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이름을 말해줘
존 그린 지음, 박산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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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과 천재를 구분할 줄 아는가? 나는 지금까지 신동과 천재는 동급이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신동과 천재라는 말 사이에는 극명한 차이가 있다. 신동들은 다른 사람이 알아낸 것을 아주 빨리 배울 수 있다. 반면 천재들은 이전에 누구도 발견하지 못했던 것을 발견해낸다. 달리 말하면 신동들은 남이 이뤄놓은 것을 배우고 천재들은 스스로 이뤄낸다는 말이다.

 

영화 <안녕 헤이즐>의 원작 소설,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를 워낙 인상 깊게 읽었기에 그의 다른 작품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이번에 읽은 <이름을 말해줘>는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콜린 싱글턴의 성장 소설이다. 소설의 주인공 콜린은 평범한 아이가 아니다. 라틴어와 아랍어를 비롯해 11개의 외국어를 구사하며, 미국의 상원의원 이름을 모두 외우는 소문난 신동이다. 콜린이 어렸을 때는 크래니얼키즈라는 TV쇼에 출현해 유명했다. 하지만 점점 커갈수록 자신은 남들과는 달라야 한다는 강박에 빠져 지내게 된다. 콜린에게는 또 다른 특징이 있다. 그는 지금까지 열아홉 명의 캐서린들과 연애를 해왔던 것. 이것이 무슨 말이냐면 그가 지금까지 만난 열아홉 명의 여자들의 이름이 모두 캐서린이었다는 말이다. 우리로 치면 영자라는 이름의 여자를 무려 열아홉 명을 만난 것이다. 이게 확률로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불가능하겠지…. 아무튼, 그가 신동이기 때문에 독특한 자기만의 세계를 가지고 있어서인지는 몰라도 이 열아홉 명의 캐서린 모두에게 예외 없이 차였다고 그는 기억하고 있다. 마지막 열아홉 번째 캐서린에게 이별통보를 받은 콜린이 이별의 고통에서 헤어나오지 못하자 그의 유일한 절친 하산이 자신과 함께 자동차 여행을 떠나자고 제안한다.

 

그렇게 두 사람은 목적지 없는 자동차 여행을 떠난다. 도로를 따라, 이정표를 따라 정처 없이 흘러다니다가 건샷이라는 마을에서 린지라는 동갑내기 소녀를 만난다. 린지에게는 동네에서 가장 잘나가는, 재수 없는 남자친구가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남자친구의 이름이 콜린이다. 이때부터 촉이 딱. 소설에서는 또 다른 콜린이라 하여 '또다콜'로 불린다. 잠시 관광 차 들렸던 두 사람은 탐폰의 줄 만드는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린지 어머니에게 인터뷰 일을 부탁받고 마을에 머물게 된다. 마을에 머무는 동안 콜린과 하산은 똑같았던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일을 경험하게 되고 조금씩 자신을 발견하며 성장하게 된다. 나일론 이슬람 신자의 일탈과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신동이라 불리는 이의 성장 과정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콜린의 박식한 지식과 더불어 4차원적인 행동에 한껏 유쾌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콜린과 린지가 잘되기를 내심 기대하며 읽었는데 갑작스러운 스무 번째 캐서린의 등장에서 심쿵. 4차원 신동 소년과 남에게 잘 보이려 노력하는 소녀의 이야기가 재미지다.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를 재밌게 읽었다면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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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내
마리 다리외세크 지음, 최정수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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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집아이의 방언, 가시내. 왠지 모르겠지만, 정감 가고 묘한 끌림이 있는 단어다.
그래서일까 예쁜 표지가 인상 깊은 마리 다리외세크의 <가시내>를 집어 들었을 땐 별다른 고민 없이 펼쳤던 것 같다. 하지만 책을 펼치자마자 거침없고 자극적인 표현과 뚝뚝 끊기는 단편적인 문체에 당혹스러움을 느껴 쉽게 책장을 넘기지 못했다. 평범한 전개의 소설이라고 생각했던 내게 소설<가시네>는 책을 덮는 마지막 그 순간까지도 당혹스러웠다. 하지만 분명히 매력적인 요소가 있는 소설이라고 말하고 싶다. 다 읽은 뒤에 자꾸 생각나는 소설이랄까.

