 수 였을까? 아바시리 캠핑장에 도착하여 근교에서 신선한 해산물 식사를 하는 걸로 잠정적 결론을 내린참에 특산물판매점을 발견. 혹시 모를 변수에 대비해 홋카이도 소고기. 돼지고기, 야채 등등을 사기로 했다.

“네가 검색을 했냐? 예약을 했냐? 총무라도 해야되지 않겠냐?”
랑 반 협박으로 맡긴 임무, 예산과 집행의 권한을 가진 친구는 특산물 판매점에서 거금을 지출. 그 시점이 그날 저녁 절묘하게 우리으 감격케 했으니, 우리 총무에게는 열두 척의 배 대신 열두개의 ‘ 신의 수’가 있었던 것이다. 총무라면 그 정도는 다 있지 않나?

아바시리에 가까워질수록 숲은 울창해졌다. 아이들은 서서히 낮잠에서 깨어 언제 도착하냐면서 일분 단위로 묻고 있다.
“인간은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운동을 잘하든 못하든 누구나 최소한 한 가지 재능은 가지고 있다.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주는 재능 말이다. 가족에게, 친구에게, 연인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어주는 재능. 누군가의 말을 들어주는 재능. 친절을 베푸는 재능”
문유석 판사의 [개인주의자 선언]을 읽으며 무릎을 탁쳤던 문단.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을 재능으로 미처 생각지 못한 이 시대에 누군가을 행복하게 해주는 재능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 세상의 이름없은 무명 재능꾼들을 경외하면서 나또한 그런 재능을 가져보기로 한다.

“우리 놀이하자! 너희들이 좋아하는 피카츄 인형을 두명씩 짝을 이뤄서 상대가 잘 받을 수 있도록 던져주기. 잘 던져주면 레벨 업해서 거리를 늘려서 다시 던져주기. 상대가 잘 받지 못하도록 제멋대로던지는 사람은 벌칙. 던지다 상대를 탓하고 원망하면 벌칙. 야라고 함부로 말하면 상대를 00님이라고 부르기”
별 것 아닌 놀이에도 아이들은 즐겁다. 아이들 웃음 소리를 들으면 부모 또한 즐겁다. 이리 즐거우려고 집밖으로 나오지 않았던가?
하지만 삼십분이 넘어가자 아이들은 또 묻는다.
“언제 도착해요?”
북해도 곰돌이 이야기를 만드느라 머리를 쥐어짠다. 캠핑카를 가로막는 곰돌이 습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부터 북해도곰을 설득하는 법까지.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들이 난무하는 사이 아바시리 캠핑장 도착은 여덟시가 가까운 시간.

깊고 깊은 숲 속에 식당이 가까이 있을 리는 만무. 총무의 신의 한 수 였던 고기들로 바베큐파티. 한국에서부터 친구 남편이 공수해온 글랜피딕을 타국 생활에 입맛을 잃을까 걱정스런 사온 열무김치를 안주삼아 신선한 바베큐파티에 ‘좋다. 맛있다’를 백번은 외친 듯하다. 그만큼 타지에서 즐거운 지음. 코인세탁기의 빨래를 찾으러 가는 길에 바라본 밤하늘은 천국. 은하수가 넓게 퍼지고 별똥별이 떨어지는 하늘 저편은 오호츠크해 바다라서 하얗게 반짝이고 있다. 오늘밤, 우린 모두 반짝이고 있다. 웃는 얼굴로 반짝이니 인생의 한순간. 지금도 반짝인다! 인생의 한 순간이 반짝인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이들이라면 사랑해도 좋을 밤. 맥주 또한 술술. 그렇게, 언제 또 바라볼 수 있게 될 지 모를 별빛 가득한 밤하늘 밑에서 잠이들었다.

아비시리의 태양또한 환하고 강렬하게 반짝이며 떴다. 5시에 일어나 산책을 한 친구는 아이들을 깨워 이슬이 사라지지 않은 잔디밭을 지나 울창한 숲길을 걷는다. 그리고 나타난 놀이공원. 내가 알고 있는 감탄사의 한계를 확인해야 했던 장소. 초록이 가득하니 모두가 순해지고 부지런해진다.
“죽고 싶지 않다. 영원히 살고 싶다.”
이런 곳에서 하늘과 바다를 보면서 생의 의지를 확고히 한다. 영원불멸이 불가능하고 남아 있는 날이 얼마일지 가늠할 수 없으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오늘을 잘 살아내는 것이다.

“내 인생은 언제나 오늘, 아침에 시작된다. 매번 오늘밤에 끝나버리고 말것같은 두려움은 오늘 주어진 이 시간을 중요한 한 날이게 만든다. 내일이면 다시 나는 내 인생의 오늘을 또, 살아갈 것이다.”
이런 문장을 적은 일기를 쓴 적이 있다. 일기에 썼던 문장들을 곱씹게되던 시간. 이 좋은 공기로 온몸을 샤워할 수 있게 해 준 그 무엇. 그게 신이라면 신에게, 우연이라면 우연에게 감사한 오늘아침이다.

...라고 생각하는 것도 잠시, 이 멀리 아바시리에 왔던 이유는 시레토코 반도를 유람선으로 관람하기 위함이었다. 허나 태풍예보로 유람선은 취소되었다는 전화를 받았다는 남편의 전언. 캠핑여행 두번째 계획이 무산되는 순간. 무너지면 안된다! 대체방안으로 왓카야마국립공원을 찾기로 했다. 최우선보다 더 좋은 차선. 왓카야마원화원은 차량출입을 막은 해안의 식물들이 무성한 해변길이었다.8명이 자전거 7대를 대여해 해안도로를 달리는 동안 ‘곤니찌와’ 인사가 바닷바람에 실려 파도소리와 함께 경쾌하게 들려왔다.

“우리는 일정보다 차선책이 더 행운인 것 같아. 이로써 신의 두 수를 써버린거야?”
신의 수를 남발하며 수산물 직판장에서 산 대게를 노상 벤치에 앉아 쪽쪽 바닷물까지 빨아먹고 굿샤로호 근처의 니지베츠 캠핑장으로 방향을 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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