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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인간
성석제 지음 / 창비 / 2014년 6월
평점 :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중 대부분은 "내가 보여요?" 라고 말하고 싶었던 순간들이 있을 것이다. 내가 뚜렷한 인간의 형상으로 보인다면, 저들이 이렇게 나를 대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게 되는 순간들은 하루에도 몇번씩 발생한다. 돈 때문에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는 상황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편의를 위해 지하철에서 마구 밀치고 들어오는 사람들을 보면 "내가 보여요?"라는 물음을 던지고 싶은 요즘이다.
사회적 양극화는 이미 심화될 대로 심화됐고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더 이상 실현 불가능한 시대가 됐다. 부의 세습 뿐 아니라 가난 역시 철저히 되물림 되는 사회에서 우리는 점점 투명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성석제의 <투명인간>은 '김만수'라는 인물을 통해 투명인간의 유전자가 어떻게 세습되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가 하는 이야기를 따라 읽다 보면 "내가 보여요?"라고 묻고 있는 사람들이 보일 것이다. 물론 "내가 보여요?"라고 묻는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다.
이 소설은 '김만수'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김만수'가 이야기하는 '김만수'는 없다. 이러한 서술방식에서도 엿볼 수 있듯, 그는 그 자신이 중심이 되어 삶을 살아가지 못했다. 소설은 그의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 형, 동생들, 친구, 아내, 그의 아들, 지인 등이 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독자들은 소설을 읽으면서 '김만수'라는 인물에게 조금씩 접근하게 된다.
육남매 중 둘째로 태어난 "대가리만 절구통겉이 크고 팔다리는 쇠꼬챙이겉이 빌빌 돌아가는" 이 아이는 학창 시절 때부터 바보 같다고 놀림을 받고 자기가 하지도 않은 일을 했다고 해서 벌을 받는다. 그런 그가 집안의 기대를 받던 형 백수가 월남전에서 사망하자 집안의 장남으로, 누나들과 동생들을 책임지게 된다. 연탄가스 때문에 둘째 누나가 장애를 겪게 되고 남동생 석수는 아이를 낳아 놓고 행방불명이 되는 등 그의 인생은 꼬일 대로 꼬여만 간다. 그러던 중 직장이었던 자동차 공장이 인수되자 '김만수'는 공장을 다시 살릴 수 있다는 사장의 말에 속아 공장을 지키려고 하다가 소송에서 패하는 바람에 엄청난 빚을 지게 된다. 평생 일해도 갚을 수 없는 억대의 빚을 진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에 두 세시간씩만 자면서 돈을 벌어 그 빚을 갚아나간다. 자신의 명줄이 점점 조여오는데도 그를 옭아맨 족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처럼 성실하기만 한 '김만수'의 모습을 보다 보면 정말 화가 난다. 게다가 뒤늦게 결혼한 아내는 신장 투석을 받아야 할 만큼 아프고, 동생의 아이를 아들로 받아들였는데 아이는 자폐증이 심하다. 누군가가 그의 삶을 이리 비틀고 저리 비틀면서 웃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베베 꼬여버린 그의 인생을 보면서, 새삼 인간에 대한 연민이 생겨나기도 했다.
결국 한강 다리에서 '김만수'는 투명인간이 되는데, 그의 아들 역시 그보다 먼저 투명인간이 되었다는 점에서 투명인간의 유전적 속성이 드러난다. 투명인간이 된다는 것, 그것은 죽음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 바보같이 성실한 인간이 투명인간이 되어 아직도 빚을 갚아나가고 가족들을 도와주고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그리고 점점 투명해지는 주변 사람들을 향해 손을 뻗어주고 싶은 마음도 든다. 따뜻하면서도 날카로운 시선이 돋보이는 소설이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