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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평점 :
곧 바스러질 듯 여린 문체 속에도 강력한 힘을 품고 있던 한강의 소설은 줄곧 우리에게 어떤 확실한 위로를 줬다. 그녀의 소설 <채식주의자>와 <바람이 분다, 가라> 는 어둡고 우울한 인간의 모습을 그려냈지만 그 속에서 삶에 대한 의지를 느낄 수 있었고, <희랍어 시간>에서는 말을 잃어가는 여자와 시력을 잃어가는 남자의 교감을 통해 읽는 이에게 따뜻함을 선사했다. 그런 그녀의 새로운 장편 <소년이 온다>는 이전과는 다소 다른 행보를 보이는 것 같다.
이번 소설에서 80년 광주 이야기를 다룬 그녀는 독자들을 슬픔의 한가운데로 안내한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그녀는 우리를 슬픔의 한가운데로 우겨넣는 것만 같다. 많은 이들이 이 소설을 읽고 참았던 눈물을 터트렸다고 했다. 눈물은 슬픔의 한가운데에서 인간이 취할 수 있는 자동적이고 자연스러운 반응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소설을 읽으면서 울음을 참을 수 없다거나 눈물이 고이는 순간은 없었다. 오히려 온몸으로 슬픔을 거부하듯 중간 중간 책장을 덮고 다른 일을 하려 애썼다. 책장이 넘어갈수록 마음 한 구석부터 점차 무거워지는 느낌과 그 무거움을 배출하듯 내쉬었던 셀 수 없는 한숨 그리고 때로는 외면해버리고 싶어 고개를 돌렸다 다시 응시하게 되는 순간들, 이것이 내가 새롭게 알게 된 슬픔에 대한 또 다른 반응이다.
사실 이 소설 속에서 정확하게 묘사된 슬픔은 잔인하다는 느낌마저 준다. 사실이 아니었길 바라고 싶을 만큼 적확하고 사실적인 문장들은 읽는 이의 시간을 서서히 과거로 향하게 한다. ‘지금-여기’를 벗어나 시간의 더께에 묻혀버린 80년 광주, 그곳으로 조금씩 우리의 시선을 향하게 하고 마음을 쓰게 하는 그녀의 문장과 서술방식은 한 평론가의 말처럼 이 소설을 ‘한강을 뛰어넘는 한강의 작품’으로 만든다. 그녀의 문장은 정확하지만 여전히 섬세하고, 각 장마다 시점과 화자가 다른 서술 방식은 소설 말미에서 모든 인물들이 어우러지면서 독자들을 슬픔의 한가운데로 골인시킨다.
구할 수 있는 모든 자료를 읽는다는 것을 원칙으로 세우고, 소설 속 인물들에게 욕이 되지 않도록 정확한 슬픔을 써내려가려 애쓴 작가의 시간은 얼마나 잔인했을지 짐작할 수 없을 정도다. 80년 광주 속으로 성큼 걸어 들어간 작가는 2013년 결혼식장에 가서 만난 사람들과 그 시간들이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철저하게 과거에 머무르면서 그들의 영혼과 교감을 이루려고 했던 작가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을 글쓰기를 통해 돌파해나가고 싶다는 바람대로, 그녀의 소설을 읽는 독자들은 인간이 가진 다양한 스펙트럼에 대해, 격렬하게 상반되는 모순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다른 사람을 처참하게 학살하는 인간과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의 목숨마저 내놓는 인간이 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은 무섭고 신비하기까지 하다. 양립할 수 없는 인간의 두 측면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던 80년의 광주는 과거에만 머물러있지 않다. 지금 이 순간에도 유리와도 같은 인간의 존엄성에 금을 내고 박살내는 현장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고, 우리가 인간으로 존재하는 한 이 무섭고 신비한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광주 이야기를 써내려간 작가처럼 우리 역시 집요하고도 정확하게 슬픔을 응시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이 아닐까.
인간에 대한 고민 뿐 아니라 살아남은 자들의 고통과 죽은 영혼들에 대해 최대한 정확하게 말하려는 그녀의 노력은 지금 우리 한국 사회에 꼭 필요한 위로인 것만 같다. 슬픔의 한가운데로 들어가서 그곳에 머무르는 일. 그것은 좀처럼 노력하지 않고는 타인의 작은 고통에도 공감할 수 없는 바쁜 한국사회에서, 또 한 번의 국가적 슬픔을 맞이한 우리들에게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나는 이 슬픔의 한가운데에 조금 더 머무를 것이다. 그리고 슬픔에서 멀어지는 것 같을 때, 다시 이 책을 펼칠 것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