 

소설 <가시내>는 1980년대 클레브라는 프랑스의 작은 시골 마을에 사는 소녀 솔랑주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앞뒤 상황 설명은 과감하게 생략하고 메모를 하듯 단편적으로 쓰인 독특한 전개에 처음에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 하며 쉬엄쉬엄 읽어나갔다. 눈에 들어오지 않아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서평을 작성하고 지금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춘기 소녀 솔랑주의 복잡하게 얽힌 마음을 작가가 의도적으로 뚝뚝 끊기는 단편적인 문체로 표현하고 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 말이다. 정말 그렇다면 작가의 표현 방법에 소름이…. 나는 남자이기 때문에 사춘기 소녀가 초경을 하고 어떤 심경의 변화를 겪은 뒤 여인이 되어가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물론 모든 사춘기 소녀가 솔랑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책을 읽는 동안 사춘기 소녀가 성에 대해 어떤 오해와 편견을 가졌는지 간접으로 배울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이야기는 줄곧 주인공 사춘기 소녀 솔랑주의 시점으로 이야기하고 있지만, 사실 저자 자신이 소녀 시절에 녹음해 둔 육성 파일 형태의 일기에서 많은 부분을 따왔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십 대가 경험할 수 있는 심경과 사건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한편으로 제대로 된 성 지식 없이 또래 여자아이를 괴롭히는 남자아이 행동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읽는 내내 거침없는 성기표현도 낯뜨거웠다. 그와 함께 제대로 된 성교육 한 번 없이 지낸 내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내 어린 시절엔 청소년의 성 문제에 대해 다들 쉬쉬하는 분위기였던 것 같다. 소설 <가시내>는 분명 읽기에 친절한 책은 아니다. 하지만 이제 한 가정의 가장이 될 내게 다소 민감할 수 있는 청소년의 성 문제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해볼 시간을 만들어 준 고마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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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법 - 상 - 제66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 대상 수상작
야마다 무네키 지음, 최고은 옮김 / 애플북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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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백년법>을 읽을까 말까? 고민하며 이 서평 저 서평을 읽고 있는 사람에게 미리 말하자면, 그냥 읽어봐라. 정말 재미있다. 물론 지극히 내 주관적인 생각일 뿐이지만 올해 내가 읽은 SF 장르 소설 중 야마다 무네키의 <백년법>이 당연 최고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만큼 만족도가 높았던 소설이다. 누구나 한번 상상했을 법한 불로화 기술을 베이스로 빈틈없이 짜인 세계관은 책을 펼치는 순간, 다 읽을 때까지 놓을 수 없게 만들었다. 8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책을 정말 쉬지 않고 읽은 것 같다.

 

불로화 시술(HAVI)을 받은 국민은 시술 후 백 년이 지난 시점부터 생존권을 비롯한 기본 인권을 모두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백년법>이다. 오해할 수 있는 것이 있는데 여기서 백 년이란 시술을 받은 날로부터 백 년을 말한다. 보통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시술을 받을 수 있으니 20살에 시술을 받으면 120살에 생존권을 포기해야 한다는 말이다. 만약 가장 멋지고 탄력 있는 20대의 외모로 늙지도 죽지도 않고 영원히 살 수 있게 된다면, 그런데 백 년이 지난 후 강제로 생존권을 포기해야 한다면 어떤 느낌일까….

 

이 책은 일본에 블로화 기술 도입 후 국민이 시술을 받은 지 백 년이 되기까지 딱 1년이 남은 시점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동안 말로만 존재하던 <백년법>의 시행을 찬성하는가 반대하느냐는 중요한 문제로 국민 투표가 시행된다. 한국이나 중국은 이미 불로화 기술 도입 후 자체적으로 법을 만들어 탄력 있게 시행하고 있는 터라 불로화에 대한 부작용이 적었으나, 일본은 유명무실한 <백년법>만 있을 뿐 부작용에 대해 이렇다 할 방법이 없었다. 국민 투표가 있기 전 자신이 희생하더라도 <백년법>을 시행시켜 국가를 위기에서 구하려는 사람, 가진 게 많아 죽고 싶지 않은 사람, 국민을 이용해서 권력을 잡으려는 사람, 나 몰라라 하는 사람, 백년법을 거부하고 따로 모여 거부자 마을을 만들어 생활하는 사람 등 정말 현실적으로 그려내고 있어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특히 이기적인 정치인의 음모에 휘둘리는 아무 힘없는 국민을 보면 말도 안 되는 정책으로 서민을 쥐어짜는 현 정부를 보는 것 같아 씁쓸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불로화 시술에는 엄청난 부작용이 숨어 있었고, 이 부작용으로 백여 년 동안 얽히고설킨 복잡한 문제들이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책을 읽으면서 과연 이 복잡한 관계들을 어떻게 끝을 맺을지도 걱정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렇게 끝을 맺을지는 상상도 못 했다. 야마다 무네키의 작품을 모두 읽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마무리였다. 이 부작용이 무엇인지는 책을 통해 직접 확인하길 바란다. 숨 가쁘게 읽어나갔던 소설 <백년법>. 제아무리 과학 기술이 발달하였다 해도 죽음의 영역까지 손을 데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며, 사람은 자연스럽게 늙어 죽는 것이 가장 사람답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책이었다. SF 장르 소설을 좋아한다면 꼭 읽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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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장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7
나가오카 히로키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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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야마 히데오의 <64>를 읽고 경찰 미스터리 소설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 <64>는 14년 전 미제로 끝난 소녀 유괴살해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추리 소설이자, 일본 경찰 사회를 아주 세밀하게 보여주는 경찰 소설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힘에 다시 한 번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경찰 미스터리 소설의 매력을 알게 해 준 요코야마 히데오가 항복이라는 표현을 했다는 작품이 있다고 한다. 바로 나가오카 히로키의 <교장>이다. 이 책은 제목에서 예상할 수 있듯이 경찰학교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소재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경찰학교 98기 학생들은 경찰학교를 '체'라고 생각하고 낙오, 즉 체에서 걸러지지 않겠다는 각오로 하루하루 열심히 훈련한다. 그럼에도 98기 중 낙오자가 꾸준히 발생한다. 자신의 실수로 인해 불이익을 받는다면 어쩔 수 없지만, 공동체 생활인만큼 같은 조에 편성된 인원의 실수 때문에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 생기기 마련이다. 훈련과정에서 이런 것들이 쌓이다 보면, 또 계속해서 낙오자가 발생하면, 학생들은 예민해지고 결국 사건 · 사고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 책은 여섯 개의 사건이 단편집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개미구멍> 에피소드는 복수 방법이 조금 잔인해서 쉽게 잊히지 않는다. 이 여섯 개의 사건은 백발 교관 가자마의 냉철한 통찰력으로 해결되는데, 관록이 있어서 그런지 경찰학교 내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을 가자마는 모두 알고 있는 것 같다. 하긴, 학생을 스파이로 심어두기도 하니까…. 보통 주인공은 정이 가기 마련인데 교관 가자마는 정이 안 가는 독특한 캐릭터이다.

