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사나이
에마뉘엘 보브 지음, 최정은 옮김 / 호루스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혼자있는걸 좋아하는 나는 외로움을 즐기는 편이다. 하지만 이런 말을 빅토르 에게 했다간 쓴소리를 들을게 틀림없다. 그는 너무도, 정말 너무도 외롭기 때문이다. 빅토르는 뼛속 깊이 사무치는 외로움을 벗어날수만 있다면 간과 쓸개까지도 다 내줄 친구다. 뿌듯해하고 행복해하면서 말이다. 자신의 말을 들어주고 이해해주는 친구가 딱 한명만 있었으면 하는게 그의 소망이다. 더이상 하루를 혼자보내지 않기를, 같이 밥을 먹고 산책을 하고 커피와 술을 마실수 있는 그런 친구가 생기길 바랬다. 이 소박한 소망이 이루어졌더라면 그의 삶은 희망적으로 변했을 것이다.

빅토르는 전쟁에서 큰 부상을 입고 전쟁 공로 훈장을 받았다. 그리고 지금은 전쟁 상이군인 연금으로 겨우 연명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쪽 손이 불편하기 때문에 일자리를 구하기도 어렵고 아무도 그를 찾지 않는다. 허름한 7층 옥탑방이 그의 유일한 보금자리이다. 가족 이야기가 없는걸로 봐선 고아일 가능성이 높은 빅토르. 그가 하는 일이라곤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친구가 될만한 사람을 찾는것이다. 이웃 사람들과 가깝게 지내지도 못하는 그를 보고있자면 불쌍하고 답답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소심하고 나약한 그, 상상의 세계에 빠져드는 그, 세상에서 가장 소박한 소망을 가졌지만 그것조차 이루지 못한 그.

하지만 제 삼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그는 참으로 한심스러운 인물이다. 아무리 장애가 있다지만 하루종일 빈둥거리는 모습은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에게 불쾌감마저 주었다. 한마디로 게으름뱅이의 전형인 것이다. 그리고 빅토르의 성격 또한 문제였다. 지나치게 소심한 그는 자신과 친구가 될수있는 사람이 보이면 일단 저자세로 나간다. 상대방에게 불만스런 반응이 나와도 받아들이고 꿍꿍이를 내비쳐도 쉽게 넘어갔다. 특히 자신보다 더 가난하고 절망적인 사람을 만나면, 내가 그를 도와줄수 있을 것이고 보답을 받은 그는 나를 진정한 친구로 여길거라는 생각을 한다. 세상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걸 잘 알지만 우정에 굶주린 그에겐 친구가 절실했고, 한눈에 봐도 그를 깔보거나 업신여기는 사람에게까지 호의를 베풀었다. 그리고 곧, 또 다시 배신 당했음을 절절히 깨닫게 된다. 이런 악순환이 반복된다.

거기다 그의 망상은 사태를 더 악화시키는데 일조했다. 현실의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자신의 모습이 싫은것일까. 그는 누군가를 만나면 핑크빛 미래를 꿈꾸고 망상의 세계에 빠져든다. 그런 기대를 하지 말자고 스스로 다짐하지만 계속 떠오르는 망상은 멈추지 않는다. 특히 누군가가 나를 사랑해주고 부자가 되는 상상을 많이 한다. 상상 속의 그는 누구나 우러러 볼만한 인물이고 예쁜 애인이 있다. 잘 꾸며진 식당에 들어가 맛있는 음식을 먹고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눈을 뜨면 비참한 현실로 돌아온다. 그래서일까. 그는 거울속 자신의 모습을 좋아한다.  잠에서 깬 지저분한 모습이 아닌, 세수를 한 후의 옆모습을 거울에 비쳐본다. 그러면 마치 나의 분신을 보는것 같다고 한다. 이 책에 거울이 많이 나오는건, 자신의 모습을 지우고픈 빅토르의 심정을 대변하기 때문인것 같다.

그는 "느즈막이 점심을 먹으면 잠자리에 들기까지의 시간이 조금은 짧게 느껴진다" 고 말한다. 빅토르에게 혼자 보내는 하루는 너무나 긴 것이다. 약간의 동정과 사랑을 얻을수 있다면 내가 가진 모든것을 내놓을 준비가 됐지만 아무도 그를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딱 한번 그에게도 좋은 일이 생겼었다. 부자 라카즈는 그에게 직장을 알선해주고 양복을 살 돈도 주었다. 이제 빅토르는 성실한 근로자가 되어 다른 사람들처럼 열심히 살수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의 '사랑받고 싶어하는 욕구'와 '핑크빛 망상'때문에 단 한번의 기회는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 버렸다. 어이없는 빅토르의 행동 때문에 말이다. 이 부분에서 난 화가 많이 났다. 어쩜 이리도 멍청할수 있냐며 빅토르에게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누군가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다고 갈망한 그는 자기 스스로를 망쳐버렸다. 다른 누군가의 훼방이 아닌, 자신의 어리석음 때문에 친구를 만들지 못하고 사회에 융화되지 못한 것이다. "외톨이로 살다가 이대로 죽겠지' 라는 생각을 하는 그가, 자신을 보잘것없고 비참한 존재라고 평한 그가 점점 싫어졌다.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졌다면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빠져나와야 한다. 단숨에 포기하고 누군가 날 구조해주기만 기다리는건 어리석은 짓이다. 누군가와 친구가 되고 싶다면, 일단 자신을 먼저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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