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거짓말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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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어떤 것이 진실이고 어떤 것이 거짓인지 모호한 순간을 만나게 될 때가 많다.

때로는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이 거짓으로 들통 나 버리기도 하고, 거짓이라고 믿고 싶은 것이 불변의 진실로 안착될 때가 있다.

그 속에서 과연 어느 것을 믿고, 어느 것을 버릴 지 언제나 선택을 강요받기도 한다.

그런데 그 순간 '과연 이 세상에 확실한 것이 있기는 한 걸까?' 하는 회의적인 생각이 들 때면 금세 맥이 풀린다.

 

학창 시절에는 믿어 의심치 않았던 도덕 교과서 안의 내용은 어른이 되어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는 방해만 됐고,

음악 시간에 죽어라 연습해가며 불었던 파라 피리는 지금 어디에 박혀 있는지도 모르며, 앞으로도 그 피리는 불 일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가정 시간에 배웠던 것들은 까먹은 지 오래다. 그래서 남성들이 환상을 갖고 있는 스웨터는 물론이고 간단한 목도리도 뜨지 못하며, 그 쉽다는 십자수도 못한다. 바느질의 기본인 홈질도 여전히 비뚤비뚤한 모양이 나온다. 마치 아직도 진실과 거짓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는 나처럼, 바느질도 더 이상의 변화가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후회가 남는 선택을 하게 되는 것마냥 아무리 노력해서 바느질을 해도 그렇게 비뚤비뚤한 모양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한 때는 재봉틀 수업 시간에 눈이 번쩍 뜨이기도 했으나, 내 손과 머리는 도무지 재봉틀과 친해지지 않았다. 재봉틀만 있으면 뭐든 쉽게 반듯한 모양으로 재단을 할 수 있는데 말이다. 결국 누군가 내 손을 잡고 도와주겠다고 나타나도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내 고집대로 밀고 나가다가 후회를 하게 되는 상황과 꼭 닮았다.

국어, 수학, 사회, 과학, 미술, 체육 등등...이들도 상황은 똑같다. 학창시절에 그렇게 국어만큼은 자신이 있었건만, 지금 애들이 푸는

국어 문제집을 보면 모르는 문제도 있다. 수학은 선생님이 '이거 안 하면 인간이 못 된다'고 했는데, 적어도 인간처럼은 살고 있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알 수 없는 미래때문에 괜히 그 시간에 잘 풀지 못해서 스트레스만 받았다. 또 사회 시간에 암기했던 것도 공중분해된지 오래고, 과학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미술은 당시에는 열심히 했는데, 지금 내 그림 실력은 점점 유아적 수준으로 후퇴중이다.

체육은 그때나 지금이나 나의 체력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 아무리 열심히 뛰어도 그때나 지금이나 몸은 언제나 불만족스럽기 때문이다.

아무튼 과거에는 전부라 생각하고 매달렸던 것들이 오늘 날에는 모두 거짓이 되어 있다. 내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나침반 역할을 하기 보다는 과거에 더 열심히 못했다는 자책과 후회만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그때는 받아들였던 것들이 지금은 왜 존재조차 하지 않는 것인지, 나는 도무지 알 수 없다. 

 

정이현의 '오늘의 거짓말'은 여러 단편이 들어있는 소설집으로, 그녀의 첫 소설집인 '낭만적 사랑과 사회' 와 비교했을 때

뭐가 더 나아지고, 뭐가 변화됐는지 판단을 흐리게 할 만큼, 모두가 흡인력이 강한 이야기였다. 그 결과 읽는 내내 '역시 정이현이야' 를 연발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녀의 글 속 주인공들은 대부분 외로운 자들이다.

결혼이라는 제도 속에서 튕겨져 나와 결혼 전처럼 고독한 생활을 하면서 소통되지 않는 맞선을 보기도 하고,

자신의 자리를 쉽게 찾지도 못하며 존재의 증발로 인해 가슴 뻐근함을 느끼기도 한다.

또 자신과 영원히 화해하지 못할 삶 속에서 자신의 의지가 아닌 남편 혹은 아들이 만든 소용돌이 속에서 덩달아 움직이며, 자신의 아픈 어금니는 끝내 들키지 못한 채 혼자 쓴웃음을 삼킨다.

