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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남들의 세계사 - 2014년 제47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ㅣ 죄 3부작
이기호 지음 / 민음사 / 2014년 7월
평점 :

자, 이 서평을 커피라도 한 잔 마셔가면서 천천히 들어 보아라.
이기호 작가의 새 소설 <차남들의 세계사>는 작가가 변사처럼 등장하며 이야기를 이끈다. 책을 처음 만났을 때 제목과 책 표지에 그려진 많은 방향 표지와 도로 위 자동차 그림을 보고 차를 사랑하는 남자들의 이야긴가 했다. 하지만 늘 그러하듯(?)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뭐… 주인공이 차를 모는 택시 기사라는 점에서 어느 정도 정답에 가깝지 않으냐고 위로해본다. 소설 <차남들의 세계사>는 내가 생각했던 그리고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큰형님(형님 국가 민국 등)의 비위를 살살 맞추며 눈치나 보면서 전전긍긍 살아가는 차남들의 이야기로 29만 원밖에 없다고 우기던 황당한 독재자 전두환 통치 시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물론 그 시절을 직접 경험해본 적은 없지만, 영화나 책 등을 통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특히 그 시절 대한민국에서 간첩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국가 권력에 의한 인권 유린 사태가 얼마나 많았는지를 말이다. 그 시절, 이 땅에서는 전두환 장군을 위해 많은 사건이 새롭게 기획되고, 또 창작되어 발표되었는데, 송씨 일가 간첩단 사건, 아람회 사건, 오송회 사건, 남북 어부 간첩 사건 등이 그 대표적인 예다. 그리고 이들 사건과 유사한 사건이 하나 더 있었다. 현재 방영 중인 드라마 <끝없는 사랑>에서 배경으로 삼고 있는 '부산 미 문화원 방화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이야기는 이렇다. 나복만이란 사람은 네 평짜리 단칸방에서 김순희와 동거를 하던 어수룩하고 좀 모자란 고아 청년이다. 그런 그가 동거녀 김순희의 제안으로 힘들게 면허를 취득하고 택시회사에 취업해 택시기사로 평범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새벽 나복만은 자전거를 탄 소년과 접촉사고를 낸다. 사람을 치었다는 사실이 양심에 찔린 그는 경찰서를 방문했다가 '부산 미 문화원 방화 사건' 피의자 명단에 오르게 된다. 실무자의 단순한 실수로 처리될 수 있던 일이 이상하게 꼬이면서 나복만은 간첩 사건의 한가운데 놓이게 된다.

자, 다들 <차남들의 세계사> 주요 인물 관계도를 확인하고 계속 들어 보아라.
주인공 나복만이 경찰서를 방문한 몇 분 만에 삼십 년이 넘는 긴 세월을 수배자로 살아가게 한 인물들을 관계도로 만들어보았다. 치안본부 소속 형사 곽용필 경정과 그의 아내 김경아, 담임 김상훈과 학부모 김경아의 관계, 개인의 욕망으로 김상훈을 협박하는 박병철, 자신이 만든 시나리오를 완성해서 두환이 형에게 사랑받으려는 안기부 요원 정남운 과장, 그리고 이 모든 사건의 원흉 전두환 등. 작가는 주인공 나복만이 뜻하지 않게 '부산 미 문화원 방화 사건'에 연루되어 수배자 신세가 되는 과정을 특유의 유머러스한 문체로 담고 있다. 이런 부조리를 단순히 소설로만 본다면 유쾌하게 웃으면서 즐길 수 있을 테지만, <차남들의 세계사>의 내용은 허구가 아니기에, 그 시절 누군가는 이유도 모른 채 아파하고 고통받았을 거란 사실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분명한 것은 눈앞에 있는 것도 외면하고 다른 것을 말해버리며 그것을 조장하던 아픈 현대사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아직도 나복만이 정남운 과장에게 했던 말이 떠나질 않는다.
저기, 그러니까…… 그것도, 다…… 그것도, 다 외워야 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