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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김중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평점 :
“사람이 비밀이 없다는 것은 재산이 없는 것처럼 가난하고 허전한 일이다.”
이상은 그의 단편소설 <실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무래도 이상은 적당량의 비밀이 지니는 신비롭고 풍요로운 힘을 알고 있었던 듯하다.
김중혁의 세 번째 장편소설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역시 비밀에 관한 이야기다. 정확히 말하면 이 소설은 타인의 비밀을 지워주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로 이 작품의 주인공 구동치는 전문 딜리터이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의 죽음 후에 지워주었으면 하는 정보를 지워주는 대가로 돈을 받는다. 죽은 사람의 휴대전화기를 찾아서 없애주고, 죽은 사람의 컴퓨터를 망가뜨리고, 죽은 사람의 일기장을 갈기갈기 찢는 일이 구동치의 주 업무이다. 작가는 이와 같은 독특한 소재와 설정을 통해, 읽는 이로 하여금 ‘비밀’과 관련된 다양한 질문을 던지게 하는 것 같다. 사람들이 죽음 후에도 자신의 비밀이 드러남으로써 발생하게 되는 일들을 걱정하고 있다는 것은 죽으면 끝이라는 인식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카프카나 나보코프 등이 자신의 사후에 원고를 모두 불태워달라고 했다는 것은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유명하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신경이 쓰이는 비밀이 있다는 건 누구에게나 비밀이 있다는 것을 다시 상기시킨다. 이 소설은 다양한 소설 속 인물들의 비밀을 살펴보면서 독자들 역시 딜리팅을 의뢰하고 싶은 자신의 비밀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해준다.
구동치의 사무실이 있는 악어빌딩 1층에서 철물점을 하고 있는 백기현은 자신이 죽은 후에 아내가 자신의 지갑 속에 있는 첫사랑의 사진을 보고 마음이 상할 것을 염려해 딜리팅을 의뢰한다. 비용이 비싸다며 망설이는 백기현에게 구동치는 그럼 지금 당장 그 사진을 직접 없애라고 한다. 그러나 백기현은 죽을 때 그 사진 속의 눈빛을 떠올리며 죽고 싶기 때문에 그것을 지금 없앨 수는 없다고 한다. 우리의 삶을 지탱해주는 동시에 함께 죽어주었으면 하는 비밀의 존재는 기이한 매력이 있다.
자신의 탐욕을 위해 사람을 죽이고 죽은 사람의 비밀을 가로채는 인물들 사이에서 구동치는 그들의 비밀을 없애주기 위해 노력하는 한편 그들을 벌줄 방법도 궁리하는 모습을 보인다. 타인의 비밀을 공개해서 돈을 벌어보려는 사람들 사이에서 비밀을 지워주려는 구동치의 모습은 정의감에 불탄다. 이 과정에서 구동치는 그동안 타인의 비밀을 딜리팅할 때 살려두었던, 자신이 죽으면 지워달라고 또 다른 딜리터에게 의뢰한 파일보관함 속 자신의 비밀을 자기 스스로 처리하고 딜리터 일을 그만두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다양한 인물이 얽히고설켜서 흥미진진한 전개를 보이고 추리소설적인 면도 있어서 지루함을 느낄 수 없었던 책이다. 결말 부분이 조금 급하게 마무리된 것 같아서 아쉬운 면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생생한 묘사와 소재의 독특함이 그러한 아쉬움을 채워주기에 충분했다.
아주 깊은 우물 같은 구동치의 귀에 털어놓는 사람들의 비밀과 그 우물에 던진 돌멩이가 출렁거리며 마침내 소리를 내는 모습을 은밀하게 지켜보는 것이 이 소설을 읽는 독자만이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일 것이다. 월요일처럼 길고 긴 그림자와 같은 비밀을 잔뜩 품은 한 사내가 마지막 딜리터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떠난 노르웨이에서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라고 하며 패딩 점퍼를 벗어서 버리는 장면은 어딘지 모르게 쓸쓸하고 긴 여운을 남긴다. 그리고 이렇게 묻는 것 같다. “당신의 비밀은 무엇입니까?” 하고.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