어떤 때는 자신의 거짓말로 인해 외로움을 맛보기도 한다. 그야말로 진실과의 단절 속에서 오는 후유증이라고나 할까.

그런가 하면 어떤 남자는 자신의 정체모를 냄새로 인해 타인이 코를 움켜쥐는 걸 보며 극심한 외로움을 느낀다. 그들은 남자에게서 어떤 냄새가 나는 지 말해주지도 않고 그저 아무 냄새가 안 난다고 하면서 피하기만 했기 때문이다. 남자는 그저 뭐가 문제인 건지 진실을 알고 싶었는데 말이다.

한편 어떤 아이는 어지럽던 시절, 불의에 대항하며 사라져가는 어른과 불법을 일삼다가 사라진 엄마와의 이별을 안고 성장을 한다.

사라진 그들이 도대체 어디에 갔는지 소리쳐 묻고 싶지만, 뉴스조차도 그들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또 한 소녀는 어떤 것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세상에 말하지도 못한 채 자살로 위장되어 죽는다.

그리고 곧 마흔이 되는 여자들은 사랑이라 믿었던 남자에게 버림받고 정신 이상이 되거나, 아직 사랑하는 남자를 찾지 못해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삶을 살고 있다. 반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생활을, 연애를 하고 있는 여자들은 남편과의 잠자리 혹은 애인과의

스킨쉽이 불만족스럽다. 또 남편의, 애인의 일로 방황하지만 이내 그것을 받아들이고 현실에 합의한다.

이들은 모두 이미 저질러진 사건 앞에서의 유약한 인간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결국 그들은 사랑과 결혼, 일과 현실, 그리고 미래, 친구와 가족 사이에서 혼자만의 고민을 떠 안은 채 누구와도 열렬한 소통을 하지 못하며, 삶에도 만족하지 못한다. 그래도 그들은 끝까지 자신이 속한 현실을 지키며, 그 안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에는 최선을 다한다. 어느 것이 옳은 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그 모호함 속에서 용기를 내 보는 것이다. 삶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때로는 마음과 마음 사이 알맞은 거리를 측정하는 일이 몹시 어럽기도 하고, 견디지 못하는 것은 이 땅의 날씨가 아니라 나 자신이 될지라도 언제나 암묵적 합의에 동의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소설 속 인물들이 현실 속에서 어떠한 사건을 만나든 그 현실에 착한 학생처럼 안주하듯이 말이다. 어찌보면 그들은 자신이 피해자라고 말하면서도 마치 자신이 가해자인 것 마냥 고백하고 사죄하는 듯도 하다.

 

정이현 소설 속의 인물들은 이렇게 능동적이기 보다는 소극적인 수동성을 보이기 때문에 얼핏보면 삶 속에서 뒤쳐진 자들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그 모습은 때로는 안쓰러움으로 다가오기도 하며, 종국에는 나의 또다른 모습은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러고 보니, 작가가 나이가 들긴 들었나 보다. 이번 작품집에서는 그녀의 밝음이 옅었던 것 같다. 물론 그녀만이 던질 수 있는 경쾌한 생각들은 이따금 얼굴을 내밀었으나 어둡고 톤이 다운된 저 밑을 더 많이 보여줬던 것 같다. 이런 걸 '성숙' 이라고 하겠지? 

나이가 들어간다는 건 그런걸까?

어렸을 적 동심을 점차 잃고 어느 순간부터 알건 다 알게 됐듯이,

설렘만으로 출렁일 것 같던 미래가 부조리하다는 것을 알게 됐듯이,

그렇게 삶은 하나 둘씩 부담스러운 한숨의 짐을 업게 되는지도 모른다.

그 속에서 어떤 이는 진짜 진실을 찾아갈 것이고, 어떤 이는 거짓에 기댈 것이다.  

그리고 어떤 이가 아닌 나는, 여전히 진실과 거짓 사이에서 방황하며 어느 것이 나에게 유리할지 잔머리를 굴리느라 바쁠 것이다.

때로는 내가 하는 거짓말은 모두 선의의 거짓말이라고 변명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나의 '오늘의 거짓말'은 계속 될지도 모르겠다.

조심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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