 

경찰 학교에 무엇을 배우는지, 어떻게 생활하는지, 그리고 어떤 이해관계가 생길 수 있는지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어느 정도 알게 되었는데, 아쉽게도 이 책은 딱 그 정도까지다. 요코야마 히데오의 <64>같은 정통 미스터리 경찰 소설을 기대하고 이 책을 읽는다면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분명 의문의 사건이 발생하는 건 맞지만, 정통 미스터리 소설이라고 말하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다만 경찰 학교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건을 다룬 경찰 소설로 읽는다면 만족할 수 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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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달리는 소녀 북스토리 재팬 클래식 플러스 6
쓰쓰이 야스타카 지음, 김영주 옮김 / 북스토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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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인상 깊게 본, 그래서 지금까지 잊히지 않는 애니메이션이 있다. 일명 '시달녀'로 불리는 <시간을 달리는 소녀>. 애니메이션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우연히 '타임리프' 능력을 갖게 되어 시공간을 넘나들 수 있게 된 어느 소녀의 이야기로 일본 SF 거장 츠츠이 야스타카의 원작 소설이 애니메이션화 된 것이라고 한다. 워낙 재미있게 봤고 지금도 가끔 생각나는 작품이라서 원작 소설은 어떤 내용일지 궁금해서 북스토리에서 출간한 츠츠이 야스타카의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읽어보았다.

 

이 책은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비롯하여 <악몽>, <The other world> 이렇게 총 세 가지 단편 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사실 책을 읽기 전에 책 제목대로 <시간을 달리는 소녀>만 담긴 소설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읽어보니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120여 페이지 정도로 생각보다 짧은 단편 소설이었다. 애니메이션과 비슷한 듯 비슷하지 않은 등장인물과 내용이라 적잖게 당황했다. 하지만 '텔레포테이션'이라거나 '타임리프' 등 이야기를 이끄는 중심은 원작 소설을 뼈대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애니메이션과 원작 소설이 비슷한 분위기였다. 아무튼, 이 짧은 내용으로 100분의 런닝타임의 애니메이션을 만들다니 역시 일본 애니메이션은 대단한 것 같다.

 

세 작품 모두 독특하고 흥미로웠지만, 개인적으로 <시간을 달리는 소녀>와 <악몽>이 괜찮았다. 두 작품 모두 소녀가 주인공이며, 두 소녀 모두 자신에게 생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물리적, 혹은 정신적으로 자신의 과거로 돌아간다는 설정이 비슷하다. 또한, 두 소녀에게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키'가 존재한다는 점 역시 비슷했다.

 

이해해, 그런 마음은……. 괜찮아.
그렇다면 너는 네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사용해서 다시 한 번 4일 전의 그 실험실 사건이 있던 현장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어.
시간을 달리는 소녀 中

 

그래도 네 생각이 틀리지 않은 것 같아.
우리 작은아버지가 심리학자인데 무서운 게 왜 무서운지를 알게 되는 순간, 그것을 무서워하지 않게 된다고 예전에 말씀하신 적이 있어.
악몽 中

 

가즈코, 마사코. 두 소녀가 자신들에게 주어진 '키'를 중심으로 자신에게 닥친 문제를 극복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
개인적으로 츠츠이 야스타카의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청소년 문학으로 보면 될 정도로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 생각한다. 치밀한 구성으로 잘 짜인 소설을 즐겨 읽는 사람에게는 지나치게 가벼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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